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의 점자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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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점자가 새겨진 명함을 보면 주인의 얼굴을 한번 더 바라보게 된다. 지난달 22일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인권보도상 심사를 마치고 이성호 위원장을 만나 명함을 받았다. 점자명함이다.

그동안 제법 많은 고위직 공무원을 만났지만, 점자명함은 거의 받은 기억이 없다. 역시 국가인권위원회 수장의 명함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석모 사무총장 역시 점자명함을 내밀었다.

이성호 위원장이나 안 총장이 점자를 읽는 시각장애인을 만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년에 몇 명, 아니 재임 중 단 1명을 만나더라도 점자명함을 건네받은 시각장애인은 ‘우리나라 인권위원장이 배려심이 참 깊구나’ 하고 무척 반가워 할 것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인사말 다음에 바로 명함 건네는 일이 순서다. 명함은 주인의 많은 걸 담고 있다. 이름에서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소속과 직책 등을 단번에 알리는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요즘은 극히 보안유지를 필요로 하는 정보기관이나 특수부대 정도를 빼곤 대부분 명함을 사용하고 있다.

기자도 10여년 전에 점자명함을 갖고 다녔다. 그걸 가지고 2007년 금강산에서 개최된 국제기자연맹 특별총회를 유치했던 기억이 새롭다. 2005년 12월2일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회장 시절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국제기자연맹(IFJ) 집행위원회 때의 일이다.

기자는 집행위원회에 참석해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위원들에게 점자명함을 위원들에게 나눠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점자명함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1년에 기껏 두세 명 밖에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은 점자명함이 아니면 읽을 수가 없다. 여러분, 지구상에 고립된 섬이 한반도 허리부분에 있다. 바로 금강산이다. 그곳에서 각국 기자들이 평화를 노래하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 보자.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점자명함과 같은 희망의 빛을 전달할 기회를 우리 함께 만들자.”

한국은 앞서 2001년 서울에서 3년마다 열리는 IFJ 총회를 개최했었기에 러시아, 인도네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 신청국과 경쟁하기엔 불리한 상황이었다. 집행위원회는 IFJ 창립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정기총회와 함께 한국에서 특별총회를 개최토록 승인했다. 당시 집행위원들은 결과 발표 뒤 “미스터 리의 점자명함이 금강산 특별총회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귀뜸해줬다.

다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의 점자명함으로 돌아가보자. 이 위원장이 점자명함을 자주 사용할 기회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최근 후천적인 사유로 시각장애를 겪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 그들이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점자명함을 건네는 국가인권위원장, 그리고 이를 받아들고 엄지손가락을 펴 문지르며 미소짓는 그들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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