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시진핑,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나는 오늘 이 자리에 100개의 관(棺)을 준비하였다. 99개는 탐관오리 것이고, 내 관도 한 개 남겨 놓았다(留一口棺材給我自己).”
1998년 중앙 반(反) 부패회의 석상에서 주룽지(朱鎔基) 전 국무원 총리가 던진 유명한 얘기다.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부패한 생쥐’들이 관가를 누빈다.
“무릇 사물은 반드시 먼저 부패한 후에 벌레가 생기는 법이다(物必先腐而后?生). 부패문제는 갈수록 심각하다. 이러다간 결국 당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게 될 것이다.”
지난 해, 11월 17일 중공 중앙정치국 집체 학습 시에 시진핑이 강조한 말이다. 정부에서 부정부패를 외치자 언론도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염정요망(廉政瞭望)>, 신화통신 등에 실린 기사를 정리해 보았다.
지난 12월 2일, 쓰촨성 당위원회 부서기 리춘청(李春城? 56)이 매관매직 및 직권남용 혐의로 면직되었다. 시진핑 취임 후 처음으로 ‘목이 잘린’ 최고위 공직자다. 건설업자와의 유착, 매관매직, 그리고 그의 아내 취(曲) 모 씨의 적십자 기금 유용이 면직 사유다.
그는 청뚜 시장, 청뚜시 서기, 쓰촨성 부서기에 오르기까지 고속승진을 거듭하였다. 전 현직 관계 공무원들의 제보에 의하면, 그는 돈으로 벼슬을 사고, 돈을 받고 관직을 팔아먹은 전형적인 탐관오리였다. 수십 억 위안(1억 위안, 한화 약 170억원)을 투자하여 행정센터 건물을 지었다. 그의 별명은 철거를 밥 먹듯이 해서 ‘리차이청(李?城)’이라 불렸다. 문득 호화로운 용인시청, 아방궁이라 불린 성남시청이 떠오른다. 두 나라 지방정부의 행태가 쌍둥이처럼 닮았다.
원래 리춘청은 하얼빈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쓰촨성에서 14년 근무하였다. 그의 처는 모 종합병원에서 일을 한 보통 여자였다. 그가 청뚜 시장에 오르자 그의 아내는 적십자회 상임부회장 직을 꿰찼다. 그리고 적십자 기금을 빼돌려 엉뚱한 곳에 투자하였다. 그야말로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아닐 수 없다.
리춘청의 비리는 2004년부터 전 현직 공무원들에 의해 실명으로 꾸준히 제보가 이어졌으나, 매번 묵살되었다. 가련한 제보자만 ‘개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흙탕물’이 가득한 공직사회에서 부패척결이 얼마나 힘든 지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다.
최근에 면직 또는 조사 중인 고위 공직자는 광동성 국토자원청 부청장 뤼잉밍(?英明), 산동성 농업청 부청장 단정더(?增德), 선전시 전 부시장 량다오싱(梁道行)등이다. 그 밖에도 중소도시의 경찰서장, 시장들 중 혐의선 상에 오른 자도 부지기수다. 이들은 이른 바 ‘중대한 기율 위반’을 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자 문제와 공금횡령·유용, 뇌물수수 등이 주종을 이룬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나 부정은 인터넷을 통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충칭시 베이베이구(北??) 서기, 레이정푸(雷政富)의 ‘부적절한’ 관계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유포돼, 발뺌을 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인터넷이 부정부패를 때려잡는 유효한 수단이 된 것이다. 중국도 바야흐로 민중이 공직자를 감시하는 투명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교수 황종량(黃宗良)은 네티즌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인터넷을 통해 흥기하는 반부패 운동은 정상적인 통로는 아니지만, 강렬한 민의의 반영이다. 정부는 민중의 역량에 의지해 반부패 척결에 힘써야 한다. 문제 있는 간부의 선발을 피하기 위해서도 군중에게 진정한 감독권을 부여해야 한다.”
이전의 지도자들처럼, 새 지도부 취임 후 정풍운동의 불길이 거세게 피어오르고 있다. 그저 일과성 행사에 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중앙 편역국 마르크스주의 연구부 주임 지정쥐(季正聚)의 인터뷰 내용이다.
“당 내에 부패분자가 숨을 곳은 없다. 당은 부패한 무리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일전의 보시라이 사건은 바로 가장 좋은 증거이다.”
청렴하고 덕망 있는 지도자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신임 중앙기율위 서기 왕치산(王岐山, 65)은 반부패 청렴행정을 펼칠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과연 그가 주룽지처럼 ‘관’을 준비하면서까지 비장한 각오로 부정부패를 척결해 나갈 수 있을까? 지도자들 중에 혹시 ‘생선’을 탐내는 고양이는 없을까? 탐관이 탐관을 가려낼 수 있을까? 회의감이 꼬리를 문다.
대한민국도 과거 어느 한 시절, ‘부패공화국(ROTC, Republic Of Total Corruption)’이란 유행어가 나돌았다. 이 말은 사라졌지만 부정부패는 그칠 줄 모른다. ‘뇌물 검사’, ‘벤츠 검사’ 파문이 시사하듯, ‘청요직(淸要職)’에 근무하는 공직자의 부패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자체 장은 ‘구치소 행’을 예약이나 한 듯 수시로 감방에 들락거린다. 여수 말단 공무원의 80억원 공금횡령 사건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윗물도 썩고 아랫물도 썩었다. 이래서 지난 해의 한자로 교수들이 ‘거세개탁(擧世皆濁 , 굴원의 어부사에 보임)’을 뽑았나 보다.
주위에 한 때 이마에 별을 ‘주렁주렁’ 단 인물이 있었다. 작은 모자에 더 달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의 별’이 가득 찼다. 그의 좌우명은 ‘꿩 잡는 게 매요, 억울하면 출세하라’였다. 그는 좌우명대로 이 분야에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억울해서 출세했다”고 자랑스럽게 들려준다. 그가 어떤 수단, 어떤 방법을 써서 ‘출세’했는지 구체적으로 듣지 못해서 알 수는 없다.
그 앞에서 정의, 정도를 외치는 자는 바보나 철부지에 불과하다. ‘덜 떨어진 놈!’이라며 아예 사람 취급도 안한다. 그의 눈앞에는 자신의 출세를 보장해 준 사술, 음모, 음습한 뒷거래만이 이글거렸을 것이다. 은퇴한 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아직도 ‘꿩 잡는 게 매다’를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