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37회

??사이의 힘

모처럼 객실은 풀 하우스가 되었다. 하지만 즐거워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연수단 일행이 도착하고 이틀 뒤 VIP 골프투어팀이 들어올 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장기투숙객들이나 사전 예약객들 외에 뜻하지 않게 수십 명의 일반객까지 추가로 한꺼번에 맞이하게 되자 리조트는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풀가동을 해야 했다. 강 전무 이하 모든 관리 직원들은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과연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개관 이후 최대의 투숙객에다가, 굵직한 행사까지 감당해야 할 상황에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모두들 담당한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고객 한 분 한 분께 최선을 다 하도록 하게!”
강 전무는 미팅 때마다 업무의 프로세스를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객실과 방갈로가 꽉 차고 모든 부대시설이 이용객들로 붐비는 상태가 지속되자 직원들은 사전에 정해진 절차와 명령만으로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각 부서의 고유 기능, 각기 담당한 제 업무에만 머물러서는 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없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직원들은 모두들 뭔가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행사단위로 고객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실무 현장에서 나왔다.

“고객을 구분해서 대우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차라리 모든 손님을 VIP로 대하는 것이 더 편합니다.”??
“누가 연수단이고, VIP인지 누가 일반손님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고객은 없습니다.”??
“우리 눈에는 모두가 우리 리조트의 소중한 손님일 뿐이니까요.”

연수단 진행팀에서 VIP쪽 행사의 담당 매니저로 옮겨간 캄샤이도 같은 의견이었다. 연수단의 식음료를 담당하면서 진행팀장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리엔의 일처리도 훌륭했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준은 캄샤이의 업무 처리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그동안 잠자고 있던 능력을 최대치로 발산하기라도 하듯 종횡무진 활약했다. 캄샤이는 골프 투어 외에도 크고 작은 행사 관련 직원들과 수시로 대화를 하며 행사 진행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연수단 담당자와 VIP 담당자, 그리고 일반객 담당자들이 제각각 자기 그룹을 밀착 관리하는 동안 현장의 직원들은 프런트 데스크와 객실, 방갈로, 부대시설 등을 순회하며 번갈아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세 명의 대리급 직원들이 별도로 관리자와 현장 사이를 오가는 연락책 역할을 맡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서와 부서 사이, 팀과 팀 사이, 업무와 업무 사이는 마치 고질적인 관절염 환자처럼 불협화음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항상 부어오르고 통증을 일으키던 관절부위가 너무도 잘 돌아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기준으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청 테이프 효과가 대단하네.” 놀라기는 변형섭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상당수의 직원들은 자기 업무를 마친 뒤에도 퇴근하지 않고 동료들 주위에서 자리를 지켰다. 비상 기간 동안 거의 전 직원이 이틀 이상 자청해서 당직 근무를 섰다. 객관적으로 업무의 부하가 크고 기술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분명 있었지만 그것이 고객들의 불만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많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연골의 역할을 해준 덕분이었다. 연수단이나 골프 투어 등의 행사를 추진하면서도 대부분의 관리자들이 직원들의 업무 처리 능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정작 직원들은 더 중요한 ‘사이’의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수단팀에서 진행하는 링크빌리지 체험활동은 오가는 교통 시간과 현지 체류 시설 등의 문제로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티끌 하나 없는 미소와 마을 주민들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정성을 담은 환대를 대하고는 이런저런 사소한 불편함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았다. 안젤라의 헌신적인 모습과 루앙의 솔선수범하는 카리스마도 연수단에게는 인상적이었는데, 그에 더하여 무숙자의 쾌활함이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현지주민들과 연수단 사이에 있었던 서먹함은 이내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마을의 청소년센터를 건축하기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주정부에서 장비를 지원해주고 루앙과 마을 청년들이 미리 기초공사 등을 해둔데다가 건물의 완공 자체가 체험활동의 목적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는 군소리가 쑥 들어가고 작업이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게다가 청소년센터는 건물의 주인이 될 아이들도 건축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마을의 원칙 때문에 아이들까지 힘을 보태면서 작업의 진행은 예상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연수단참가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일을 나누어 하면서 아이들의 열심과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마을의 특징은 모임이 많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아이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은 항상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보면 수시로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서 일을 해나가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마을을 만드는 데는 마을의 모든 구성원이 자기 능력껏 애착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에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고 모르면 배우고 함께 가꾸어 간다. 루앙이 소개한 마을의 운영 원칙들이었다. 링크빌리지에서 만난 이런 저런 작은 놀라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특히 링크빌리지의 주민들이 리조트 지역의 이주민인데도 불구하고 리조트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고 리조트를 위해 연수단 체험행사를 함께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놀라움을 넘어 신기하다,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모든 진행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연수단이 마을주민들과 환송행사를 마치고 리조트로 귀환하는 날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장기투숙 중이던 중국인 내외가 프런트에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찾아달라고 했다.

“올 때가 훨씬 지났거든요. 수영장에서 노는 줄만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아요.”
사색이 된 중년 내외는 발을 동동 굴렀다. 프런트 직원은 일단 큰 일이 아닐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 뒤 변 차장에게 알렸다.

