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20회


“사람이 떨어졌다!”
기준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정신없이 내달렸다.
“어디야, 어디?”
“피트니스센터 2층입니다!”

개관을 불과 일주일 앞둔 날,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실내에 러닝머신을 배치하던 중 열어놓은 창문으로 몸을 내놓은 채 무리하게 기계를 밀어보려다 발을 헛디딘 것이다. 바쁜 마음에 저지른 사소한 실수였다.?

피트니스센터 건물 앞에 벌써 많은 직원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루앙이 어느새 달려와 다친 직원을 응급조치하고 있었다. 다행히 안전모를 썼기에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다리가 부러지고 찰과상을 입은 상태였다.

환자를 차에 싣고 시내 병원으로 후송한 뒤 기준은 강 전무 곁으로 다가갔다.
“리조트 오픈이 코앞으로 다가왔네. 오늘 사고로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게.”
기준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사람이 다쳤는데도 그는 개관 일정부터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전무님, 지금이라도 전문 의료팀을 상주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고, 또 어차피 리조트 내에 의료팀이 상주하게 될 거라면 더 미룰 까닭이 없습니다.”
기준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검토해보겠네. 그나저나 어디 계시지? 찾아서 보고하도록 하게.”
그제야 기준은 오전부터 총지배인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기준은 변형섭에게 사고 뒷수습을 부탁한 뒤 곧장 원주민마을로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쏭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침상 위에는 예상대로 총지배인이 웅크린 듯 누워있었다. 다가서니 안색이 지난번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총지배인님. 총지배인님.” 기준의 부름에 대답조차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했다. 이제 더 이상 숨겨둘 수는 없다. 안젤라에게 알려야 한다.
기준이 쏭을 돌아 보며 급하게 지시했다.
“미스터 루앙에게 가서 안젤라 선생님을 모셔오라고 해, 빨리!”
한 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던 총지배인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나무 십자가가 쥐어 있었다. 수척한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얼굴은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머리맡에는 낡은 성경책과 기준이 가져다 놓은 한약이 놓여 있었다. 기준은 자신을 질책했다. 총지배인의 상태는 자신의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이다.?

“언제부터예요?”
안젤라의 목소리는 냉정하다 못해 싸늘했다. 총지배인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지, 또 그 사실을 기준이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도대체 어찌할 작정이었는지 그 모든 것을 묻는 말이었다.
“계속 숨길 생각이었나요?”
기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방안의 인기척 때문인지 총지배인이 눈을 떴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가 안젤라임을 알아채자 눈꺼풀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기준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안젤라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혈압을 재고 청진기를 꺼내 총지배인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랬어요?”
“……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안젤라는 원망의 눈으로 총지배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였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준은 조용히 방문을 나섰다.

강변에 앉아 연거푸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무로 엮어 만든 작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좁은 개울을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그 다리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 다리를 왜 만들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가까운 거리, 하지만 이제 다리의 이쪽과 저쪽은 다리가 없으면 건널 수 없다. 다리가 만들어졌으니 사람들은 그 다리로만 다녀야 한다. 과연 다리의 진정한 쓸모는 어디에 있을까.
다리의 저편에 총지배인이 있다. 안젤라도 그 언저리에 있다. 그렇다면 이쪽에는 누가 있을까.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기준은 공연히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서는데 안젤라가 다가왔다.
“가서 짐 좀 챙겨와야겠어요.”
며칠간 삼촌 곁에 와있기로 한 것이다. 그녀를 배웅하며 기준이 말했다.
“미안해요, 총지배인님을 잘 보필했어야 하는데.”
“혈압이 너무 높고, 아무래도 심혈관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종합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해요.”
“…… 다른 사람들한테는 숨기고 싶어 하시던데.”
“삼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리조트를 위해서 삼촌을 잃을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계시지만 계속해서 행운을 기대할 순 없잖아요.”?
“저런 몸으로 리조트를 운영하실 수 있을지…….”
“말려야 해요. 과로는 절대 안 돼요.”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두 사람 모두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총지배인이 처한 상황을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팠다. 안젤라를 보내고 기준은 다시 총지배인을 찾았다.
그 사이 기운을 차린 총지배인은 자리에 앉아 미음을 먹고 있었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배어났다.
“조카 녀석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그릇을 내려놓은 총지배인은 기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몇 년 전에 여행 상품을 기획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자니 마치 오래 전의 일인 것처럼 여겨졌다.
“까다로운 녀석인데, 자네하고는 묘한 인연이로군.”
“큰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으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입단속 단단히 해주게.”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일단 건강을 돌보면서 리조트를 생각하시는 것이…… ”
“ …… 지금 내가 노욕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오래 전 라오스라는 나라에 매료된 이후 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인생의 후반부를 내리 달려왔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그 꿈이 실현되려는 지금, 가장 필요한 시기에 정작 자신의 몸이 고장 나버린 것이다. “이 일은 나에게 맡겨진 소명일세. 아직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지 못했어.” 기준은 잠자코 총지배인을 바라보았다.
“리조트 오픈이 코앞이야. 리조트 문을 여는 그 순간을 혼자 병상에 누워서 맞이하고 싶진 않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현재의 상황을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일정을 앞당겨야 했고 그렇게 무리수를 두었으리라. 그러나 호텔 개관이 연기되고 강 전무라는 라이벌 후배가 오면서부터 더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겠지.
기준은 총지배인의 소망을 꺾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꺾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런 건강 상태로 리조트를 정상적으로 개관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무리다.
“치료를 받는다고 꼭 병상에 누워 계셔야 한다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기준은 그 말밖에 할 수 없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하지만 역시 이 문제는 회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어둠이 짙게 깔려서야 원주민마을을 나섰다. 호텔로 돌아와 서성이던 기준은 텅 빈 바에 혼자 앉아 있는 변형섭을 보았다. 그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변형, 부지배인 운영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기준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강 전무님? 갑자기 그건 왜?”
“요 근래 벌어지고 있는 일들 말이야. 다들 왜 그렇게 정신없이 서두르고 갈피를 못 잡는 걸까? 일정에 쫓겨서? 그렇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내가 보기엔 부서들 사이에 서로서로를 압박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더 큰 것 같아. 잘은 모르겠지만 한 부서의 성과가 다른 부서에는 오히려 짐이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러니까 프로그램의 초점이 개별 부서의 효율성에 치중되어 있어서 모두들 자기 부서의 업무에만 몰두하면서 자꾸 충돌이 되고 그래서 모두들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이건가?” 변형섭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기준은 잠시 움찔했다. “변형, 난 지금 라오 프로그램을 갖고 얘기하는 게 아니야. 프로그램은 정말 훌륭해. 그리고 강 전무의 능력도 존중하고. 다만…….”
“다만?” 변형섭이 토끼눈을 하고 되물었다.
“너무 잘 짜인 매트릭스 안에 사람들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는 게 아닐까? 우리가 추구하는 건 이상적인 시스템이나 업무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잖아. 그건 도구일 뿐이야. 아무리 훌륭한 도구라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잖아.”
“그럼 다시 총지배인이 통치하던 망치질 시절로 돌아갈까?”
“참 나,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나도 지금처럼 업무역량이 눈에 띄게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있어. 하지만 확연히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보자는 얘기야. 좀 더 이상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안 그래?”

변형섭은 거칠게 술을 따라 단번에 들이켰다. 기준의 지적이 시스템 전체의 원활한 작동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 설계자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비난일 수 있다. 그러니 변형섭 역시 기준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라오 프로그램에 반영해야 할 과제가 결코 녹록치 않음을 직감하고 자신이 그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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