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27회
? 연결의 방법
“다녀왔습니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기준은 총지배인을 찾아갔다. 못 보던 사이 그는 좀 더 수척해져 있었다.
“그래 다녀보니 어떻던가?”
“루앙프라방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관광 수요가 저조한 편입니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돌파구?”
“루앙프라방이 옛 건물과 라오스 전통 문화의 도시라면 왕위앙의 매력은 자연 속에서 꾸밈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루앙프라방이 여기서 최소한 두세 시간 거리에만 있었어도, 아니면 두 도시 사이에 빠른 고속도로가 놓여있었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오스는 산의 나라이고, 왕위앙은 산 속의 고립된 휴양지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걸 몰라서 확인까지 했다는 말인가?”
“그걸 제 몸으로 확인하는 데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립되었다면 열어야 한다. ‘여는 길은 연결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결을 하자? 누구와 무엇을 연결을 한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총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들은 열심히 하는데……. 객실 비는 것도 문제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활기는 보여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 직원들이 내 식구처럼 느껴지지가 않는군.”
예약 문의가 점점 줄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리조트의 분위기는 훨씬 가라앉아있었다.??
“요 몇 달 사이에 다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겉으로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죠. 다만 직원 개개인의 몸에 체화되는 데에는 사람들 사이에 함께 하는 공유의 경험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직원들에게 함께 하는 공유의 경험이 부족하다?”
그 말이 정서적 공감을 중시해온 총지배인의 신경을 거슬릴 수도 있다는 것, 기준도 알고 있었다. “자네야말로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한 세월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군.” 총지배인은 굳이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기준은 공감이라는 게 감성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것 이상의 무엇이라는 생각했다. 총지배인이 리조트 직원들에게 느끼는 공감, 그것은 한 가정의 가장이 식구들에게 느끼는 감정에 가깝다. 하지만 총지배인은 직원들의 가장일 수가 없다. 물론 직원들은 더 이상 총지배인을 아버지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가족주의라는 경영이념을 버리지 못하는 총지배인의 고집이 경탄스럽기만 하다.???????
“어제 수영장을 둘러봤는데, 관리하던 직원이 청소할 시간이라면서 물놀이하던 아이들을 끄집어내더군. 기가 막혀서 물어봤더니 자기 일정표를 보여주는 거야. 수영장 하나 관리하는데 뭔 일정표가 그렇게 빽빽하던지.”
총지배인의 얼굴에 짙게 그늘이 지고 있었다.
기준은 그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알 것 같다. 하나의 거대한 가족과도 같은 리조트를 꿈꿔왔지만 지금 눈앞에는 강 전무의 무미건조한 리조트가 펼쳐져 있다. 싫든 좋든 강 전무가 있었기에 리조트는 예정대로 문을 열었지만, 건강 문제가 불거지면서 더불어 장악력이 위축된 총지배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처지가 된 것이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말을 꺼내놓고 기준은 ‘아차’했다. 다시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셈이 되었다. 총지배인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호텔 개관이 연기됐을 때, 나는 내 방식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네. 허나 지금의 방식을 우려했었지. 나는 우리 리조트에 무엇이 최선인지 끊임없이 찾고 있네.”
기준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자네의 진정을 믿고 싶네. 그만 가서 씻고 옷이나 갈아입게.”?
총지배인이 기준의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눈을 찌푸렸다.
기준은 숙소에 들려 몸을 씻고는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호텔 건물로 향했다.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수십 명이 넘는 투숙객들이 체크인하기 위해 카운터 주변과 커피숍 입구 등 곳곳에 흩어져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꽤나 오래 기다렸는지 다들 지치고 화난 표정들이었다. 프런트의 직원들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기준은 서둘러 변형섭을 찾았다.
“변형, 도와줄 일 없나?” 역시 변 차장은 관리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 왔군. 객실 정리가 늦어져서 손님들이 대기하는 중이야. 룸메이드 상황 좀 체크해 주겠나?”
기준은 곧장 객실로 달려갔다.
예상했던 대로 직원들은 느긋해 보일 만큼 정석대로 객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환기구의 먼지를 털어 내거나 벽에 걸린 액자를 떼어 걸레질까지 하고 있었다. 기준이 로비의 비상 상황을 알려주고 신속하게 끝낼 것을 지시하자 직원들은 체크리스트를 보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기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무전기에서 변형섭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형, 레스토랑으로 가 봐.”
레스토랑으로 내려가자 주방장과 식음료 매니저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손님들이 단체로 생선회를 주문했는데 재료가 모자랍니다.”
“몇 인분이나?”
“30인분입니다.”
“주문받기 전에 체크하지 않았습니까?”
“웨이터가 주문부터 받아 버렸습니다.”
기준은 잠시 생각한 뒤 헤드웨이터에게 말했다.
