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35회

그 사이 변형섭과 캄샤이가 강 전무의 부름을 받는 횟수가 빈번해지면서 기업연수단을 위한 업무는 사실상 기준과 리엔 두 사람의 몫으로 떨어졌다. 변 차장에 더하여 행사담당 매니저인 캄샤이마저 골프 투어 준비에 시간을 빼앗기다보니 기업연수 행사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기준이 강 전무에게 달려가 따질 수도 없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기업연수단 행사와 골프 투어 행사 모두 강 전무의 소관 업무이고, 업무의 조정과 통제는 당연히 그의 관할이었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언행에서 숨은 의도를 읽어 맞춤으로 처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리조트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기업연수단 업무보다는 골프 투어에 하나라도 신경을 더 쓰는 것은 탓하기 어려웠다.

기준은 답답한 마음에 이런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어 공론화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자칫 어떤 행사가 더 중요하냐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총지배인과 강 전무 사이에 반목이 있음을 떠벌이는 꼴이 될 터라,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 전무는 리조트 오픈 준비 때처럼 회의 때마다 골프 투어와 기업연수단 행사 준비 사항을 일일이 점검하며 다그쳤고 그럴 때마다 직원들은 가위에 눌린 것처럼 진땀을 흘리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총지배인 집무실에서는 일상적인 업무 지시 외에 별 말이 없었다는 점이었는데,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말을 내며 나서지 않는 이유를 기준은 나름대로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연수단 방문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는데도 직원들 간의 이런저런 충돌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객실과 방갈로, 골프연습장과 피트니스센터 등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졌다. 보이지 않게 두 편으로 나뉜 직원들의 정서가 사람들의 생각마저 서로 다르게 한 탓이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부서업무의 협조 체계에도 균열을 만든 것이다. 문제가 더 이상 확산되면 기업연수단이고 VIP 골프 투어고 모두에게 지장을 초래할 지경으로 보였다. 혼자 걱정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기준은 뭔가 수를 내야 한다고 조급해졌다. 강 전무나 총지배인의 개입 없이 실무적으로 키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먼저 변형섭과 의논한 후 캄샤이와 리엔을 함께 불렀다. 자주 얼굴을 보지만 모두 제 일이 바쁜 터라 정작 네 사람이 함께 자리를 한 것은 십 여일 만이었다. 기준이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같은 시기에 두 건의 큰 행사가 잡혀 있습니다. 성숙한 조직이라면 둘 다 거뜬히 치러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겐 두 행사 모두 아직 익숙하지 않고, 게다가 반드시 성공적으로 잘 치러야하는 행사입니다.”

“그래서 리조트 오픈 때처럼 모두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캄샤이가 업무 보고하듯이 대답했다.

“열심히 하는데 뭔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열심히 할수록 단단히 뭉쳐지는 느낌이 아니라 흩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중심에서는 빠르게 돌아가는데 주위에서는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이 점점 더 커지는 느낌 말이죠.” 기준이 슬쩍 변형섭을 쳐다보았다.

“두 행사를 모두 잘 치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 그런데 우리에게는 경험이 많은 직원들도 시스템이나 조직의 팀워크도 부족해요. 한 마디로 능력의 부족 그게 문제의 원인이라면 원인인 것인데.” “직원들 사이에는 일단 자기가 맡은 일이라도 문제가 없도록 하자는 분위기가 퍼져있어요. 다른 팀이나 업무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거죠.” 캼샤이가 변형섭의 말을 받았다. 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말들이 없는데 리엔이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기준에게 물었다.

“김 차장님도 우리가 가진 능력보다 커다란 일이 주어졌다고 생각하시죠?”

리엔의 질문에 기준은 왠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사실 직원들의 생각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과연 두 가지 행사를 잘 치룰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있습니다. 저는 능력의 부족도 문제이지만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변형섭은 ‘능력의 부족’을 이야기하고 리엔은 ‘능력에 대한 회의감’을 이야기 한다. 이 두 가지는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다른 누구랄 것 없이 리엔을 빼곤 모두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능력의 부족이 당장 어찌 할 수 없는 변수라면, 능력에 대한 회의감은 마인드의 문제이니 개선의 여지가 있고, 그러니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마인드의 변화다?” 변형섭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더니 이렇게 추론을 하고 나섰다.

