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인 페북서 찾은 제주언니 33년만에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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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편집국]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이자 <청동정원> 작가 최영미씨는 7일 종일 설레는 맘을 감추지 못했다고 했다. 33년 전 제주에서 만나 헤어진 인연을 찾았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6일 오후 4시께 다음과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언니 이름은 잊었고, 나이도 확실히 몰라요. 언니 집이 함덕 근처였던 건 확실해요. 거기서 하루 자며 놀았거든요. 아침상에 나온 물회를 처음 먹어봤는데, 고소하고 상큼했어요. 뭐 이런 음식이 다 있나? 신기했지요. 언니가 저보다 대여섯살은 많았으니 지금은 어머나, 환갑이 되었겠네요. 주인언니에게 제주대학교 연극반 출신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제주대 연극반 이름이 수눌음이라 다방 이름을 그리 정했다고 들은 것같습니다.

그리고 만 하루 지나지 않다 바로 그 언니로 ‘거의 확실한’ 주인언니를 찾았다.

최 시인은 “3월30일 제주 강연을 가서 그때 그 언니를 만날 기대에 벅차다”고 했다.

27182627_4시인의 페북 글을 옮겨싣는다.<편집국>

3월 30일 제주도로 날아가 오후 2시부터 문학특강합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에서 개최하는 한은강좌에 초대받았는데, 가는 김에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젊은 날 제주에서 한두 달 산 적이 있어요. 1983년인가 1984년 봄에 제주시 번화가 뒤골목에 ‘수눌음 다방’이라는 클래식 음악다방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름이 ‘동인다방’으로 바뀌었다는데 (동인다방이 수눌음으로 개칭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 제가 거기서 한달 가량 종업원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스물 둘, 세상물정 모르던 시절이엇지요.

1981년 학내시위로 무기정학을 받고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돈 떨어지면 지방도시의 제과점이나 카페에서 일하며 여행경비 조달했지요. 제주에서 방황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복학했는데, 주인언니에게 말하지도 않고 급하게 떠나며 비행기 값이 없어 카운터의 돈을 훔쳤습니다. 제가 펴낸 장편소설 <청동정원>에서 그 부분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아침엔 손님이 없어 놀고 먹기였다.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없는 오전에만 음료를 나르고, 음악이 끊이지 않게 삼십분마다 레코드판을 갈아주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 구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단골손님인 환쟁이들과 문학과 예술을 함부로 논하며 노닥거려도 야단칠 사람이 없었다.

손님이 없으면 대낮에 문을 닫고 다 함께 바닷가로 놀러갔다. 함덕이던가. 모래밭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여름밤. 내 이십대에 드물게 명랑한 나날들이었다. ……마담에게 그만 두겠다 통고하지도 않고, 계산대에서 내가 일한 만큼의 돈을 꺼내 비행기 표를 샀다.

서울로 날아가는 하늘 위에서 나는 예감했다. 이 모든 아픔과 기쁨을 글로 풀어내리라. 맺히고 터진 시간의 매듭들을 문장으로 품을 그날을 그리며, 솜처럼 펼쳐진 구름 위에 붉은 피를 쏟았다. 내가 흘린 피 냄새를 맡으며, 여름이 가기 전에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기를…..나는 빌었다.” -최영미 소설 <청동정원> 145-146쪽에서 발췌.

당시엔 제가 그동안 (한달에서 며칠 모자랐어요) 일한 노동의 댓가가 몇만원은 될 터이니, 별로 미안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미안하대요. 그 언니가 제게 아주 잘해주엇거든요. 제가 미리 말하지 않고 사라져 갑자기 사람 구하느라 애먹었을 거예요. 주인언니 만나서, 그때 일 사과하고 돈도 갚고 싶어요.

언니 이름은 잊었고, 나이도 확실히 몰라요. 언니 집이 함덕 근처였던 건 확실해요. 거기서 하루 자며 놀았거든요. 아침상에 나온 물회를 처음 먹어봤는데, 고소하고 상큼했어요. 뭐 이런 음식이 다 있나? 신기했지요. 언니가 저보다 대여섯살은 많았으니 지금은 어머나, 환갑이 되었겠네요. 주인언니에게 제주대학교 연극반 출신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제주대 연극반 이름이 수눌음이라 다방 이름을 그리 정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연, 페북으로 알려지면 그 언니가 혹 저를 찾아올까요?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언니! 이 글 보시면, 그날 강의에 못 오더라도 메시지 남겨주세요. 저 원망 많이 하셨죠? 부디 용서하시고, 꼭 연락주세요. 제가 책을 펴낸 창비사나 은행나무, 해냄출판사의 편집부로 편지해 [겉봉에 수신인을 최영미 시인으로 써서] 보내셔도 제게 전달될 겁니다.(6일 오후 4시37분 페북 업로드)

다음은 시인이 7일 낮 올린 글이다.

페북 친구 여러분 덕분에 언니 찾았어요!!

오늘 방금 그 옛날 수눌음 다방 언니랑 전화통화 했답니다. 언니도 저를 기억하고 계셨고, 저 보고 그때 일 기억해줘서 고맙다 하네요. 페북 친구인 백인식 선생님이 주신 번호가 통했습니다. 백선생님, 일부러 시간 내어 알아봐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런데 언니가 제가 강의하는 날 바쁘셔서 저녁 7시 지나야 시간 된다 하네요. 같이 밥 먹고 싶은데 저는 그날 저녁은 강의 마치고 한국은행 분들과 식사하기 때문에 언니랑은 나중에 차 마시던가 할게요. 아무튼 sns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fact check 할게요. 언니가 80년대 수눌음다방 주인이 아니라 남동생이 주인이엇대요. 저와 나이 차이도 많지 않아, 아직 쉰아홉이세요.

그해 봄. 음악다방에서 먹고 자며 제주에서 보낸 한 달이 저의 20대 가장 즐거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암울햇던 80년대 제게 빛나는 추억을 선사해주신 언니와 만나서 회포 풀고 싶네요. 얼마나 변했을까….

최 시인이 6일과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는 댓글이 150개 이상 달리며 두 사람의 만남을 축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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