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18회
일정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주말에도 편히 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상시적으로 스트레스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으니 작은 긴장도 갈등으로 비화되기 십상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오전부터 객실과 레스토랑 등을 담당하고 있는 개별 부서와 전체적인 관리를 맡고 있는 시설부와의 사이에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완벽한 임무 수행이 지상과제로 떠오르면서 시설부 사무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 213호 객실인데 출입구 조명이 깜빡거립니다. 와서 확인해 주세요.”
직원이 객실로 달려가면 곧바로 다른 요청이 쇄도했다. 레스토랑 냉동 창고 온도계가 고장 났다거나 세탁실 배수구가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등 사방에서 크고 작은 문제로 끊임없이 연락해오기 시작했다. 때로는 직접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소소한 문제조차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시설부를 구워삶기 일쑤였다. 자연히 시설부 직원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게 되었으며 마침내 타 부서 직원들과의 언쟁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기준은 시설부 내에 ‘요구처리 팀’을 임시로 만들었다. 각종 수리 요청 사항을 받아 중요도 순으로 거르는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었다. 연회장 관리자에게는 스피커의 잡음이 아주 커다란 문제였지만 객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메이드 입장에서는 타일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일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부서와 부서 사이에 장벽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카펫 위에 방치해놓은 케이블 뭉치에 걸려 넘어졌어요. 이건 순전히 방송실 책임입니다.”
연회장 담당자가 소리를 높였다. 서빙 연습을 하던 여직원 하나가 갑자기 넘어지는 바람에 한쪽에 쌓아놓은 와인 잔 100여 개가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여직원은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지만 깨져버린 고급 와인 잔을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자 방송실 직원이 화를 냈다.
“오늘 중으로 스피커 고쳐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케이블 탓입니까? 우리 작업할 때만이라도 자리 좀 비켜달라고 했잖아요. 그까짓 서빙 연습이 뭐 그리 대수라고.”
“뭐요? 그까짓 서빙 연습이라니!”
뒤늦게 달려온 기준이 가까스로 싸움을 말렸다. 그는 이런 종류의 다툼만 벌써 열 번도 넘게 목격했다. 시설부와 다른 부서들과의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업무에 차질이 생긴 원인 중 가장 공통된 의견이 바로 ‘시설부의 비협조’였다. 누구보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마치 공공의 적처럼 취급되자 시설부 직원들은 기준에게 울분을 터뜨렸다.
“야근까지 하면서 욕을 얻어먹어야 합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부서장들과 협의하기도 했지만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준은 변형섭을 찾아갔다.
“변형, 이거 아무래도 문제가 좀 있어.”
“응? 무슨 문제?”
변형섭은 프런트오피스 직원들에게 프로그램 사용법을 열심히 설명하던 중이었다.
“부서 간에 충돌이 점점 잦아지는 것 같지 않아?”
“아, 그거? 개관이 임박하다 보니 다들 조금씩 예민해진 모양이야.”
변형섭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게 아닌 것 같아. 내가 보기엔 직원들 모두 자기 부서에만 갇혀 있는 느낌이야.”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거야. 개별적으로 기능을 익히는 중이라서 그래. 가장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거야.”
“라오 프로그램 말이야, 아주 잘 사용하고 있긴 한데 한 가지 제안해도 될까?”
“어떤 제안인데?”
“업무 시간과 작업 과제들을 배치할 때 부서 간의 충돌 가능성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로 들리네?”
그는 라오 프로그램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점을 기준이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아무리 완벽한 프로그램이라도 현장에서의 문제점들을 최대한 반영해가면서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얘기야. 더 나은 방법은 늘 존재한다, 이거 자네가 한 말 아닌가?”
기준은 가능한 한 완곡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굳어진 변형섭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무슨 얘긴지 잘 알았네. 한 번 검토해 보도록 하지.”
