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30회

? 링크 오브 라이프

“서번트투어를 리조트 사업과 연결시킨다고?”
“불가능 할까요?”?
“이거 우리 뜻이 통했나? 실은 얼마 전부터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러니까 가능하다는 말씀이시지요?”
“물론이지. 새로 내는 길이라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만큼 보람도 있을 것이야.”????
고민 끝에 던진 화두는 예상 외로 박 대표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다. 대화를 이어가는 기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 해 전에 서번트투어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던 그 날의 뜨거운 감정이 다시 가슴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박 대표와의 짧지 않은 원격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
“아니, 나는 기업연수 쪽을 구상하고 있었지. 기업연수에 공정여행을 접목시키는 방안 말일세.”
“기업연수요? 그렇다면 서번트투어를 기업연수 프로그램과 연계시킨다는 건가요?”
기준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듣고 보니 기업의 단체 연수를 서번트투어와 연결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인 발상이었다. 차이점이라면 개인이 아니라 단체라는 점.?
“뭐, 꼭 자네가 했던 서번트투어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네만, 크게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아, 예 그러니까 봉사활동과 기업연수를 연결하는 것이군요.”???
“자네도 알다시피 국내의 기업연수 프로그램도 많이 바뀌고 있어. 판에 박힌 의례적인 연수가 아니라 뭔가 의미가 있으면서 직원들의 자긍심도 심어주고 기업 이미지도 함께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말일세. 어느 항공사는 임원과 신입사원이 함께 몽골에서 식림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고, 서번트투어처럼 재해지역을 오가며 복구 작업을 거들기도 했지.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어.”
“그렇지요. 서번트투어 때에도 경험했지만, 사람들은 뭔가 의미가 있으면서도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에 강한 흥미를 보이지요.”
“허허, 맞네, 자네가 주장하던 그 ‘세 가지 미’ 기억나네. 흥미, 의미, 재미 말일세. 상품 기획을 할 때 항상 염두에 두고 있지.”
기준이 기획 일을 오래 동안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틀을 잡았던 것이 ‘3미’라는 프로세스였다. 먼저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단계가 기획의 출발이 된다. 그 다음에는 흥미 요소를 바탕으로 관련 자료를 연구하고 조사하여 내용을 체계화한다. 여기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의미가 구성된다. 보통의 기획자라면 이 단계에서 그치지만, 기준은 마지막으로 한 단계를 더 생각했다.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비자의 관점에서 콘텐츠를 재구성하는 재미화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흥미에서 의미를 거쳐 재미에 이르는 과정, 이 과정을 제대로 밟아야 제대로 된 상품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었다. 박 대표는 기준의 이러한 구상을 꺼내 높이 평가해주었다.??????????????
“그걸 여태 기억하고 계신가요?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있는 라오스라면 더욱 더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 리조트 입장에서도 꽤 반길만한 일일 텐데.”
“그런데 그 동안 저는 그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요?” 기준은 박 대표의 말에 정곡을 찔린 느낌이 들었다.?????
“못하기는 왜 못해, 조금 전에 자네가 바로 그 제안을 했으면서.” 박 대표의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넘어왔다.?????
“저는 너무 서번트투어라는 형식에 갇혀있었습니다. 우습게도 저의 작은 성취에 매몰되어있었던 겁니다.”????????
박 대표의 이야기는 크게 보면 결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서번트투어’인 셈이었다. 기준이 서번트투어의 내용과 형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넓게 펼칠 수만 있다면 박 대표의 구상은 새로운 서번트투어에 다름없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찾아 헤맬 때는 막막한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지만 막상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작 오아시스는 자기 안에 있었다. 다만, 기준이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수요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서번트투어 때 확인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개인이 아니라 기업을 상대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서번트 활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상당히 되어 있다고 보네. 무엇보다 국내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이미 달라지고 있네. 그들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장기적인 이익, 지속가능경영을 위해서 서번트의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어. 물론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이 필요하지, 그렇기 때문에 직원 연수야말로 좋은 기회가 아닌가? 어떤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연수에 하루 8시간 자원봉사를 의무화하기도 했다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준의 머릿속은 윙, 소리가 날만큼 빠르게 돌아갔다. 현재 리조트 시설 자체는 기업연수를 유치하기에 부족함이 별로 없다. 만일 해외봉사에 초점을 맞춘 서번트투어와 임직원연수를 결합시킨다면 오히려 라오스야말로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번트투어의 대상 지역으로는 링크빌리지도 가능할 터였다.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기준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서 자네 혼자 일을 추진할 수 있겠나?”
“서울에서는 무숙자가 제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 준비는 제가 해보겠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변수가 꽤 많을 걸세. 일단 계획서를 만들어보게. 이쪽 연결은 내가 해볼 테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기준은 곧 무숙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서번트투어가 부활하는 겁니까? 만셉니다, 만세!”

