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36회
“왜 저렇게 고집이 세신 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안젤라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 동안이나 입원해 계셔야 할까?”
기준은 그게 가장 궁금했다.????
“좀 더 큰 종합병원으로 옮겨야 될 거예요. 만약의 경우… 라오스의 의료시설로는 부족해서요.”
“만약의 경우라니?”
“이번에는 수술을 받으셔야 될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일단 약물로 좀 진정이 되었어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안젤라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기준이 가만히 안젤라의 손을 잡았다.
“수술이라면, 혹시 귀국하셔야 되는 건가?”
“솔직히 나는 외삼촌이 귀국하셨으면 좋겠어요.” 안젤라가 한숨을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그 동안 너무 일에 빠져 사셔서 생긴 병이니까 이제는 현장에서 벗어나서 적어도 몇 개월 정도 충분히 쉬셨으면 좋겠어요. 그럴러면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지요. 그런데 삼촌은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시니….”
총지배인으로서는 귀국을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 라오스에, 그에게는 아직 달려갈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삼촌은 한국 본사에서 근무하시면 안 되나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내가 회사 돌아가는 시스템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기준은 고개를 외로 저었다. 뭐라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삼촌의 마음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돼요.”?
구급차에 실려 온 총지배인은 응급처치를 받고 얼마 후 다행스럽게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심혈관 쪽의 증상이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 중환자실에서 모니터링을 받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안젤라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그 사이에 총지배인을 만나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 모양인데 총지배인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도 일단 타이나 베트남 쪽 병원으로 옮겨 가야 할 것 같아요.”????
“총지배인님……, 수술을 받으시면 예전처럼 회복하실 수 있겠지?”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치료를 받으시는 거죠.”
안젤라는 모두들 답답하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기준은 병원 건물 밖의 쉼터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소박한 규모의 단층 위주의 건물들은 병원답지 않게 소란스럽지도 번잡스럽지도 않아 왕위왕의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전 여름휴가를 가며 어린 시절 다니던 시골 학교에 들러 교정의 그늘 벤치에 앉았던 어느 오후처럼 나른함이 다가오자, 지금은 수몰되어 사라지고 없는 고향의 공간과 그 날의 시간이 새삼 그리워졌다.
?????????????
오후 늦게 강 전무와 변형섭, 그리고 간부 직원들이 병원을 다녀갔다. 강 전무와 일행은 기준이 마치 총지배인의 보호자라도 되는 양 그에게 총지배인을 잘 보살피라며 한 마디씩 했다. 이제 모두가 총지배인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강 전무가 총지배인 대행으로 리조트 전체를 운영하게 될 것으로 짐작들을 했다. 그 동안에도 호텔 업무를 중심으로 현업의 대부분은 강 전무가 관할하고 총지배인은 리조트 전체의 총괄적인 관리와 조정업무에 주력해왔지만, 앞으로는 실질적으로 강 전무가 리조트 전반을 관할하게 될 거라는 거였다. 오후의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총지배인은 저녁 무렵이 되서야 기운을 차려 일반 병실로 옮겼다. 총지배인은 한 동안 말없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기준과 안젤라가 다시 병실에 들어왔을 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오랫동안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내가 쫓아낸……, 그 사람들하고 쭉 같이 지냈던 게냐?” 총지배인의 첫마디였다.?
안젤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원망이 컸겠구나.”
안젤라가 고개를 외로 저으며 말했다.?
“외삼촌도 괴로우셨죠? 그래서 병이 생긴 거잖아요. 마음이 막히면 몸도 상하는 거예요.”
“그래? 나도 안다. 지금 내 몸이 아픈 것은 내 마음에 뭔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기억나세요? 제가 의료봉사를 시작할 때 삼촌이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아픔은 정직하다고,?그러니 환자들을 돌 볼 때 정직하게 대하라고.”
“내가 그랬냐? 그런데 정작 나는 정직하게 살아오지 못했다. 라오스에 와서 …”??
기준이 병실을 나가려 하자 안젤라가 기준의 손을 잡았다.?
“네가 라오스에 처음 왔을 때 내가 해준 말 기억하니?”
“신이 지상에 머물 때 제일 처음 찾는 곳이라고 하셨죠. 사람들이 좋아서.”
“그래, 그 좋은 사람들을 내가……. 더 나은 생활을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 힘들게 했구나.”
“삼촌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총지배인은 기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 일이 많을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 강 전무에게 연수단 행사도 잘 챙기라고 얘기했네. 나 하고는 조금 다른 사람이지만 지금 리조트에는 부지배인만한 사람이 없네.”?