“일단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대체 가능한 메뉴로 바꿔서 양해를 구하세요. 그리고 특별 서비스 메뉴를 제공하세요.”
임시방편으로 레스토랑 문제를 해결한 뒤 기준은 다시 프런트로 달려갔다. 로비의 손님들은 어느 정도 줄어 있었지만 프런트는 여전히 경황이 없었다. 소동은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잦아들었다.
기준은 변형섭과 함께 리조트 연못가에 앉아 땀을 식혔다. 몇 주 사이에 변형섭은 꽤 의기소침해진 모습이었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좀 더 효율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 거기에 맞게끔 효과적인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일, 혹시 내가 그런 걸 공부했다고 생각해?”
기준은 변형섭의 질문이 뜬금없다는 생각을 들었다.?
“사실 나는 소프트웨어 공학이 정확히 뭘 공부하는 것인지 잘 몰라.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는, 넓게 보면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니 면피가 될 수는 없겠네.”?
변형섭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공부한 분야는 현실의 서비스나 제품이라기보다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방법을 공부한 것이지. 내가 관심을 가졌던 프로그램들은 거대한 빌딩 숲이 있는 문명사회에서 쓰이지.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도시의 정글에서 말이야. 그런데 나는 지금 라오스의 정글 속에 있어. 정글은 정글인데 달라도 너무 달라.”
“자네 프로그램이 여기서는 소용없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강 전무가 라오 프로그램을 확실하게 보완하라더군. 그런데 그 말이 나에게는 프로그램을 폐기하라는 지시로 들려. 전체 시스템을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얘기야. 그런데 내 생각도 강 전무와 같아.”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데, 많이 개선되지 않았어?”
“개관 때에 비해서는 조금 나아져 보이지. 하지만 안으로는 모두들 정신없이 임기응변 하느라 바쁘지. 강 전무 평가에 의하면, 그러면서 업무에 익숙해지는 거라더군. 하긴 나도 이렇게 잘 적응하고 있잖아.”
“허참, 내가 그렇게 오래 떠나 있었나?”
“강 전무 그 양반, 확실히 보통은 아니야. 어찌 보면 라오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운영 시스템은 강 전무의 머릿속에 있지. 그런데…….”
변형섭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기계 속에 들어간 기분 알아? 직원들 말이야, 꼭 무슨 기계 부품 같잖아.”
기준은 변형섭의 말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으로 들렸다.
누구보다 강 전무의 머릿속을 잘 헤아려야 하는 변형섭, 기계 부품이라는 느낌은 변형섭이 가장 강할 터였다. 직원들 역시 손님을 위한 서비스보다는 업무 체크리스트의 항목이나 한정된 메뉴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강 전무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바탕으로 프로그래밍된 매뉴얼에 갇히다 보니 크고 작은 돌발 상황 앞에서 자발성을 발휘하기 힘든 것이다.
“영업부서에서 월 마감 실적을 극대화하려고 대책 없이 고객을 당겨 받았어. 왜 한꺼번에 손님 몰리는 상황 있잖아. 그런데 객실부에서는 소화 능력이 없는 거야. 금세 마비가 되고 말지. 작게는 체크아웃 손님과 체크인 손님과의 시간차 문제부터 객실 청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뒤얽히거든.”
기준은 문득 변형섭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표정은 어두웠지만 예전보다 책임의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일이 진행되는 현장과 프로그램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 …… 그래서 때로는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살기도 해.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의 중간계 쯤이라고나 할까? 두 세계를 이상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 그런 게 가능할까?”
“그러니까 시스템이란 두 세계를 연결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뭐, 그런 셈이지.”
“연결이 필요한 이유는 두 세계의 차이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고?”
“그렇지.”
“…… 변형, 이제 초점을 바꿔보는 게 어때?”
“초점을 바꾸다니?”
“시스템이 아니라 연결을 먼저 생각해보자고. 변 차장이 말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은 바로 연결의 방식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연결의 방식? 잘 모르겠네.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의 대화라 그런가? 김 차장의 말이 꽤 어렵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앞뒤가 딱 맞는, 정답이 꼭 하나 밖에 없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연결 방식을 고집하지 말자는 이야기지. 이를테면 기계처럼 하나의 해답만을 고집하지 말고, 사람처럼 정답이 여러 개 있을 수 있는, 그 때 그 때 최적의 솔루션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연결 방식은 불가능할까?”????
기준의 말에 변형섭이 눈가에 깊게 주름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건 더 어려운 주문인걸.”???
“우리 리조트 서비스의 중심은 사람이잖아. 서비스의 핵심은 사람의 마음이고. 그러니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치 자석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는 마음이라는 자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문제는 서로 배척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연결망을 만드는 것인데.”??
“무슨 소리야? 오늘은 유난히 뜬 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네. 허허.”
“맞아, 사실은 나도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네.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고 해본 소리야.” 기준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두 사람은 모처럼 파안대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