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단독인터뷰] 오준 유엔대사 “사드배치 건설적·합리적 결론 날 것”
지난 2월 개최된 ECOSOC 청년포럼에서 발표하는 오준 대사
[아시아엔=윤석희 <아시아엔> 뉴욕특파원] “같은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북한의 위정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왜 당신들은 이런 무기들이 필요합니까. 한국엔 핵무기가 없습니다.(중략) 당신들이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북한의 주민들만 고통을 받을 뿐입니다. 그들도 나와 우리와 같은 동족입니다. 제발 깨어나세요. 눈을 뜨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바라보세요. 핵무기를 포기하고 세계의 일원이 되어주세요. 우리 모두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지난 3월2일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안전보장이사회 오준 유엔 대사의 발언이다. 지난 6월말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의장 2년 임기를 마친 오 대사를 <매거진N>이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8월11일 뉴욕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 <편집자>
Q 유엔대표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A 대한민국은 여러 면에서 경제나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 중에 하나라는 것을 자타가 인정한다. 바티칸과 팔레스타인 포함 UN 회원국 195개국과 옵저버 국가 중 상위 10%다. 이러한 위상의 국가로서 국익과 세계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더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한국과 전세계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이 각각 다를 수도 있었다. 기후변화 문제를 놓고 볼 때 과거에는 공장 짓고 물건 팔기 위해 불가피하게 탄소배출을 계속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했다면 오늘날에는 시민들이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것이 국익에 맞을 뿐 아니라 세계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될수록 국익의 추구방향과 국제사회의 발전방향은 서로 근접하게 된다.
Q 현실은 시민들의 삶의 질이나 환경보호보다 기업과 자본의 이익이 보호되고 있지 않나?
A 기후변화 대처를 다시 예로 들자면 환경을 보호하는 규제가 기업에 ‘손해가 된다’는 생각은 개발도상국 단계의 의식구조다. 개도국의 작은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고 성장하기 위해서 경쟁하던 단계와 세계적 기업이 되어 기업윤리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야 하는 단계에는 차이가 있다. 세계적 기업이라면 기후변화 문제나 불평등 문제를 의식하고 대처해야만 글로벌한 활동을 하고 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국제표준을 지키고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와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개발 단계에서는 시민단체가 인권과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국가안보나 사회안정에 부담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잘 듣고 이해해야 한다. 사회갈등과 경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사회 전체의 경쟁력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시민사회가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Q 최근의 사드배치 결정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요구가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사드 배치는 한반도 안전을 위한 적당한 조치라고 보는가?
A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북핵 위협이 없었다면 사드배치 거론 자체가 없었을 거다. 일각에서는 “사드배치로 북한 미사일을 전부 막을 수 있는가?” “한중관계에서 생기는 부담이 북핵 위험보다 더 큰 부담이 아닌가?” 이런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합리적인 토의로 공감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토론 과정이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드배치가 군사전략 일환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떤 나라도 군사전략을 완전히 공개적인 토의로 다루고 결정할 수는 없다. 현재 사드문제에 관한 범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결정될 것으로 본다. 감정적인 상호비방은 성숙한 시민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지양해야 한다.
Q 국제연합은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A 과거 한반도 문제는 한국전쟁과 이념경쟁, 유엔 가입문제 등 남북한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반도 문제는 북한 문제다. 21세기 들어서 새롭게 핵무기를 개발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북한은 이로써 전후 세계 안보질서에 최대의 도전을 하고 있다. 또 전세계에서 가장 나쁜 인권 상황을 가진 국가의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문제가 유엔에서 논의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하겠다.
특히 북한핵문제가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되기 전까지는 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가 어렵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여 미사일에 탑재할 능력까지 보유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는 불가피하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하여 요구하고 있는 것이므로, 설사 남북한이 다시 화해 모드로 들어간다고 해도 제재가 완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현재 북한에 부과되고 있는 유엔 제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강한 제제 하에서는 남북한 간에 경협을 재개하는 것도 북한이 중국식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즉, 북핵 문제의 해결 없이는 동북아의 평화나 한민족의 통일을 추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Q 안보리제재와는 별도로 이루어진 개성공단 폐쇄 등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태도에 가져올 영향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
A 개성공단의 폐쇄는 유엔의 대북 제재와는 별개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전 세계가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포기를 위한 압박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솔선수범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대북제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개성공단 폐쇄로 우리 기업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을 감수하고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므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본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모두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데서 오는 불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므로, 북한으로서는 시간이 갈수록 핵 보유와 정상적인 국가운영을 양립시키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
Q 최근 유럽의 난민 문제, 우경화, 브렉시트, 러시아와 중국의 팽창, 세계적인 양극화, ISIS 출현, 한반도 핵 등 국제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하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지금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A 전세계가 포괄적으로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데 동의한다. 이런 문제들을 모두 같은 잣대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모두가 세계화에서 온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인류에게 큰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계화는 양날의 칼이다. 현재에는 세계화의 도전이 당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으므로, 결국 어떻게 하면 ‘세계화의 혜택을 극대화하고 부작용들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가 오늘날 세계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Q 세계화의 혜택은 무엇이며 부작용은 어떤 게 있나?
