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한승주 전 외무장관이 추천한 오준 주 유엔대사의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지난해 연말 한 권의 책이 배달돼 왔다. 주유엔 오준 대사가 쓴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오픈하우스)다. 필자는 20년 이상 오준 대사와 알고 지낸다. 특히 그의 두 동생 가운데 오룡은 나와 <한겨레> 입사 동기이자 친구다. 그는 내가 대표이사 겸 발행인으로 있는 <매거진N> 창간 편집국장을 맡아 기틀을 잘 잡아줬다. 막내(오균) 역시 국무조정실 제1차장으로 재직중이다. 나름대로 오 대사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는 내게 오 대사의 진면모(眞面貌)를 확인시켜줬다.
나는 회고록을 즐겨 읽는 편이다. 그 가운데는 자기홍보에 치중하거나 과장된 면이 있는 것도 있다. 나는 거기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 몫이며 나는 거기서 배울 점만 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나온 최형우 전 국회의원의 자서전도 나를 일깨운 책 가운데 하나다. 경남 양산에서 재선 후 낙선한 그는 어느 날 산중턱에 집이 몇 채 있는 걸 발견하고 비서한테 그리로 차를 몰라고 했다. 비서는 서너명 밖에 안 사는데 굳이 갈 필요가 있냐고 했다. 이에 최 의원이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곳에 가서 말씀 들어드리는 게 진짜 좋은 일 아닌가?”라고 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이후 최형우 전 의원의 그같은 태도는 내 생각과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내가 회고록을 즐겨 읽는 이유 중 하나다.
오준 대사는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에서 자신의 지난 날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 대목을 보자.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는 평균보다 작은 체격이 되었지만, 중학교 1~2학년 때는 반에서 열번째 안에 드는 큰 키였다. 내 바로 옆자리에 야구선수였던 학준이가 있었다. 그때 야구나 축구 특기생들 중에는 고아원에서 자란 경우가 있었는데 이 친구도 그랬다.(중략) 어느 날, 이 친구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싸움이 붙어 거의 주먹다짐까지 갈 뻔했다. 주먹다짐을 하지 않은 것은 특히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은데, 학준이는 분노에 찬 얼굴로 갑자기 “너 내가 몇 살인지 알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중략) 학준이는 “내가 너보다 세 살 많은 형이야……”라고 하면서 억울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중략) 나는 부모가 없는 상태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고아원에서 자란 친구는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을까? 부모를 본 적도 없는 것일까?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쳐다보던 학준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109~111쪽)
오준 대사 하면, ‘추천의 글’에서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쓴 대로 2014년 12월 22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감동적인 연설을 떠올리게 된다. 보통 4~5명의 명사들이 저자나 출판사측이 써준 대필 글이 버젓이 추천글로 둔합하는 세태에서 이 책의 추천글은 한승주 전 장관 혼자 맡았다. 그 점도 내게 참 맘에 든다. 추천글 한 대목을 옮긴다.
<어떠한 목적이나 이유로 쓰인 책이든 간에 읽을 만한, 좋은 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가?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가? 영감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가? 우리의 삶과 존재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해주는가? 무엇보다도 필자의 머릿속에 내재한 물음과 그 나름대로의 해답을 같이 생각해보도록 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전 장관은 오준 대사와 그의 책에 대해 홍보나 상찬(賞讚) 대신 담담하게 자신의 느낌을 말할 뿐이다.
필자 맘에 특히 와닿는 대목은 마지막에 나오는 오준 대사의 ‘내가 지키려고 하는 삶의 습관 7가지’다. 지난 연말 “오준 유엔대사의 ‘내가 지키려는 7가지 삶의 습관’이란 제목으로 <아시아엔>에 보도된 대목과 일부 겹치지만 독자들의 양해 바란다.
첫째, 무엇에나 의문을 갖는다. 고교 때 아버지가 영어로 된 책이나 잡지를 읽다가 좋은 표현을 보면 적어놓으시는 노트가 있었는데, 그 겉장에 “Quest is always right!”라고 써놓으셨다. 유엔대표부의 동료들과 회의를 할 때 누군가 “내일은 유엔에서 핵실험 금지에 관한 회의가 있어서 참석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그 회의는 왜 하는 겁니까?” 하고 물어본다.
둘째, 소중한 것에 시간을 준다. 장수해서 100년을 산다고 해도 잠자는 시간을 빼면 60만 시간 정도가 주어진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우리의 생명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일부 나누어 주는 것이다.
셋째, 나에게 뻗어온 손은 반드시 잡는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어올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업 때문이든, 부탁할 일이 있어서든,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교제를 위한 것이든,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넷째, 필요한 것만 소유한다. 나는 여름 양복과 겨울 양복이 각각 5벌씩 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양복을 입는다. 그리고 매년 여름과 겨울에 가장 오래된 양복을 한 벌씩 버리고 새 양복을 구입한다. 즉, 5년 된 양복을 버린다. 늘 아울렛에서 같은 브랜드의 기성복을 사는데, 버리는 양복과 같은 색깔과 무늬의 양복을 산다.
다섯째, 여러 가지 일을 할 때는 집중과 전환을 생각한다. 유엔에서 연설을 할 때는 연설의 내용과 전달만을 생각하고 유엔대사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할 동안에는 이 세상에 드럼 연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섯째, 중요한 승부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다. 대중 앞에서 연설 특히 외국어 연설을 한다든지 노래를 하는 일은 긴장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럴 때면 바둑이나 장기나 카드놀이 같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바둑에서 진다고 해서 인생 전체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곱째, 힘들고 어려울 때는 멀리 떨어져 나를 본다. 한때 유행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모든 어려움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따라서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 깊은 숨을 들이쉬고 하늘을 바라보면 극복할 수 없는 좌절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님의 책 내용중 7가지 습관을 보니
참 일깨워 주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