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29회


“누가 상한 음식을 먹였나 봐요.”
쏭이 코끼리 주변에 버려진 음식물 봉지들을 가리키며 울먹였다.
라오스 관광청 주관으로 주말 동안 진행된 국제 공정 여행 전문가 세미나에 참석하고 오니 코끼리 사육장에 문제가 발생해 있었다. 매일 아침 쏭과 함께 산책을 나서곤 하던 코끼리가 어제는 사육장 밖으로 나서기를 거부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마침내 푹 주저앉아 버렸다는 것이다. 먹는 양도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낌새가 이상하기는 했어요. 제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모두 제 잘못입니다.”
코끼리에게는 매끼니 유기농 과일과 채소가 공급되었고 리조트 안에 따로 조성된, 농약에서 안전한 지역의 풀들만 먹이고 있었다. 그건 코끼리에 대한 총지배인의 남다른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자신의 고향 친구라며 쏭이 평소에도 코끼리의 건강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왔던 때문이다. 하지만 쏭이 하루 종일 사육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투숙객들이나 일반 관광객들의 접근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리조트 오픈 이후 두 달여 사이에 큰 문제가 없었고 최근에는 기준도 자주 사육장을 들렀던 터라 쏭이 방심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기준으로서도 일과 후의 시간을 대부분 사육장 근처에서 보내면서도 정작 코끼리의 상태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실 리조트 안에서 코끼리 사육장을 운영하는 일은 직원들에게는 진즉부터 미묘한 사안으로 여겨졌는데, 그것은 총지배인과 강 전무 사이의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코끼리 관리 문제에 대해 총지배인과 강 전무에게 보고하자 역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일단 사육장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접근 금지 팻말을 붙이게.”
강 전무는 예전부터 코끼리를 ‘처치 곤란’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굳이 리조트 부지 안에 코끼리 사육장을 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코끼리에 대한 총지배인의 개인적인 애착 때문에 드러내놓고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아예 코끼리를 없애자는 쪽으로 결심이 굳어진 것 같았다.?
“코끼리를 위해서도 여기 리조트보다는 자연공원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나을 걸세. 총지배인님께 잘 말씀 드려보게.”
하지만 총지배인의 생각은 전혀 달라질 기색이 없었다. 보고를 듣자마자 사육장으로 달려온 총지배인은 마치 아픈 자식을 대하듯이 코끼리의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쓰다듬어 주었다.???????????????
“역시 오른쪽 다리군. 어려서 제 엄마를 쫓아다니다 다리를 다쳤었지. 라오스 남쪽에 시판돈이라는 곳이 있네. 거기 코끼리들이 꽤 많이 살았지. 이 녀석 고향도 바로 거길세. 그런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또 내가 왜 저녁석을 리조트에 두려는지 아는가?”
리조트 개발 초기 중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는 숲길을 개척한 주역이 바로 지금 누워 있는 코끼리의 가족이라는 것이 총지배인의 설명이었다.
“밀림 속에서 길을 내고 터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거목이 덮치면서 이 녀석의 부모격인 코끼리들이 모두 사고를 당했지. 우리 리조트는 이 녀석 기족에게 큰 빚을 지고 있어. 마지막 남은….”?
생각해보니 코끼리는 총지배인 곁에 최후까지 남아 있는 초기 멤버 중의 하나인 셈이었다. 코끼리를 어루만지고 있는 총지배인을 보고 있자니, 리조트 터를 닦기 위해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헤치던 혈기왕성한 개척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위앙짠에 안면이 있는 수의사가 있는데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이 녀석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겁니다.”
그가 온 몸을 바쳐 일하던 시절은 어느새 지나간 옛날 이야기로만 남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 어딘가에서 아직도 살아있을 그 열정은 이따금씩 기준의 마음을 흔들어놓고는 했다.
“어떤가? 추진하는 일은 잘 돼가나?”
