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 대사 “외교관 으뜸 덕목은 진심과 포용”

<사진=이오봉>

다자외교 최전선 지휘 맡은 오준 신임 유엔대사

9월20일 주유엔대사에 부임한 오준(58) 전 싱가포르 대사는 외교관 경력 대부분을 유엔 업무로 일관해온 ‘유엔통’이다. 본부 유엔 관련직을 두루 거쳤고 주유엔대표부 근무만 4번째다. 이시영 전 외교부 차관과 함께 한국 외교관 중 최다 유엔근무 기록이다. 2등서기관(1985∼88년)으로 유엔대표부 근무를 시작해 유엔총회의장 비서실 공사(2001∼02년), 유엔대표부 차석대사(2005∼07년)를 거쳤다.

그는 해마다 연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연하장 1000장을 전 세계 지인들에게 보낸다. 연하장 문화가 수그러든 탓인지 이 얘기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얼마 전 휴가차 귀국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오 대사의 카드를 사무실에 간직하는 유엔본부 직원들이 많다고 전했다고 한다.

<사진=이오봉>

오 대사는 외교부에 음악동호회를 만들어 여러 차례 자선공연을 펼치는 등 남다른 열정과 활동력을 보여왔다. 35년 공무원 경력에 아직 ‘내 집’이 없는 것도 남다른 면이다. 기자는 9월3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국립외교원 회의실에서 오 대사를 인터뷰했다. 마침 아시아기자협회(AJA)가 주관한 아시아문화언론인포럼에 참석차 내한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이집트 등 AJA 회원 기자 12명이 동석해 ‘그룹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다.

-유엔대사 부임을 축하 드린다. 초대 조병옥 특사부터 20여명의 실력자들이 유엔대사를 맡았다. 유엔대사는 직업외교관의 꽃이라고들 한다. 임기 중 역점적으로 추진할 일은?

“다자외교의 최전선인 유엔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활동할 수 있게 된 데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1945년 창설된 유엔은 지금 헌장에 명시된 평화, 개발, 인권이라는 3대축 모두 중요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세계 여러 곳의 분쟁으로 평화가 도전 받고, 국가 간 빈부차가 커지면서 국제개발협력도 중요한 전환기에 있다. ‘아랍의 봄’에서 보듯 인권문제는 선진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목표가 됐다. 우리나라는 2013~14년 임기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 활동 중이다. 개발과 인권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좋은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유엔에서의 역할 강화는 박근혜 정부의 지구촌 행복시대 구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추진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근 박 대통령과 반 사무총장 면담 때 협의된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같은 구체적인 과제도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이오봉>

-국가 간 분쟁조정과 전쟁억제 같은 정치적 역할뿐 아니라 에너지, 기후변화 등 환경 부문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과제다. 2020년 이후 신기후체제, 즉 교토의정서 후속체제로 개도국을 포함한 모든 협약 당사국이 참여하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체제 협상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중심으로 2015년 타결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협상 진전을 위한 정치적 모멘텀 확보를 위해 2014년 9월 기후변화정상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우리는 선진국-개도국 가교역할을 통해 기후변화정상회의가 성과를 거두도록 기여하려고 한다.”

-외교부 국제기구정책과장, 국제기구정책관, 주유엔 차석대사, 다자외교조약실장 등 현역 외교관 중 유엔 관련업무를 가장 많이 맡았고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다자외교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다자외교는 참여자가 다수이므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어렵다. 참여그룹 간 의견대립이 많아 공식회의뿐 아니라 비공식 협의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유엔군축위원회 의장,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의장 등을 맡으면서 그런 조정 역할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모든 당사자 입장에서 ‘윈-윈’ 결과를 추구하는 것만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각국 대사, 외교관과의 공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친목을 통해 사적 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주싱가포르 대사로 근무하면서 직접 그린 싱가포르 풍경 유화를 연하장으로 만들어 보내고 K-팝 같은 우리 대중문화를 소개해 큰 효과를 보았다.”

유엔기구 한국인 182명, 더 늘려야

-유엔에서 북한 인권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인권이사회에 북한 인권문제 조사기구가 설치돼 고문과 강제노역 등 반인도적 행위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있다.

“인권문제는 유엔의 3대 핵심축 가운데 하나로 한 나라의 문제를 넘어 범세계적 보편적 과제다. 우리도 북한 인권문제를 남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문제로 다루고 있다. 최근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은 표결이 불필요한 컨센서스로 채택되고 있다. 이는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도 인권상황 개선 없이는 국제사회의 지적과 비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 대사가 싱가포르 풍경을 그린 유화. 왼쪽에서부터 탱글린 로드(2012), 에메랄드 힐(2011). 오 대사는 이 연하장을 싱가포르 총리, 장관 등 20여 개국 지인 1000여명에게 보냈다. 그는 “한 분 한 분 받는 이를 떠올리며 인사말을 쓰다 보면 받는 분과의 인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돼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했다.

-외교나 개인활동이나 모두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고 본다. 외교를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이를 위한 특별한 방법 같은 게 있을까?

“외교관에게 중요한 덕목 중 ‘진심(integrity)’과 ‘포용(tolerance)’이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교는 한번 상대하고 마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접촉을 해야 하는 만큼 눈앞의 이익만 보는 단견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 통찰력 있는 식견과 건설적인 제안능력은 특히 다자외교에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다양한 의제의 홍수 속에서 자연스럽게 국익과 인류공익 원칙을 토대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 대사와의 인터뷰는 아시아기자협회 회원들과의 집단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사진=이오봉>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려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2012년말 현재 UNDP, UNICEF 등 유엔기구에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해 한국인 182명이 근무 중이다. 우리의 국력(GDP 기준 세계 15위), 분담율(1.994%, 정규예산 13위, PKO 예산 12위) 등을 감안하면 2007년 79명에서 2배 이상 늘었다 해도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국제기구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 파견 확대, 신규직원 채용시험인 YPP(Young Professional Programme) 유치, 진출설명회 개최 등을 추진 중이다. 국제공무원으로서 유엔기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어학실력과 상대방 의견을 듣는 자세, 다양한 분야 상식과 전문성을 쌓기를 권한다.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어떠한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는 당당한 도전정신도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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