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원광대 ‘신입생 막걸리 세례’ 안타까워···솔직한 자기반성엔 격려를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전북 익산의 원광대에서 신입생을 줄지어 앉혀놓고 막걸리를 뿌리는 일이 벌어졌다. 원광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학생회는 “오랜 전통, 사죄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원광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는 지난 4일 단과대학 건물 앞에서 막걸리 세례 신입생 환영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 2~4학년 선배들은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신입생들을 둘러싸고 막걸리를 마구 뿌렸다. 당시 현장에는 지도 교수들도 있었다.

이 ‘막걸리 세례’ 환영식은 사진과 함께 SNS를 통해 퍼졌다. 게시글에는 “날씨가 우중충하고 추운데 신입생들을 모이게 한 뒤 교수 먼저 조금 뿌리고 학과 대표와 부과대표가 심하게 막걸리를 부었다”고 적혀 있다. “환영회 행사에 막걸리가 100병 정도 쓰였고, 행사가 끝난 뒤 씻는 시간을 적게 줘 제대로 씻지도 못해 일부 학생은 옷을 버리기도 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논란이 일자 행사를 주최한 학생회는 29일 원광대 내부망에 “어제(28일) 온라인에서 이슈가 된 문제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조속한 사과와 해명이 필요한 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라며 사과했다.

사과문은 “매년 진행한 행사로 신입생 환영회는 오래 전부터 고사(告祀)의 형식으로 치러왔다. 신입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내내 액운이 없어지고 안녕과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는 기원의 마음을 담아 제사를 지낸다”고 설명했다.

학생회는 “막걸리를 뿌린 행위는 절차의 일부로 행해진 것으로 온라인에 드러난 대로 아무런 맥락이 없는 가혹행위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학생회는 그러나 “행사에 동참하길 원치 않는 신입생과 불편을 느꼈을 학우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끼친 점은 사과드린다”고 사과 의사를 명확히 했다.

학생회는 “학과장님이 금일봉을 전달하기 위해 참석은 했지만, 막걸리를 뿌린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학생회는 또 이번 사건을 제보한 누리꾼에게 “‘글을 내려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이 학과와 무관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했다.

원광대 측은 “담당 학과와 학생회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입학철만 되면 일부 대학에서 빚어지는 가혹한 신입생 통과의례가 올해 개교(開敎) 100년을 맞는 원불교가 설립한 원광대학교, 그것도 졸업 후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다니는 사범대에서 발생했다. 재학 중 액운을 막기 위해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라고 하지만 아직 한기가 남아있는 이른 봄 교정에서 온 몸에 막걸리를 뒤집어쓴 신입생들 처지를 생각했다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걸리를 끼얹은 선배들은 자신도 신입생 시절 이런 일을 겪으며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벌써 잊은 것인가? 더욱이 현장에는 교수들도 있었다니 더욱 기가 막힐 일이다.

우리 사회엔 각종 폭력-그것이 언어 폭력이든 물리적인 폭력이든 혹은 글이란 이름의 폭력이든-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이같은 폭력이 문제 되는 것은 이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원광대 ‘막걸리 세례 사태’에서 한 가지 위안을 삼을 것이 있다. 해당 학과 학생회가 즉각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점이다. 지난 한달 가까이 여야 정당에 의해 민낯을 드러낸 공천폭력을 저지르고도 “나 몰라라” 하는 기성세대를 답습하지 않은 점이다.

대학시절 실수는 어쩌면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말도 있다. 실수는 중장년, 노년 등 나이에 반비례해 만회할 기회와 시간이 부족하다.

이번 막걸리 세례로 물의를 빚은 대학생들이 이 일을 계기로 무슨 일을 하든 심사숙고하며 성숙한 판단과 결정을 해나간다면 이 또한 실수에서 건져올린 값비싼 교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