“꼭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니고요, 다만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힘들어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 대한 자기평가랄까 그런 것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서요. 특히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때는 자꾸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리엔이 살짝 미소를 띠며 설명했다.

“자기 할 일을 하는데 자꾸 다른 사람 눈치를 본다는 것은 뭔가 일하는 기준이 혼란스러워서 그렇겠지요. 솔직히 저도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자꾸 이쪽저쪽 신경을 쓰게 됩니다.” 캄샤이가 말을 이었다.

“캄샤이의 말에 나도 공감이 가네. 나 역시 그런 면이 있고, 아마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을 걸세.” 변형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하지만 일의 기준이라는 것이 칼로 두부 자르듯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그래서 청 테이프가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청 테이프요?” 캄샤이와 리엔이 동시에 물었다.

한국의 방송제작진에게 들은 말인데, 그들에게는 청 테이프가 테이프의 원래용도 외에도 온갖 다른 목적으로 활용이 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여기 김 차장과 나는 일을 대하는 유연한 태도의 상징으로 청 테이프라는 용어를 활용하게 되었다는 등 변형섭이 손짓을 해가며 열심히 설명해주니, 두 사람이 간신히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캄샤이가 조심스럽게 변형섭에 물었다.

“청 테이프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의 기준을 제대로 잡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리엔도 고개를 까닥이며 캄샤이에게 동의하는 뜻을 나타냈다.

“그건 그렇지, 물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변형섭이 기준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야기를 경청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기준이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문제의 핵심은 혼란스러워한다는 사실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원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자꾸 윗선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게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윗선이 혼란스럽기 때문인데, 캄샤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윗선에서 생각하는 기준이 혼란스럽기 때문이지요.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일차 문제라면 그게 그대로 조율이나 완충 작용 없이 아래로 전달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요. 아래로 옆으로 파질수록 혼란은 증폭되는 것이고. 그래서 저는 우리 단계에서라도 그 혼란스러움의 단계를 줄여야 하겠다는 판단을 합니다.” 잠시 한 호흡을 쉰 기준이 말을 이었다.

“지금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실은 나 자신부터 혼란을 만들고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저부터 그 혼란을 정리해야겠습니다.”

세 사람이 기준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캄샤이는 앞으로 기업연수행사에는 신경을 쓰지 말고 VIP 행사에 힘을 기울이도록 해요. 그리고 변차장님도 VIP 행사를 책임 있게 진행하셔야 되니 기업연수 행사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운영 지원 외에 더 부담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기준을 향했다. 특히 리엔의 눈이 많은 질문을 담고 있었다.

“물론 나는 기업연수단 행사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변차장님도 나 신경 쓰지 말고 공식적으로 VIP 골프 투어 행사의 책임을 받아들이세요.”

“그거야, 강 전무의 생각이고. 아무튼 단체 행사는 만만치 않아요. 사람이 많이 필요할 텐데. 최대한 인력을 확보해 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변형섭이 우려를 나타냈다.

“내 생각은 현장 직원을 포함하여 열 명 정도의 직원을 특별 지원팀으로 구성하려고 해요. 리엔이 팀의 중심을 잡고 캄샤이의 보조를 맡았던 친구를 포함하여 너덧 명이 연수 프로그램의 각 파트와 일정을 관리하도록 하고 나는 직접 뛰어다니며 실무자들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하면 강 전무님의 인력 운영 방침과 충돌이 나는 지점이 없을 겁니다.” 설명을 하는데 리엔은 미동 없이 기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원팀 직원들이 꽤 힘들겠지요. 하지만 모두들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혼란스러운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리고 나도 그 팀 일원으로 24시간 비상대기를 할 테니 업무의 충돌이나 긴급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은 VIP 행사 책임자인 변차장님과 협의해서 함께 처리하면 되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바깥이 어수선해지더니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일이야?”

변형섭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총지배인님이 쓰러졌습니다.”

기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강 전무 집무실에 직원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총지배인은 눈을 감은 채 소파에 누워 있고 의료팀이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강 전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옆에 서 있었다. 기준이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응급차 불렀어? 응급차! 빨리!”

얼마 후 응급차가 도착하고 총지배인이 들것에 실려 나왔다. 기준은 의료진과 함께 응급차에 올라 총지배인 곁을 지켰다. 차는 왕위앙 시내 병원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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