다음으로 기준은 변형섭을 찾아갔다.
“봉사활동과 기업 연수라……, 좋긴 좋은데 과연 치러낼 수 있을까? 내 말은 우리 직원들 역량이 아직은…….”
“큰 행사를 치러보는 것만큼 좋은 경험도 없지. 다른 리조트들도 마찬가지야. 능숙해진 뒤에 행사를 치르는 게 아니라 행사를 치르면서 점점 능숙해지는 거 아닐까?”
“그런데 정말 가능성이 있는 건가? 자넨 마치 연수를 보내겠다는 기업들이 벌써 예약을 해놓은 것처럼 말하는군.”
변형섭이 웃음을 감추며 말했다.
“일단 우리가 먼저 뜻을 합친 다음 구체적인 절차를 세워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서울에서는 후배가 기업들을 상대해줄 거고 우리는 여기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지.”
“이거 또 엄청 분주해지겠군.”
변형섭이 양팔을 흔들었다. 기준은 그가 흔쾌히 찬성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예상했다. 그는 아직? 리조트의 시스템이 큰 행사를 감당할 수 있을 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큰 먹이를 먹을 때는 잘게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어.”
기준은 변형섭의 우려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위에서 오케이 할까?”
변형섭이 혼잣말 하듯이 물었다. 총지배인과 강 전무는 물론이고 이미 서번트투어를 중단한 바 있는 본사의 입장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서번트투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준의 머릿속은 이미 두 배, 세 배로 분주해졌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이다. 과거의 서번트투어를 단순히 재생하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포맷으로 새로운 상상력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러자면 봉사활동, 아니 서번트 문화 활동으로 이루어진 기업 연수 프로그램의 내용을 기획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일 것이고 동시에 리조트의 수용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두 번째 과제가 될 텐데, 이는?동시에 해결해야 할 큰 과제였다. 변형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기준은 ‘고립에서 연결’이라는 고민을 풀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나아갔다.?
“첫 행사를 제대로, 아주 성공적으로 치러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생각할수록 이 프로젝트는 우리 리조트와 딱 맞아떨어져. 리조트는 번화가의 호텔과 달라서 그 지역의 모든 환경요소와 함께 공존해야 하잖아. 그렇다면 왕위앙 지역을 중심으로 자원봉사 행렬이 이어진다는 것은 리조트의 존재 이유와도 어느 정도 통하게 되는 것 아닐까?”
“김 차장, 내가 자신 없다고 할까봐 그러는 건가? 이거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야?”????
기준은 변형섭이 들고 있는 펜을 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수첩에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해 가기 시작했다. 사업계획서 작성할 것, 카이손 아마스와 만날 것, 연수 프로그램 기획 할 것, 리조트에서 준비해야 할 사항들 점검, 총지배인과 강 전무에게 보고할 시기는? 등등 한 가지씩 적어갈 때마다 변형섭에게 보여주었다.???
‘어게인, 서클 오브 라이프’라는 제목의 수첩은 이틀도 채 안 되어 가득 차버렸다. 두 번째 수첩을 꺼내 ‘서클 오브 라이프’라고 적다가 기준은 문득 루앙의 말을 떠올렸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기준은 ‘서클’이란 단어를 지우고 그 자리에 ‘링크’라고 적어 넣었다. 이로써 두 번째 수첩은 ‘링크 오브 라이프’라는 새로운 제목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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