“마음 편히 잡수시고 치료에 전념하세요. 저희는 하루 빨리 회복하시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총지배인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사업의 일은 부지배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지만 마음의 일은 자네한테 부탁하고 싶네.”
기준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총지배인은 그윽한 눈으로 안젤라와 기준을 번갈아 바라볼 뿐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기준은 안젤라와 총지배인을 남겨두고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리조트로 돌아온 기준은 다음 날부터 막바지 준비에 몰입했다. 리엔을 포함하여 열 명의 직원은? 연수 프로그램의 각 항목과 세부 일정을 점검하도록 하고 자신은 직접 뛰어다니며 연관 부서 실무자들과 업무 조율에 매달렸다.?
“다들 알다시피 여기 인원만으로 연수단을 밀착 관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객은 백 명이 넘고 우리는 열 명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최고의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믿습니다. 고객들은 우리가 성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다른 부서의 직원들도 우리의 진정을 알아주겠지요. 한국에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기준은 수시로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제 업무에 관한 미팅을 마친 뒤에도 식사시간이나 휴식 시간에 그는 왜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했는지, 왜 하필 링크빌리지와 연계를 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리조트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기준의 일방적인 설명이 되었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팀원들은 하나 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특히 링크빌리지에 가까운 친척이 살고 있는 몇몇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귀찮아하고 꺼려하던 직원들도 나중에는 연수단 행사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게까지 되었다.???
훨씬 규모가 큰 자신의 프로젝트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었지만 기준이나 팀원들은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총지배인의 유고로 인해 강 전무의 책임이 무거워졌고 그런 분위기는 직원들에게도 긴장을 주었는지 두 건의 큰 행사를 앞두고 모두들 나름대로 최선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준이 나서서 부서간 업무 조율을 하고 변형섭 차장의 청테이프 전략도 나름 기여를 하여 업무 다툼도 서서히 줄어들고 때로는 손발이 맞는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어느 새 리조트 전체에는 이번 행사를 잘 치루면? 모두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거라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생각과 마인드의 변화는 계기가 주어지면 한 순간에 이루어지기도 하는지 기준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사람들의 행동에 눈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리조트의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어요.’ 그것은 리엔의 소중한 희망이자 기준을 포함한 모두의 바램이었다.?
연수단 방문 하루 전, 기준은 마지막 점검을 마친 뒤 어둠이 깔린 리조트 산책로를 걸었다. 그는 강 전무가 이끄는 리조트의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라오스에 진출한 국내 최초의 리조트로서 모범적인 성공사례를 남길 것인가? 솔직히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무엇보다 그는 어떤 리조트가 훌륭한 리조트인지는 확답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고양이가 발자국 소리를 내며 빠르게 사라졌다. 그 뒤를 따르는데 이번에는 마음의 일을 부탁한다던 총지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의미일까?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불도저처럼 일을 추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고 본의 아니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뿔뿔이 흩어진 주민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문득 총지배인의 목표는 기준이 아는 그것이 아니고 그 너머의 어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와 현실의 간격, 그 거리감이 그의 마음과 몸에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을 기준에게 맡긴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너무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처럼 풀지 못한 문제의 복잡한 수식을 하나하나 짚어가던 기준은 갑자기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소연회장의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니 예닐곱 명의 직원이 둘러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기준은 안으로 들어섰다. 가까이 가서 보니 꽃과 대나무로 된 작은 화환을 만들고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기준이 물었다.
“내일 손님들에게 줄 선물입니다. 라오스에서는 반가운 손님들에게 화환을 선물하죠.”
“이렇게 많은 화환을? 누가 지시한 건가요? 리엔이 지시했나요?”
“그냥 우리끼리 생각한 거예요. …… 내일 오실 손님들은 좀 특별한 분들이잖아요.”
기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 곁에 앉았다.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주세요.”
그는 직원들과 함께 화환을 만들며 내일부터 시작될 강행군을 생각했다.
‘…… 힘든 일주일이 될 것이다. 많은 실수가 빚어지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기준은 그러나 마음이 차분해졌다. 완벽한 준비란 없다. 성의를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만 있을 뿐이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함께 배워가며 점점 성숙되어갈 것이다. 늦은 밤, 자신의 집을 방문하게 될 손님들을 위해 화환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환대 방법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소연회장은 늦도록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무숙자가 직원 연수단을 이끌고 리조트로 들어섰다. 연수단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펄럭이는 입구에서 기다리던 기준은 양팔을 벌려 무숙자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