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용산 차출’ 사양한 ‘영원한 서초의 딸’ 조윤선 장관께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조윤선 장관! 먼저 새누리당 서초갑 공천에 아깝게 탈락해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평소 조 장관답게 의연하게, 그리고 전화위복, 새옹지마의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조 장관께서 경선 결과 발표 직후 지지자들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번 경선 결과에 승복합니다. 이혜훈 후보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고 했다지요? 또 “치열하게 경선을 치렀지만 이제는 모두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의 중심답게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 힘을 합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깨끗한 승복에 참 뿌듯했습니다.
조 장관은 거기에 더해 용산으로 전략공천하려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방침 역시 “서초의 딸로 남겠다”며 사양했다고 하더군요. 오늘 아침 인터넷엔 비례대표 공천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뜹디다. 얼마나 어려운 결심이었을까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여야 공천을 ‘막가파’ ‘비겁의 극치’ ‘파렴치’라고들 얘기합니다. 그런 가운데 조 장관의 판단과 행동은 오랜 가뭄 끝 단비와 같습니다.
조윤선 장관! 오늘 아침, 조 장관과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기로 했지요. 사람관계란 것이 늘 그렇듯 호불호(好不好)와 섭섭함,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이 교차되기 마련이지요. 아마 나 역시 조 장관에 대해 비슷한 마음의 경로를 밟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 장관의 거취와 행보를 보며 ‘불호’ ‘섭섭’은 모두 떨쳐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 글을 쓰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지요.
언젠가 명함을 정리하다 보니 우리가 처음 ‘본’ 것은 2002년으로 적혀있더군요. 아마도 당시 한나라당 선대위 대변인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만난’ 것은 조 장관이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등원하면서지요. 한겨레신문 기자로 아시아기자협회(아자) 창립회장을 맡고 있던 내가 이사직을 당부하자 기꺼이 수락해주셨지요.
이후 2010년 2월말 아자가 주최한 ‘아시아인의 꿈과 평화로의 길’ 터키방문단 일원으로 4박5일 동행하며 앙카라에서 오메르 딘세르 사회보장부 장관, 자페르 카글라얀 재정부 장관, 그리고 이름은 잊었지만 여성부 장관과 앙카라 시장 등을 만났지요. 당시 조 장관의 위트와 콘텐츠 깊은 대화가 그들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엊그제 일 같군요. 이스탄불로 이동해서는 한국전 참전용사, 터키 언론인들과 ‘한국전쟁 60주년 문명간의 대화’를 주제로 한-터키 평화포럼에서 토론자로 참여하기도 했지요.
조 장관은 당시 터키 방문을 계기로 그해 6월 ‘한국전쟁기념재단’을 설립하여 6.25 참전용사 후손들의 장학금을 지급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지요. 터키 방문때 이수성 국무총리, 조영길 국방부 장관, 정범구 국회의원,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이정자 여성정치포럼 대표, 강기원 변호사 등이 동행했는데, 조 장관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더군요.
그리고 3년 후 박근혜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당시 조 장관은 국무위원의 외부단체 임원 겸직금지 조항에 위배된다며 아시아기자협회 이사직을 사퇴했지요. 그때 나는 ‘아자는 공익단체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약간 아쉬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정확하게 일 처리하는 모습이 좋기도 했지요.
장관께선 2013년 7월 <매거진N> 제2호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줘 발행인인 내 체면을 세워줘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작년 11월22일 <아시아엔> 창간 4돌 기념식에 ‘그 바쁜 중에’ 참석하여 축하인사를 해준 것 역시 내가 오래 간직할 고마움이지요. 이 짧은 글 속에 지난 5~6년 시간을 농축하려니 쉽지만은 않군요.
조윤선 장관!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겠군요. 다시 한번 낙천에 위로와 함께 조 장관의 용기 있고 일관된 판단과 행보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조 장관 앞날에 언제나 부처님 가피가 함께 하시길 기원하며 줄입니다.
2016년 3월22일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