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42회 “도마뱀의 꼬리”
? 그리움의 조건
“김 차장님, 그게 정말이에요?”
리엔과 서너 명의 직원들이 아침부터 놀란 토끼눈을 하고 찾아왔다.
“응? 무슨 일인데?”
“우리 리조트가 팔린다는 소문이 있어요. 사실인가요?”
“난데없이 무슨 소리야?” 기준 역시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곧 이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 마디로 황당한 소리였다.
“무사오 리조트가 여길 인수할 수도 있다던데요?”
얼마 전 무사오 리조트로 자리를 옮긴 옛 동료가 윗선에서 들은 이야기라며 리엔에게 귀띔해주었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무사오 리조트라니,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군.” 기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죠? 우리를 자극하려고 누군가 지어낸 말이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게 말이 되냐고.” 따라온 직원이 리엔에게 눈을 흘겼다.
“2기 기업연수단 행사도 곧 시작되는데, 그럴수록 우리 모두 각자 맡은 일에 차질 없도록 합시다.” 기준은 직원들에게 그렇게 다짐을 해서 돌려보냈다.
입맛이 썼다. 한쪽은 중국의 자본이, 한쪽은 한국의 투자로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신생 리조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두 리조트의 관계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자극하는 소문은 처음이었다. 사업적으로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기는 무사오나 남쏭이나 마찬가지이고, 규모도 엇비슷한데다 무엇보다도 추구하는 지향점이 서로 다른 데 무슨 근거로 그런 소문이 돈다는 말인가. 생각할수록 기분이 상했다. 게다가 얼마 전 무숙자가 남기고 간 말까지 되살아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기준은 리엔이 돌아간 후에도 하루 종일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변차장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야근을 하는 몇몇 직원들이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 회의실에서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변형섭은 손가락을 들어 기준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했다.
회의실 밖에 무료하게 앉아있자니 눈에 들어온 형섭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뭔가 심각한 듯 입을 쭉 내밀었다가 갑자기 보조개가 오목해지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양미간을 찡그리기도 하는? 등 그 모양이 참으로 변화무쌍했다.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한 동안 그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데 조그만 도마뱀이 기준이 앉은 바로 앞 벽에 붙어있었다. 잠시 후 놈은 재빠르게 천장 쪽으로 가로 질러갔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이자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마뱀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리저리 눈을 돌려도 보이지 않았다.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건가.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니 도마뱀은 기준의 머리 바로 위쪽에 붙어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대여섯 마리가 진을 치듯 포진하고 있었다. 기준은 흠칫했다.
“휴우, 이거 참.”
변형섭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다가왔다.
“변형, 뭐 골치 아픈 일이라도 있어?”
“…….”
기준의 물음에 대해 형섭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알면서 새삼스레 뭘 묻느냐는 듯.
기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 리조트 매각설 얘기가 돌던데, 그것 때문에?”
형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형은 어떻게 알았어?”
“오전에 리엔이 그러더군. 무사오 리조트에서 새어나온 얘기라고. 그런데 그게 사실이란 말이야?”
“현지인들은 현지인들끼리 은밀한 네트워크가 있는 것 같아. 우리 보다 더 빠르네.”
“도대체 어떻게 된 얘기야?” 갑자기 톤이 올라가자 옆의 직원들이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형섭이 기준을 끌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사실은 나도 김형에게 물어보려던 참이야. 내가 아는 게 뭐 있겠어?”
“그래도 나보다는 변형이 강 전무님이나 다른 임원들과 자주 이야기를 하는 편 아닌가.”
“공식적으로 나온 얘기는 아무 것도 없고, 아직 결정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 형섭은 뭔가를 아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 표정은 무슨 의미지?”
“암암리에 그런 움직임이 있긴 한 모양이야.” 형섭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난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데?”
“나도 그래. 그룹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형섭이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정말 매각 가능성이 있긴 있는 건가?”
“이건 순전히 나의 예측인데, 아마도 지금 떠도는 소문은 가능한 여러 대안들 중의 하나일 거야.? 무사오 측에서 어떤 조건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이 바뀔 수는 있겠지.”
“변형은 마치 남의 얘기하는 것 같아.” 기준이 얼굴을 찡그렸다. 가끔씩 변형섭의 속을 알 수 없다고 생각이 들곤 했었다. 도대체 이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공연히 짜증이 났다.