변형섭은 무뚝뚝하게 내뱉고는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기준은 한 마디 더 하려다가 그냥 돌아섰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강 전무와 변형섭은 나름대로 철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준은 그들이 뭔가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일까?
……사람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기준은 그제야 루앙이 했던 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강 전무와 변형섭의 체크리스트에는 일의 진행 과정과 단계적인 업무 성과만이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 일을 수행하는 당사자들의 변화를 가늠할만한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별 부서의 능률이 오르고 그만큼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전에 없던 성취욕구와 동시에 경쟁심이 생겨났다. 고무적인 현상이기도 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부서와 부서, 개인과 개인 간의 장벽이 생겨난 것이다. 기준은 이런 상황이 앞으로 또 어떤 현상을 불러올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강 전무로부터 호출이 왔다.
“수영장하고 피트니스센터 말이야, 일정보다 너무 늦어지고 있어.”
피트니스센터는 1층 스파와 마사지, 2층 헬스장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건물이었으며 현재 2층 공사가 한창이었다.
강 전무가 기준을 부른 것은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의 마무리 공사를 관리 감독하라는 뜻에서였다.
“지금 시설부 전 직원이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 업무량이 포화상태인데…….”
“숙련된 기술자들을 지원할 계획이니 걱정 말게. 총지배인하고 얘기해봤는데 다음 주까지는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거라더군.”
강 전무는 기준에게 명단을 보여주었다. 루앙 등 총 여섯 명의 베테랑 인부들이었다.
기준은 서둘러 피트니스센터 공사장으로 향했다. 루앙과 인부들이 부지런히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장 옆에 임시로 쳐놓은 대형 텐트 안에는 어제 도착한 헬스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아직 내부 공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비품 관리부에서 미리 주문해놓은 것들이었다. 공사 진행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부서만의 일정대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기준은 루앙에게 다음 주까지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원래 일정은 보름 뒤인데……, 만일 계획대로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루앙이 물었다.
“어떤 식으로든 돼야 합니다.”
“……밤낮으로 매달리면 해낼 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군요.”
루앙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부지배인은 이 호텔을 라스베이거스 수준으로 만들겠다던데……. 머릿속에 세계 최고급 호텔이 자리 잡고 있으니 무엇 하나 만족할 수 없겠지요. 부지배인께 말씀드려 보십시오. 현장에 자주 나와 보라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껴봐야 합니다. 최고의 리조트 호텔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하니까.”
“과정이요?”
그러자 루앙은 손을 들어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를 가리켰다. 젊은 인부 하나가 손수레에 공사장 쓰레기를 가득 담은 채 수영장을 에둘러 어디론가 분주히 향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피트니스 건물로 가려면 수영장을 끼고 한참 돌아가야 합니다. 일하기에도 불편하지만 투숙객들도 같은 불편을 느끼겠지요. 피트니스 건물로 바로 이어지는 길을 터준다면 일이 아주 수월해질 겁니다.”
“그런데 왜 길을 안 텄습니까?”
“몇 번이나 의견을 올렸지만 거절당했지요. 늘 그렇듯이 말입니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봤을 때 다른 일들이 더 급선무라는 거예요. 이제 저 사람들은 의견 자체를 아예 내놓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할 뿐이죠. 다른 곳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땀 흘리지만 정작 이 리조트의 목표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일 뿐이지요. 다음 주까지 공사를 마무리하라고 했나요? 물론 할 수 있지요. 밤잠 줄이고 주말도 반납하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들 중에서 단지 초과 수당을 받기 위해 그런 격무를 자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기준은 그의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자발적이란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하시는군요.”
“…..”
“자발성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죠.”
“무슨 뜻인가요?” 중요한 대목마다 선문답을 던지곤 하는 루앙의 대화 방식에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다. 기준이 물었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하죠. 자발성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런 기준의 마음을 읽었는지 루앙이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아무튼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에서 누가 스스로 의무 이상의 과업을 수행하려 할까요?”
기준은 루앙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