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디 슬픈 찬란한 인생’ 살아낸 신복룡 교수 ‘나의 유언장’
신복룡 교수 자전에세이 <인생은 찬란한 슬픔이더라>는 책 중간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글과 시를 곁들였다. 도서출판 글을 읽다, 327쪽, 21,000원.
아래는 책에 실린 마지막 글 ‘나의 유언장’이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장례는 단출하기 바란다.
고별미사에는 천주교 성가 423번을 불러주기 바란다.
내가 운명할 때 내 몰골이 추악하다면 손주들이 임종에 참석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그들에게 추루한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여섯 명이랍니다)이 할아버지를 아름답게 추억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부고는 장례 다음에 신문으로 알리고, 부의금이나 조화를 받지 말아라.
부고에는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나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분들에 대한 용서를 비는 글‘을 넣어 주기 바란다.
장례용품은 비싸지 않아야 하며 곧 썩을 관은 얇고 싼 것으로 쓰고,
수의는 쉽게 분해되는 평상복으로 하되 따로 장만하지 않기 바란다.
염습을 하지 말아라.
형제 사이에 화목해라.
아내가 내 곁에 눕기 바란다.
실묘(失墓)를 하지 않도록 간단한 비석 하나만 세우고
그 밖의 석물을 쓰지 않기 바란다.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럴 만한 공업(功業)이 없으니 어쩌랴?
묘비명은 누운 비에 이렇게 써주었으면 좋겠다.
여기 조국과 학문과 자손을 위해 열심히 살다 간
신복룡(申福龍) 잠들다.
공부하고 싶어 어찌 차마 눈을 감았우?
1942년 5월 5일~20??년 ?월 ?일 아내 최명화 씀
(가족들 이름 중략)
어쩔 수 없이 매장법에 따라 나의 무덤을 없애야 할 때가 오면
지리산 연곡사(?谷寺) 동탑 부도 뒤의 둔덕에 재를 뿌려 주기 바란다.
*편집자주
천주교 성가 423번은 시편 90편을 바탕으로 지은 것으로, 제목은 ‘천년도 당신 눈에는’(원선오 작곡)이다.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1절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마치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
2절 당신이 앗아가면 그들은 한바탕 꿈 아침에 돋아나는 풀과도 같나이다
3절 아침에 피었다가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말라버리나이다
4절 사람을 진흙으로 돌아가게 하시며 인간의 종락種落들아 먼지로 돌아가라
후렴 주여 당신만은 영원히 계시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