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33년전 그 언니 제주서 만나다

 

[아시아엔=편집국] <아시아엔>은 2달전 시인 최영미씨가 33년 전 제주에서 만나 헤어진 인연을 찾았다는 기사를 썼다. 당시 기사의 첫 대목이다.

언니 이름은 잊었고, 나이도 확실히 몰라요. 언니 집이 함덕 근처였던 건 확실해요. 거기서 하루 자며 놀았거든요. 아침상에 나온 물회를 처음 먹어봤는데, 고소하고 상큼했어요. 뭐 이런 음식이 다 있나? 신기했지요. 언니가 저보다 대여섯살은 많았으니 지금은 어머나, 환갑이 되었겠네요. 주인언니에게 제주대학교 연극반 출신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제주대 연극반 이름이 수눌음이라 다방 이름을 그리 정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최영미 시인 (오른쪽)

이어 자신이 두달 전 페이스북에 올린 대로 최 시인은 지난 달 30일 제주강연을 마치고 그 언니를 만났다.

최 시인이 지난 3월3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저는 지금 제주에 와 있어요. 어제 한국은행 제주본부에서 시 강의하고 바닷가 구경한 뒤에 저녁에 드디어 그 옛날의 수눌음다방 언니를 만났어요. 약속한 용담골 식당에 들어서 두리번거리는데 구석에 앉은 언니와 눈이 마주쳤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알아보았답니다. 언니는 예전보다 살이 빠졌고 여전히 곱고 털털 했습니다. 기억해 줘서 고마워.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시켰습니다. 전복찜과 삶은 돼지고기에 배추쌈을 곁들였어요.

뭐 하고 살아요? 결혼은? 아이는?

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아이들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밥해 먹이느라 거칠어진 언니 손을 보기가 미안했어요 제 손이 매끈 멀쩡해서. 저는 밥 한공기를 다 먹고 술은 한잔 밖에 못 마셨어요 그런데 언니는 밥은 시키지도 않고 고기와 술만 드시는 거에요. 그래도 언니가 더 건강해 보였어요. 공기 맑은 곳에서 살아서.

33년만의 만남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언니가 워낙 털털하고 저를 반겨주셔서, 낯설지 않았어요. 제가 피곤하지 않았다면 더 오래 회포를 풀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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