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3회

1부

① 낙원의 이면

뜨거운 햇볕이 잠을 깨웠다.

차창 밖으로 한 사내가 열대의 태양을 등진 채 서 있었다. 역광으로 인해 실루엣만 어른거릴 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림자 사내가 영어로 물었다.

“괜찮소?”

고개를 저으며 문을 열다가 기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코끼리 한 마리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세차게 문을 닫았다.

“순한 녀석이오. 놀랄 것 없소.”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코, 코끼리가 왜?”

“차를 꺼내려고…….”

기준은 정신을 차린 뒤 사내의 얼굴을 살펴봤다.

얼마 남지 않은 백발에 가무잡잡하고 깡마른 라오스 남자였다. 머리 스타일 때문에 얼핏 노인처럼 보였는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40대 중반을 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현지 억양이었지만 영국식 발음이 묻어있었다.

사내는 밧줄로 코끼리와 차를 연결한 뒤 기준에게 손을 흔들었다. 기준은 시동을 걸어 서서히 가속 페달을 밟았다. 두어 번 요동을 치더니 차는 가까스로 길 위로 올라섰다.

기준이 내민 지도를 살펴보던 사내는 코끼리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기준에게 말했다.

“찾는 곳은 이곳에서 멀지 않소.”

차에서 내려서 멀어져가는 코끼리와 사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준은 그제서야 자신의 목에 걸린 코끼리 목걸이가 생각났다. 라오스의 옛 명칭인 ‘란상왕국’은 ‘백만의 코끼리’라는 뜻이었다.

기준은 자신의 초췌한 몰골에 혀를 차며 차를 몰았다. 간밤의 악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잠깐, 쌓인 피로감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어제의 폭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들의 미소처럼 해맑고 창창한 날씨에는 오히려 짜증이 났다. 하지만 리조트 지역에 들어서면서 바로 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두통과 피곤은 모두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초록색 산들이 겹겹이 서 있고, 위 아래로 구름과 강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색 그 자체였다. 리조트 현장은 라오스 특유의 신비로운 배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적의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준은 꿈속을 거닐듯 현장을 둘러보았다. 200여 개의 객실을 지닌 3층짜리 호텔 건물은 이미 완공되어 쏭강을 바라보며 길게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수영장과 방갈로, 골프장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50여 채의 방갈로 건물 사이사이로 산책로가 구불구불 이어졌고, 열대식물로 가득한 정원은 수영장과 맞닿아 있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은 저마다 개성이 넘치면서도 자연을 압도하지는 않았다. 숲과 건물이 적당한 선에서 공존하기로 약속한 것 같은 기묘한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휴양리조트로서 전혀 손색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 상상하던 그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기준은 모처럼 한가하게 주변 경관에 빠져서 리조트를 산책했다. 한 동안 리조트를 둘러보던 기준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경치 감상이나 할 상황이 아닌 듯 했다. 야자수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현지인 직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기준이 가까이 다가가자 하나같이 초조하고 피로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기준이 짤막하게 영어로 묻자 누군가 ‘레스토랑!’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을 따라 호텔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 아수라장이 펼쳐져있었다. 간밤에 쏟아진 빗물이 천정 조명기구 틈으로 새어 들어와 바닥이 수영장과 다름이 없었다. 아마도 갈라진 누수 부위가 점점 벌어지자 그 틈으로 시멘트와 빗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것일 게다.

수십여 명의 직원들이 정신없이 물을 퍼내고, 한쪽 구석에서는 고장 난 양수기를 고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은 더 이상 유입되지 않았지만 천정의 균열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양수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을 퍼내는 동안 직원들은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진 잔해들을 치우느라 부산을 떨었다.

상황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기준은 어쩌면 건물 벽이나 배관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기의 절정이라고는 하지만 하룻밤사이 내린 비로 인해 이 정도의 문제가 발생했다면 리조트 건설 현장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더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기준에게 다가왔다.

“김기준 차장님?”

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이제 오셨습니까?”

“새벽에 도착했는데 차가 그만 논두렁에 빠지는 바람에….”

“와우! 신고식 한 번 톡톡하게 치르셨네, 하하하.”

기준이 간단히 목례만 한 채 더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금세 웃음을 거두었다.

“총지배인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참, 저는 객실관리부를 맡고 있는 변형섭이라고 합니다.”

그는 기준과 비슷한 연배에 깔끔한 인상을 지닌 사내였다.

“저기 임시건물 보이죠? 저깁니다. 여기선 작전사령부라고 부르죠.”

“작전사령부?”

“… 뭐, 사실 나만 그렇게 부릅니다, 하하!”

기준은 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는 농담을 즐기려 애쓰지만 상황에 맞지 않아 매번 썰렁해지는 스타일 같았다. 그렇다고 그저 실없는 사람이라 단정하기엔 어딘가 지적인 티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묘한 친구로군.’

기준은 변형섭이 가리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대의 나무들이 바람에 사각거리자 아침 햇빛이 길 위로 잔뜩 부서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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