“우선 아이들이 갈 만한 곳을 중심으로 찾아보게.”?
신속하게 움직이되 다른 투숙객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시킨 변형섭은 잠시 후 별도로 다른 직원들을 시켜서 리조트의 위험 지역을 꼼꼼히 훑어보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코끼리 사육장 부근에서 물놀이 도구 등 아이들의 물건이 발견되었는데 정황상 사고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큰 아이가 중학생 또래니 염려가 덜 되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곧 나타날 것 같던 아이들은 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주변에 널린 빈 방갈로나 쉼터 공간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거나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 깊이 잠들어 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쏭이 달려와 자기 배가 없어졌다고 하면서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니 배가 보이지 않아요.”?
쏭은 강 건너 마을을 오갈 때마다 모터가 달린 기다란 배를 이용하곤 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조르는 바람에 태워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걸 왜 지금에서야 보고하나?” 변 차장은 큰 소리를 냈다.
변형섭은 십대 아이들의 모험심이 발동한 것으로 판단했다. 좁은 수영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싫증이 나자 더 넓은 강으로 나가기 위해 강가에 대놓은 배를 타게 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돌자 곧이어 투숙객 중 누군가가 두 세 시간 전에 아이들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노는 것을 보았다고 알려왔다.
“연료도 거의 떨어졌는데……” 쏭이 울상을 지었다.
“그 배에 노가 있었나?” 변 차장의 물음에 쏭이 다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터가 있으니 노를 갖추지 않은 것은 당연했으며, 설령 노가 있었다 해도 아이들 힘으로 강을 거슬러 오르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 말은 곧 아이들이 강 하류로 떠내려갔을 거라는 뜻이었다.

리조트에 비상이 걸렸다. 변 차장은 강 전무에게 달려갔다.
“아무래도 경찰의 협조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변형섭은 왕위앙 경찰에 알려 긴급구조대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전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일단 자체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쪽이었다.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은 상황을 보면서 결정하도록 하지.”?
아무래도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변형섭은 기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연락을 받은 기준은 곧 왕위앙의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보트를 몇 대나 띄울 수 있는지 확인했다. 두 대를 곧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그것으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기준은 방법을 달리 찾아야 했다.??
아이들을 찾으러 나갈 때만 해도 햇발이 다 빠지지 않았었는데 어느 새 땅거미가 내려 달빛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도 수색을 나간 보트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자칫 심각한 상황이 야기될 지도 모를 일이다. 기준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직원을 불렀다.
“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배를 띄웁시다! 구조 장비도 챙기고 손전등하고 튜브도 준비해야 합니다.”
직원들은 곧장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곧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하는 소리들로 부산해졌다.

그 사이 노을이 지고 리조트 입구의 네온사인 불빛이 밝게 빛났다. 리조트 선착장 주변의 외등에도 불이 하나 둘 들어왔다. 그 때 주변의 강가에 보트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의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잠시 후 장관이 펼쳐졌다. 리조트 선착장 주변으로 열 세 대의 보트가 불을 밝히며 일제히 모여들고 있었다. 기준은 장비를 챙겨 들고 달려 나갔다.??????

그런데 곧이어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골프투어 고객들과 기업 연수단 일행들이 선착장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소식을 들은 골프투어팀과 기업연수단의 대표격인 사람들이 자신들도 힘을 보태겠다며 강 전무에게까지 찾아갔는데 강 전무가 승낙을 하지 않자 선착장으로 몰려나온 것이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조명 기구 등 필요한 장비를 든 사람들이 하나 둘 모터보트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우리도 돕겠소!”
“그래요, 다 함께 아이들을 찾아봅시다!”
어느 틈에 리조트 직원과 투숙객의 구분이 없어졌다. 다들 한 뜻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배를 타고 나간 지 서너 시간이 지난 상태입니다. 연료가 떨어졌을 테니 강물을 따라 하류로 흘러갔을 겁니다. 차례로 대열을 짜서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기준이 배에 탄 사람들에게 소리치자 배들이 열을 지어 출발했다.

변형섭은 로비에서 아이들의 부모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썼다. 퇴근 준비를 하던 직원들도 모두 로비에 모여 있었다. 연회실의 조명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비상 조명 장치들을 꺼내 강 쪽을 훤히 밝혔고, 레스토랑 주방에서는 허기져 있을 아이들을 위해 리엔이 특별식을 만들고 있었다. 나머지 직원들도 모두 자기가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움직였다.?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보트 부대가 출발한지 40여 분 뒤에 첫 연락이 왔다. 왕위앙 시가에서 한참 떨어진 강 하류 후미진 곳에서 아이들을 발견한 것이다.
“아이들은 무사한가요?”?????
“좀 놀라긴 했지만 모두 무사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부모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로비에 모여 있던 직원들과 투숙객들도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달빛이 어스름하게 드러날 즈음 리조트 선착장으로 배들이 돌아오고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박수를 쳐서 환영해주었다. 기준은 멀쩡하게 정신을 차린 아이들을 뒤늦게 울먹이기 시작하는 부모 품에 안겨 주었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준이 수색 작업에 대해 강 전무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간단히 보고를 하는 사이 수색 작업에 참가했던 배들이 스르르 달빛 속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비상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한 차례 소동을 치른 뒤, 단체객과 VIP 고객, 그리고 일반객의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손님과 직원들 사이에 묘한 유대감이 싹트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직원의 실수를 손님이 덮어주며 ‘이럴 때는 이렇게 하라’는 식으로 힌트를 주기까지 했다. 직원의 실수를 심각한 오류로 여겨왔던 사람들은 여간해서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현장의 직원들은 이미 정해진 절차와 명령이라는 통제권 안에서만 행동하지는 않았다.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손님과 직원이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둥글게 뭉쳐지면서 커다란 가족 공동체처럼 보였다. 기준은 문득 총지배인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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