“강 전무가 본사에 간 것도 그 때문인가?” 말이 거칠게 나왔다.
그동안 강 전무의 집무실을 드나들던 정체불명의 방문객들, 그리고 강 전무의 잦은 서울 출장 등 여러 편린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룹의 자금 사정이나 회장의 투자 건 등 무숙자가 걱정했던 사항들도 추론의 단서가 되었다. 이런저런 퍼즐들을 조합해보면 최종적인 그림이 리엔이 전해준 소문에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마 무사오 리조트가 …….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 정리를 해보면, 우리 강 전무하고 여행 비즈니스 쪽의 사장, 이 두 사람이 매각 방안을 검토하는 중인가 봐.” 형섭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사장에 방점을 찍어 대답했다.
“뭐라고?”
기준은 귀를 의심했다. 설마 사장님이?
“뭐 그다지 이상하진 않잖아. 김형네 회사하고 우리하고 합병한 과정을 보면 말이야. 이미 그전부터 기업 M&A 쪽에 관심이 많고 거래 방법이나 손익 계산 같은 데에 눈을 떴겠지. 더구나 이번에는 거래 상대로 무사오까지 상정하다니, 아무튼 대단하신? 분들이야.”
돌을 씹은 듯 기준의 인상이 구겨졌다. 형섭의 말에 그대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께름칙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기준의 머릿속에 웽 하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모든 것이 낯설어 보였다.
서울 본사의 무숙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진즉에 무숙자에게 확인하고 싶었지만 오후 내내 미루어왔던 참이었다. 며칠 전의 통화에서도 무숙자는 기업연수단 추진 사항에 대한 이야기 외에 특별한 언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누구보다 무숙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이다. 그가 확인하는 정보라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룹?재무 쪽에서 조짐이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라오스 현장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모두 그냥 뜬소문으로 밝혀졌었거든요.”
“이번에는 다를지 몰라. 사장님이 관여하신다는 이야기도 있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줘.”
“사장님이요? …… 예, 알아볼게요.”
휴대폰 속에 흐르는 무숙자의 목소리도 그다지 밝지는 않았다.
밤 새 쏟아지던 비는 아침이 되자 그쳤다. 팀 미팅을 마친 후 기준은 리엔 등을 따로 불러 행여 매각 소문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당부했다. 오전 중에 연수단행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남는 시간에는 링크빌리지를 다녀오기로 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카오 람 대나무 밥을 하나 챙겨서 출발했다. 초조한 마음 때문인지 차가 움직이자마자 창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점심 요기를 위해 잠시 차를 세운 동안 외에는 줄곧 달렸다. 언제 날씨가 변할지 모르니 가능한 한 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링크빌리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볼륨을 낮추자 휴대폰 발신음이 크게 울렸다. 부재중 신호가 몇 개나 떠 있었다. 발신자는 모두 무숙자였다. ‘이런 제길’ 기준은 도로 변에 차를 세웠다.
“회장님 지시로 그동안 매각에 관한 논의가 몇 차례 있었나 봐요. 임원들 중에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서 잠시 중단된 모양인데, 그래도 우리 사장님하고 그쪽 강 전무 사이에서 꾸준히 검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사 상황이 더 악화되면 언제든지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죠.”
“그렇다면 거래 상대가 무사오 리조트인 것도 맞나?”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이지만. 무사오가 거론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기준은 숨이 찼다. 심장 박동 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런데 그 일을 어째서 우리 사장님이 진행하는지 모르겠네.”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 저도 첨엔 의외였어요. 하지만 아시잖아요. 전에 합병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역시 사장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생존이에요.”
“생존? 누구의 생존?” 기준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
“생존을 위해서 제일 먼저 잘라낸다는 게 미래의 가능성이란 말이지? 난 이제 사장님이 아주 낯설게 느껴져. 조직의 가치를 드높이라는 얘기도 결국 이거였던 건가?”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형.”
“아무튼 고맙다. 자주 연락해줘.”
전화를 끊은 뒤 기준은 주먹으로 핸들을 쳤다.
“빌어먹을!”
갑자기 자신이 소모품처럼 느껴졌다.
“생존을 위해서? 아무리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지만 그 많은 땀과 노력들을 이렇게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