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6회

②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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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은 변형섭의 지프에 올라 산간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언제 폭우가 쏟아졌던가 싶을 정도로 맑고 뜨거운 날씨였다.

“루앙이라는 양반, ……어떤 사람이죠?”

기준이 물었다.

“영국에서 살다 왔다는데 자세한 건 모릅니다. 여기선 별명이 코끼리 철학자입니다. 아는 것도 많고 성격도 좋은데 가끔씩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게 문제죠.”

“코끼리 철학자라……, 그것도 변차장님 혼자 하는 얘기죠?”

“아마, 그럴 겁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시설부 업무를 맡게 된 건가요?”

“아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돼가는 건지.”

“총지배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예요. 금방 익숙해질 겁니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해서야…….” 기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선 다 됩니다. 나도 전공하고는 그다지 상관없는 객실 매니저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전공은……?”

“소프트웨어 공학이라고 좀 복잡한 걸 했습니다.” 변차장의 입에서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나저나 아직 공사를 하고 있던데 어느 정도나 진행됐습니까?”

“호텔 건물은 지난주에 일단 완공됐지만……, 방갈로나 기타 부대시설은 아직 일이 남았습니다. 일 년의 반이 우기라니, 원.”

변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호텔을 앞당겨 개관하는 것은 영업 시기를 앞당기려는 총지배인의 의욕이 가장 컸다. 하지만 리조트 정식 오픈에 앞서 종업원들의 업무 능력을 점검하고 실전 훈련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실무적 판단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현재의 직원들은 주정부의 추천으로 선발된 경력자들인데도 처음부터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할 만큼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변차장의 생각이었다.

한 시간 여 뒤 자리를 바꾸어 기준이 운전대를 잡았다. 변차장은 보조석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꺼냈다. 곁눈질로 보니 모니터 위로 꽤 복잡한 프로그램 언어들이 스크롤되고 있었다.

“어떤 프로그램입니까?”

“미운 오리 새끼입니다. 버림받은 프로그램이죠.”

“예?”

“일종의 업무관리 프로그램이죠. 직원들의 업무 과정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틈틈이 만들어봤는데 이제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왜죠?”

“사령관한테 보여줬더니 고개를 젓더군요. 일만 복잡하게 한다면서.”

변차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오겠죠.” 위로의 말을 건넨 기준은 출발할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건설국에서는 누굴 만나는 겁니까?”

“카이손 아마스라고, 왕위앙 지역 책임자입니다. 원래 리조트 개발 초기단계 때만 해도 위앙짠 주정부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약속했었는데 갑자기 주지사가 바뀌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겁니다.”

변차장의 미간에 다시 주름이 깊게 파였다.

기준은 핸들을 바르게 고쳐 잡고 말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옆자리의 변은 다시 프로그램에 몰입해 있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일이 좀 엉성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군요.”

기준은 불편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총지배인 혼자서 여기까지 끌고 온 겁니다. 혼자서, 오로지 뚝심 하나로.”

변차장이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예전에는 이쪽 진출하려면 민간이 우리 정부쪽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죠. 물론 일본 같은 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착착 마련해주던 때였지만 우리에겐 그런 시스템이 없었답니다. 그런 시절에 총지배인 혼자 라오스 정부의 말단 관리부터 끈질기게 만나가면서 일을 만들어온 겁니다.”

“대단하군요.”

“물론 그렇긴 하죠. 그땐 그런 열정이 통했을 테니까. 하지만…….”

변차장이 노트북을 덮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당시에 잘 먹혔던 방법이 지금도 여전히 통할 거라고 믿으면 곤란하죠. 의지로 밀어붙일 때가 있고, 시스템으로 일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말입니다. 뛰어난 스타플레이어가 모두 훌륭한 감독이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총지배인이 그다지 적임자가 아니라는…….”

아차, 너무 나갔나 하는 생각에 말꼬리를 흐리며 변차장의 눈치를 살폈다.

“거기까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답답하지요.” 변 차장은 알 듯 모를 듯 표정을 지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방법을 계속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긴 하죠.”

“그게 어디 쉽게 바뀌겠습니까?”

기준은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말이 엇나가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러니 갈수록 땀과 열정만 강조할 수밖에요. 누가 그러더군요.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못처럼 보인다고. 매번 망치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난관이 생길 때마다 더 큰 망치를 찾는 거죠. 총지배인은 망치고 우린 못입니다, 못.”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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