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의 일본이야기] ASP, ‘일본’을 공부하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동문들은 참 별나다. 학교 다닐 때는 그리도 공부하기 싫다고 도망 다니더니 이제 다시 모여서 공부를 한단다. ‘아시아 연구 프로그램 ASP(Asia Study Program)’, 이른바 동양사학과 최고위과정이다. 실은 공부도 AS를 받아야 한다고 ‘After Service Program’이라고 이해하는 동문이 더 많다.

동양사학과 총동문회

서울대 100여 학과 중 유일하게 동문회가 없던 동양사학과가 동문회를 조직한 것은 2009년 가을이다. 학과 창립 40주년을 맞이하고 600여 명의 선후배가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모두가 다 반긴 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동창회가 긍정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해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매년 동창회보 <동사>를 만들어서 동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2년에 발간한 <동사> 4호는 350페이지 가량 된다고 하니 그 방대한 양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전공 교수님을 모시고 일본, 중국, 베트남, 터키, 이란 등 해외답사도 부지런히 했다. 각계각층의 선배들이 재학생들을 위한 ‘멘토링의 밤’을 가진 것도 여럿이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마련했다. 여느 집단에나 있는 산악회, 골프회 등도 활발하다. 그리고 ASP….

ASP, 동문들을 위한 특별 강좌

‘학습형 동문회 건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작년 5월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동양사학과 출신의 강사진이 매월 첫째 주에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2012년 5월에는 조영남(85학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21세기 중국의 부상과 국가발전 전략’, 6월에는 한광수(74학번) 인천대 교수가 ‘미국을 사랑한 중국’, 7월에는 김형종(78학번) 동양사학과 교수가 ‘마오쩌둥과 현대중국’을 강의했다. 방학을 보내고 9월에는 조영남 교수가 ‘혁명당에서 집권당으로: 중국공산당의 생존전략’, 10월에는 지해범(79학번) 중국전문기자가 ‘특파원이 본 중국, 한국은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11월에는 배경한(74학번) 신라대 교수가 ‘장제스와 현대중국’, 12월에는 구범진(87학번) 동양사학과 교수가 ‘만주족의 청나라가 어떻게 세계제국을 수립해갔는가’를 열강했다.

일본을 공부하다

2013년 ASP 주제는 ‘일본의 어제와 오늘’이다. 지난 4월 박훈(84학번) 동양사학과 교수가 ‘메이지 유신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강의했다. 메이지 유신의 이유를 18세기 말 러시아 쇼크 등으로 알 수 있는 과장된 위기감과 서양문물의 신속한 수입에서 찾았다. 또 하나 19세기 일본은 주자학의 전성시대라고 정의하고 유교적 정치문화의 확산과 활용이 변혁촉발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5월에는 원지연(84학번) 전남대 교수가 ‘근대 일본에서 전쟁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강의를 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대외 전쟁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정치문제로서의 역사인식’까지 민감한 부분을 다루었다. 최근 아베 수상이 언급한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없으며 국가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2013.4.23)”는 말 속에서 일본의 전쟁 인식 문제에 접근하기도 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항상 50~60명의 동문들이 관악 구석진 곳까지 찾아왔다. 엄격하셨던 교수님의 눈을 피해 강 건너 술집을 찾았던 선배도, F학점 하나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친구도 모두 한자리에서 열심히 수강했다. AS를 받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새로운 인물들도 보였다.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동문이 제자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이렇게 동문만이 아니라 동문가족과 친구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오는 6월 5일에는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를 모시고 ‘일본 전후 정치의 전개’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ASP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비동양사학과 출신 강사를 초빙했다. 장소 역시 서울대를 벗어나 충정로에 위치한 동북아역사재단으로 옮겼다. 더 많은 동문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배려한 모양이다.

2학기에는 ‘천황을 통해서 본 일본’, ‘무사를 통해서 본 일본’, ‘영웅 3인을 통해서 본 일본’, ‘신도를 통해서 본 일본’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준비하고 있단다. 야스쿠니 참배, 위안부에 대한 망언 등 한일관계는 매끄럽지 않지만 일본을 알고자 하는 작은 만남이 동양사학과 동문들 사이에서 시작되고 있다.

One comment

  1. 동문들끼리 모여서 이런 모임 너무 좋은것같아요. 저희 학교에도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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