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새학기 문득 떠오르는 이상철 시간강사···”‘총각과 원만’ 강의 다시 듣고 싶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캠퍼스에 새학기가 시작됐다. 설렘과 꿈으로 부풀어야 할 젊은 대학생들이 벌써부터 취업 걱정에 빠져있다고 한다. 그들보다 한참 먼저 대학생활을 보낸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필자는 운 좋게도 대학 시절 제법 많은 스승과 멘토를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 가운데는 30년이 훨씬 지나도록 여전히 애프터서비스를 해주시는 분, 지금은 이 세상을 떠났거나, 행방을 알 수 없는 분도 계시다. 앞에 든 분으로는 역사학을 하신 이인호, 정옥자 교수님과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서울대 출강을 한 구명수 선생님, 그리고 두 번째로는 ‘Amor fati’(운명애)를 가르쳐주신 고 임원택 교수님, 그리고 끝으로 총각(總角)이 원만(圓滿)해지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일깨워준 이상철 강사가 그분들이다.
이인호, 정옥자, 임원택 교수님은 워낙 저명하신 분이어서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터다. 공사 교수로 서울대에 출강 나와 경찰에 끌려가는 학생들을 온몸으로 막은 구명수 선생님에 대해선 다른 기회에 소개하려 한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이상철 강사는 1986년 가을학기 일반논리학을 가르쳤다. 당시는 교내에 사복경찰과 페퍼포그(최루탄) 살포차량이 대기하며 데모를 진압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해 12월 첫째 주로 기억되는 마지막 수업때였다. 이상철 강사는 칠판에 ‘總角’(총각)이라고 한자로 쓰고 옆에 별 모양을 그리더니 곧바로 ‘圓滿’(원만), 두 글자를 썼다. 그는 이어 별 모양 안팎에 내접원과 외접원을 그렸다. 그리고는 입을 뗐다.
“여러분 재미도 없고 까다롭기만 한 일반논리학 듣느라고 한 학기 수고 많았습니다. 총각이 뭔지 아시죠? 여러분 또래들 아닙니까? 별처럼 생긴 뿔로 여기도 부딪쳐 보고, 저기도 찔러보고 그런 게 총각이지요. 그러다 나이가 들면 원만해 집니다. 말 그대로 둥글게 돼가는 거지요. 그런데 거기엔 두가지 길이 있지요. 하나는 뿔을 잘라내고 내접원을 그리는 게 있고, 또 하나는 뿔은 그대로 놔둔 채 외접원을 그리는 겁니다. 뿔을 잘라내면 세상 사는 데는 조금 편할 겁니다. 누구하고 부딪칠 일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사회는 굴종과 순응을 요구하지요. 총각이 원만해지는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은 여러분 몫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터벅터벅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이후 나는 대학생이나 군인,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이상철 강사가 말한 ‘총각과 원만’에 대해 종종 소개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시간강사 이후’가 궁금했다. 25년여 지난 2011년 가을이었다. “박사학위를 못 받았다고 하더군. 그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데.” 가깝게 지내던 서울대 보직교수로부터 들은 답이다.
내달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에 나선다. 그때도 이상철 강사를 떠올리며 총각과 원만을 얘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