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15회

2부

① 리베로와 포드

라오스에 온 뒤로 아침잠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바뀐 환경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오전 6시에 눈을 떠 리조트 공사 현장을 둘러본 뒤 일찍 출근한 직원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바게트 빵과 라오 커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보면 8시가 채 되지 않았다. 덕분에 오전 시간을 잘 활용하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시설부 매니저라는 직함은 변함없었지만 요 며칠 사이 기준의 태도에는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이 진행되어가는 전체적인 과정과 앞으로 닥칠 일을 예측하는 데 신경을 썼다. 그것은 좀 더 큰 그림 위에서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필요를 느낀 때문이다. 리조트에 대한 시각도 조금 달라졌고 전에는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했던 사안이 중요한 이슈로 보이기 시작하고? 개선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기준 자신을 포함해서 대다수 현지 직원들의 업무 역량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서비스 능력의 질적인 향상을 논하기 이전에 가장 기초적인 업무에서부터 꽉 막혀 있었다. 그동안 총지배인의 독선이나 변형섭의 비협조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정작 필요한 준비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기준은 호텔의 각 부서를 순례하며 해당 직원들과 함께 해당 업무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현관의 벨맨에서부터 레스토랑, 객실, 프런트오피스 등 시설부 이외의 분야를 파악하지 않고는 전체적인 호텔 업무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며칠 안 되었지만 역시 실무 차원에서 현장을 경험해볼수록 실로 만만치 않았다. 그제서야 기준은 개관을 앞당기는 문제에 대해 변형섭이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짐작이 갔다. 또한 개관이 연기되는 데 있어 나름 역할을 했던 변형섭의 행동 역시 총지배인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극약처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었군.”
기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변형섭은 마무리공사가 끝난 연못가에 혼자 앉아 날이 밝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이 시간, 이 장소를 즐긴다는 사실을 기준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함께 나란히 앉기는 처음이었다.
강 건너편 공터에서는 동이 트기 무섭게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나와 공을 차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아이들을 구경했다.
“자식들, 죄다 리베로야.” 조금 머쓱한 감정이라 어떻게 말문을 터야 할 지 고민하던 차에 변형섭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가 리베로 홍명보라면 잘 한다는 뜻?”
기준의 대꾸에 변형섭이 고개를 흔들었다.
“포지션이란 게 없잖아. 죄다 리베로지. 혼자서 미드필더, 공격수, 수비수 다 해먹다 보니까 공 날아가는 쪽으로만 우르르 몰려가지.”
그의 말이 이어졌다.
“프로 선수들은 아무래도 다르겠지. 공을 보는 게 아니라 흐름을 보니까. 상대편의 움직임에 따라 각자 자신의 포지션을 정하지. 거기서 약속된 플레이가 나오거든. 좋은 감독은 승리보다는 골을 넣는 과정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던데, 일리가 있는 말이야.”
묵묵히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기준이 입을 열었다.
“부지배인이 오면 좀 달라지겠지?”
“강 전무? 아무래도 그렇겠지. 총지배인은 리조트 마무리 공사에 전념하게 될 테니까 사실상 부지배인이 호텔 업무를 총괄하게 될 거야. 강 전무라는 사람, 데이터를 보니까 대단한 인물이더군. 확실한 건 아마도 지금부터는 전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게 될 거라는 거야.”
“전과 다른 방식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사 현장을 생각해봐. 기둥 세우던 친구가 마루도 깔고 지붕도 올리고 이 것 저 것 다 해. 또 옆에서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달려가서 하루 종일 그 일에만 매달려. 그런데도 일 잘 한다고 칭찬을 받으니 다른 인부들도 다 따라 하지. 하지만 일에는 도무지 체계가 없어서 효율이 나지 않지. 포드시스템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인데 여기서는 아직도 100년 전보다 더 오래된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거야.”
“포드 시스템?”
“헨리 포드가 서민 형 자동차 모델 T를 세상에 내놨을 때 사람들은 그를 자동차 왕이라 불렀지. 하지만 포드의 진정한 업적은 자동차가 아니라 ‘차를 만드는 방법’이었어. 흔히 포드시스템이라 불리는 분업화된 조립라인 방식 말이야. 그 전에는 차 한 대를 조립하는데 13시간이나 걸렸지만 포드시스템이 도입된 뒤로는 90초에 한 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됐어. 모델 T가 나왔을 때 소비자들은 환호했지만 생산자들은 경악했지. 작업 순서만 바꿔도 더 짧은 시간에 더 적은 인력으로 생산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그러니까 우리한테도 포드주의 시스템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변형섭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한시적으로만 필요할 뿐이야. 지금 세계는 좀 더 유연한 포스트 포디즘을 이야기하는 시대니까.”
“포스트 포디즘이란 또 뭐지?”
“포드시스템은 숙련도가 떨어지는 노동자들을 투입하여 표준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었어. 하지만 고객들의 요구가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는 환경에 대응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그래서? 포드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포스트 …”
“아,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포스트 포드시스템이 되겠군.” 기준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변형섭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말을 이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포디즘이나 포스트 포디즘을 모두 넘어서서 바로 여기 라오스 현장에 맞는 서비스 시스템을 만드는 게 최선이겠지.”
“포디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여기 라오스 현장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변형의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네.”
“그게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 아니겠어? 분명히 더 나은 방법이 존재할 거야.” 변형섭이 말에 힘을 주었다.
자동차 생산 작업과 리조트 서비스 업무를 그대로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기준은 시스템에 대한 변형섭의 논리에 제법 공감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총지배인과 변형섭 사이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변형,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해.”
기준이 진심을 실어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니까. 내 관심사는 좋은 시스템 속에서 신나게 일해 보는 거야. 김형이 동참한다면 대환영이지.”
두 사람은 오랜만에 웃음을 나누었다. 이제 며칠 후면 강 전무가 부임하기로 되어있다. 두 사람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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