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선거] 힐러리-트럼프 티비토론 최후 승자는?
[아시아엔=윤석희 뉴욕특파원] 첫번째 토론이 끝났다. 경주는 여전히 뜨겁게 달리고 있다. 양측이 모두 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첫 겨루기는 두 후보의 상반신을 가까이서 고화질로 녹음, 녹화했으며 이 둘의 모습은 수없이 많은 재수정과 재해석, 댓글을 달고 수많은 스크린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당일 기자와 대선토론을 함께 본 이웃 60대 뉴욕 흑인 여성은 “예전에는 정치인들에게 속을 수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리얼리티쇼의 시대잖아? TV에서 별의 별 사람들이 진짜로 울고 싸우고 거짓말하고 연애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고. 진심과 연기는 구분할 줄 알지”라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미국은 진실된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생각의 전파가 과거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다. 8400만 시청자가 생방송으로 토론을 보았다고 한다. 토론 후 통화한 뉴저지 출신 22세 철학과 대학생은 클린턴의 승리를 점쳤다. “클린턴은 최고의 솜씨를 보여줬어. 그에 비해 트럼프는 화를 내고 흥분을 했어. 게다가 여성을 또 무시 했지. 도시 근교 여성 유권자들이 표로 분노를 표현할 거야.”
전통적인 토론과 정치의 기준으로는 클린턴의 압승이다. 클린턴은 사실과 통계에 기반한 공약과 분석을 뛰어난 자세와 어조로 전달했다. 트럼프의 약점을 여럿 짚어내고 트럼프를 자극하여 좋은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빨간 옷의 이미지와 달리 트럼프를 정면에서 공격하기보다 떡밥을 던지고 달려들기를 기다리는 형태였다.
유권자가 표를 던지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혹은 더 나쁜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트럼프는 후자를 선점했다. 야당후보로서 우위에서 시작한 그는 미국이 완전 엉망이고, 세계에서 가장 뒤쳐지고 있고, 제3세계가 되었다며 유권자들을 자극했다. 텔레프롬프터 없이 진행되는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통계와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하지 않았으며 클린턴의 공약에 대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
파란 넥타이를 맨 트럼프는 다만 클린턴은 30년간 권력을 잡고서 이라크전쟁,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2차산업의 몰락, 부패와 범죄 등 미국이 패배하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끊임 없이 비난했다.
<CNN>과 <뉴욕타임즈>로 대표되는 미국의 주류 언론은 모두 클린턴의 압승을 선언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인터넷에서 토론 진행자 <NBC> 앵커 레스터 홀트(Lester Holt)가 편파했다고 울부짖었다. 트럼프의 지지기반은 주류언론이 모두 클린턴의 편이며 트럼프를 뽑아야 클린턴이 국제자본과 엘리트들에게 미국을 팔아넘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클린턴의 지지기반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선택은 클린턴의 성별, 오바마의 피부 색 등 혐오와 분노에 기반하며 트럼프를 막아내야 역사의 퇴보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양측 모두 상대방이 선택하는 미국은 최악의 미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클린턴 측은 트럼프가 코를 훌쩍이는 동영상을 편집해서 공유하고 트럼프 측은 클린턴이 코를 긁는 것이 홀트 앵커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증거’를 공유했다.
리얼리티 쇼 출신 트럼프가 음모론으로 무장하고 국무장관 출신 30년 정치 고수 클린턴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인가? 유태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나치당의 음모론,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침투했다는 50년대 매카시 의원의 음모론, 종북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민중은 공포에 사로잡혀 권위주의를 선택했다.
클린턴과 국제자본이 나라를 팔아먹을 것이라는 공포, 여기에 언론과 정권이 영합했다는 분노, 그리고 트럼프는 진실된 미국인(백인 남성)으로서 미국을 구원하고 악인을 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트럼프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토론은 끝났으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한달 남짓 남은 세계 최대의 리얼리티쇼는 숨막히는 막바지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