총지배인이 담담하게 물었다. 기준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자네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게 뭔지 아나? 지금은 공정 여행이다, 책임 여행이다 해서 또 하나의 유행 상품이 되어버렸네만, 내가 알기로 자네는 그 상품을 최초로 성공시킨 장본인이었더군. 그 때 그 당시의 기억을 되새겨 보게나.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총지배인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기준은 머리가 꽉 막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노력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한 마디를 붙잡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 일주일. 기적처럼 반가운 인물이 기준 앞에 나타났다. 사육장 안에서 낯익은 모습이 코끼리를 쓰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꼭 필요할 때 와주셨군요.”
기준은 반갑게 손을 잡았다.
“위앙짠에 볼 일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는 링크빌리지의 전기 공급과 정류장 설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카이손 아마스를 만났다고 했다.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당장의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가 웃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잔잔하고 평화로웠으며 어딘가 확신에 차 있었다.
“향수병입니다.”
루앙이 무 자르듯이 잘라서 말했다.
“예?”
“이 녀석 말입니다. 향수병이지요.”
루앙은 코끼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녀석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말인가요?”
루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풀어주면 고향까지 찾아갈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길이 변해도?”
“물론 길은 많이 변했겠지요. 하지만 바람소리나 물소리, 그리고 숲의 향기에서 기억을 되살릴 겁니다. 아마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성공적으로 걸었던 길을 유추해내는 게 아닐까 싶군요.”
“…… 계속 이렇게 아프면 결국 돌려보내야겠죠?”
“애초부터 이곳은 코끼리가 살기에 적당하지 않았지요.”
“총지배인께서는 보내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저도 총지배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가슴 속에는 수 백 마리의 코끼리가 살아있을 겁니다. 꼭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 이유가 있겠지요.”?
루앙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고 했다. 기준은 왕위앙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 시간에 맞춰 그를 배웅했다. 출발 시각을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야외 대합실 벤치에 앉았다.
리조트에 대해서 루앙은 짤막하게 물었지만 기준은 가능한 한 자세하게 대답했다. 운영자의 믿음과 직원들의 능동적인 업무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부적인 과제라면 고립된 리조트를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것이 외부적인 과제라는 기준의 이야기를 듣고는 루앙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예전에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없는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코끼리가 길을 찾듯이 성공적으로 걸었던 길을 유추해보는 겁니다.” 버스에 오르기 전 루앙이 기준에게 남긴 말이었다.

기준은 리조트로 돌아가지 않고 왕위앙의 여행자거리를 걸었다. 늦은 오후의 나른한 편안함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여행객들은 거리에 면한 음식점이나 숙소에 삼상오오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미국 드라마에 빠져있었다.?????
예전에 서번트투어라는 여행상품을 출시하기 위해서 팀원들과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새로운 투어 상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새로 구성된 팀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화가 기준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안젤라를 만나고 그녀의 캠프에서 함께 한 워크숍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기도 했다. 안젤라의 도움으로 팀원들은 차츰차츰 마음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고, 팀원들은 투어의 의미를 스스로 새겨볼 기회를 얻었으며 마침내 프로젝트에서 자신들이 해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가슴으로 깨달았었다. 기준에게 있어 그 경험은 참으로 소중한 성공 기억이었다. 노천에 불을 밝힌 카페에 앉아 라오 맥주를 잔에 따르며 기준은 그때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회상했다.?
‘그때처럼 해볼 수 있을까? 그때처럼…….’
그는 계속 서번트투어의 경험을 되돌아보았다. 그러나 서번트투어의 경험과 지금 여기 리조트의 현실을 연결하기란 쉽지 않았다.
생각을 거듭하던 기준은 문득 무숙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너 여기 와서 나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 기준은 자신의 고민을 무숙자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십 여분이 지났을까. 기준의 넋두리가 그칠 때 쯤 되자 무숙자가 한 마디 했다.???
“형, 박 대표님하고 한 번 상의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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