A 문명과 기술이 전세계로 확산되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서 전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된 것이 세계화의 가장 큰 혜택일 것이다. 20세기에 세계화를 논할 때는 ‘세계화의 혜택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부작용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가 누리는 세계화의 혜택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세계가 점점 좁아지면서 다양한 인종, 민족, 종교, 문화들이 과거 어떤 때보다 밀접하게 교류하고 경쟁하면서 투쟁과 갈등 역시 증가하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이 본래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기보다는 거부감을 갖게 되기가 더 쉽기 때문에, 세계화를 통해서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지구촌에서 매일 가깝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폭력적 극단주의나 테러리즘, 난민문제 등도 모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접촉과 교류를 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 인류는 기독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가 또는 백인과 흑인 평생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수만 년을 살다가 갑자기 지난 1백년 사이에 세상의 어디든지 24시간 안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 역시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자기 나라에서 사용할 만큼만 생산을 하던 시대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을 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무제한의 생산 경쟁과 산업화가 과도한 탄소배출을 초래하고, 지구의온도를 높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경쟁적으로 자원을 뽑아 쓰고 화석연료를 태우니 지구환경이 남아나지 않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불평등도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뿐 아니고 전세계를 상대로 한 무한 경쟁 속에서 승자와 패자 역시 더욱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점점 심각해져, 전세계의 1% 인구가 전체 부의 50%를 소유하게 되었다. 오늘날 자유시장 경제를 가진 모든 나라는 자본주의의 속성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빈부격차를 완화시키기 위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적용하고 하고 있다. 부자는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누진세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세계화를 통해 무역과 투자가 자유로워지면서, 기업은 저렴한 경비가 드는 곳에서 생산을 하고 세금을 적게 내는 곳에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전체적인 생산성 제고에는 긍정적이지만, 국가들이 소득재분배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인 불평등을 완화시키기는 더 어려워진 것이다.
Q 서울과 도쿄를 오가는 것이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것보다 쉽다면 1%에 속하는 도쿄 시민은 99%에 속하는 지방의 주민들보다 서울에서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지방 주민들은 기후변화나 경제위기에 똑같이 노출된다. 이러한 세계화는 혜택은 1%가 누리고 부작용은 99%가 짊어지는 구조가 아닌가?
A 불평등이 점점 확대되는 것은 세계화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세계화 이전에도, 근대 자본주의 이전에도 불평등은 언제나 있었다. 이를 국가가 주도해서 해결하려고 한 것이 공산주의지만 인간본성을 부정하며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강요된 평등은 불평등만큼 나쁘다. 극심한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복지를 제공하고 부의 편중을 막기 위해 누진소득세 등을 부과한다. 그러나 여기서 세계화의 부작용이 다시 나타난다. 기업들은 세금이 싼 곳을 찾아 각국을 다니며 부를 쌓고 경쟁에서 도태된 노동자들은 복지에 기대게 된다. 국가 세수는 줄고 세출은 늘어 곳간이 비고 불평등은 악화된다.
Q 전후 세계질서를 유지하고 열린 경제를 유지했던 미국 역시 국수주의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A 일부 세계화에 역행하는 모습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에 역행할 수는 없다. 미국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결실인 파리협약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정치적 수사를 제외한 자유무역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유무역 확대가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인식은 많은 미국인들이 공유하는 부분이다.
Q 세계화의 역행이 폭주하면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 강대국 사이의 갈등 극단주의 등 국제적인 갈등을 해결하는데 유엔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A 사실 강대국 사이에 존재하는 일정 정도의 갈등은 건전한 경쟁관계에서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미중 갈등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며 세계적 입지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이다. 경쟁은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봐야한다. 다만 경쟁이 투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평화적인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고루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대국 관계가 경쟁에서 투쟁으로 커지면서 주변국가도 개입되고 세계대전으로 발전한 과정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이후 인류와 세계 각국은 ‘대체로’ 갈등과 투쟁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했다. 3차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국제연합의 기여가 크다고 생각한다.
Q UN은 전후 인류의 진보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미국·러시아·중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간의 갈등은 UN이 해결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A 오늘날의 국제연합은 2차세계대전 후 승전국들의 주도로 만든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5개국에게 안보리 결정 거부권과 유엔헌장 개정 거부권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70년이 지났으니 현 시점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기후변화 등의 복합적·다자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제적 통치기구가 필요한데 국제연합이 발전해서 세계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특권구조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유엔헌장을 개선하려면 이들 5개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개정 자체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Q 그렇다면 개별 국가들이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A 세계화를 뒤로 돌리면 안 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일부 국가들은 국수주의로 돌아가서 세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 한다. 그러나 문을 닫고 문화장벽을 쌓으려는 국가나 개인이나 궁극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인종·종교 를 포용하고 이해해 세계화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기후변화 같은 문제에서 모든 국가들이 자신은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고 다른 국가들이 줄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공멸로 가는 길이다. 같이 죽기 싫으면 앞장서서 변화해야 한다. 또한 국제적인 불평등에 대응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규칙과 경쟁구조가 합의되어야 한다.
Q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제연합의 인가를 받지 않고 이루어져 비난을 샀다. 결국 실제로 이라크 침공을 저지하기 위하여 국제연합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크림반도 사태에서 러시아를 저지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니 이빨 없는 호랑이 아닌가?
A 국제사회의 현실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공존하고 있으며,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도 그러한 역학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즉, 유엔이 국가들을 초월한 초국가적 기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들이 만들어서 국가들이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인식이다. 오늘의 세계에서는 각국이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세계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들에게도 결국 혜택이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특정국가, 특히 강대국의 중대한 이해가 걸린 문제에서는 유엔의 역할에 한계가 있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유엔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회원국들이 부여한 ‘맞춤형 이빨을 가진 호랑이’라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