[김창수 시인의 뜨락] 부처님오신날 다시 읽는 ‘법구비유경’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법구비유경>은 불교 수행에 관한 것 중 ‘자비행’의 모범경전이다.
인도 소국(小國)의 왕자였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16살 때 춘경제(春耕祭)에 참석하여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노인의 쟁기질로 벌레가 두 토막으로 잘리거나 또 흙더미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것을 새가 와서 재빨리 물고 가는 모습도 목격하게 되었다.
자신의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이 노인의 고된 노동에 의지하고 있으며, 벌레는 자신보다 더 작고 약한 벌레에, 새는 벌레 등의 순서로 돌고 돌아가며 잡아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을 처음 목도한 싯타르타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발심이 일어 29세에 출가하였고 35세에 해탈하였다.
대승불교의 수행법에 자비행 수행이 있다. 자비(慈悲)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네이버) “1. 크게 사랑하고 가엽게 여긴다. 2. 중생들에게 즐거움과 복을 주고, 고통과 괴로움을 없게 한다”이다. 자비는 그 자체가 공덕을 짓는 행위이면서 수행법이기도 하다.
한자의 ‘자’(慈)라는 글자를 생명 존중, 자비의 관점으로 해석해보면, “너를 내게 먹이(의식주)로 내어주어 고맙다. 지금부터 너를 지켜주겠다,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비’(悲)는 “어쩔 수 없이 널 해칠(의식주 등으로)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 최소한으로만 널 해치겠다. 마음이 아리고 슬프다”라는 뜻이다. 자비라는 단어의 개념 속에는 생명존중 사상과 적극적인 자비심이 들어 있다. 그리고 자타불이(自他不二)라는 일원론적 사상도 들어 있다.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인은 이웃사랑을 통해 해탈, 천국에 이르라는 수행의 방편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붓다와 예수의 가르침이고 그것이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이다.
부처님오신날이다. 아래 경전의 “부처가 이 세상에 나타난 까닭은 바로 이런 궁하고 외로운 사람을 위한 것일 뿐”, “그 공덕이 차츰 쌓이면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이다”를 말해주기 위함이다.
동체자비(同體慈悲)라. 중생에 이익이 되게 하고자 자비를 베푸는 이유는 바로 다른 이로 알았던 이가 곧 나의 가족이요, 나와 한 몸이라는 인식 속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의 자비가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법구비유경>, ‘도장품’ 중에서
어떤 비구가 있었다.
그는 오래 앓아 더러운 몸으로 현제정사에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냄새를 꺼려 아예 바라보지도 않았다.
부처님은 몸소 더운물로 그의 몸을 씻어 주셨다.
나라의 임금이나 백성들은 모두 와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세상에 높으신 분이며 삼계에 뛰어나신 분인데
어째서 몸소 이 병든 더러운 비구의 몸을 씻으십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부처가 이 세상에 나타난 까닭은 바로 이런 궁하고 외로운 사람을 위한 것일 뿐. 병들어 말라빠진 사문이나 도사, 또 모든 빈궁하고 고독한 노인을 도와 공양하면 그 복은 한이 없을 것이다. 그 공덕이 차츰 쌓이면 반드시 도를 깨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