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1회

 

프롤로그

낡은 왜건 한 대가 거센 빗줄기를 헤치며 라오스의 어두운 산길을 달리고 있다.

수도 위앙짠에서 휴양도시 왕위앙으로 이어지는 편도 1차선 도로. 오가는 차량도 모두 끊어지고 간간이 보이던 불빛마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천둥과 번개가 이어졌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외진 지방 도로는 어느새 거대한 미로로 변해 버렸다. 얼마나 비가 내렸는지 도로는 군데군데 훼손되어 진흙탕에다 물웅덩이마저 생겨났다.

어렵사리 진흙 길을 빠져나와 모퉁이를 돌면 느닷없이 검은 바위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댔다. 산길로 접어들기 이전부터 휴대전화는 이미 무용지물이었고, 연료게이지의 바늘마저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운전자는 서서히 공포에 휩싸여갔다. 빗물인지 땀인지 물기에 흥건히 젖은 남자는 결국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핸들에 이마를 갖다 댔다.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일단 살아남게.”

여행상품 기획팀장인 김기준에게 라오스 전출 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의 상관이 던진 한 마디였다.

상황은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갔다. 몸담은 여행사와 대형 리조트 회사와의 합병이 성사된 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지구촌에 또 다시 금융 위기가 몰아닥쳤고, 회사는 단계적으로 부서 통폐합과 인원 감축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2년 가까이 진행해 오던 기준의 프로젝트도 일시 중단되고 팀은 해체되었으며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생존 해법을 찾기에 급급했다.

기준에게 차장 진급과 함께 리조트 개관준비요원이라는 역할이 주어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 완공을 앞둔 라오스의 리조트로 가서 개관업무를 돕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개관업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도 모르는 그에게는 단지 ‘생존하라’는 한 마디만 툭 던져진 셈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나 베트남 하노이 공항을 거쳐 라오스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내면에는 유배를 떠나가는 적막감과 현장을 벗어나는 불안함 같은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지는 알 수 없었다. 참담하고 씁쓸한 기분이었다가 느닷없이 방향을 알 수 없는 분노가 불쑥불쑥 솟구치기도 했다.

그러나 폭우 속에서 길을 헤메고 있는 지금, 머릿속은 온통 돌아가고 싶다는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안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서울의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외침. 그 소리가 분명해지자 기준은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생각해보라, 이대로 돌아갈 곳은 없다. 그를 기다리는 회사는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는 이제 한 시간 후의 장래도 분명하지 않은, 낯선 나라의 어두운 계곡에 내던져진 잊혀진 존재일 뿐이었다.

기준은 손때 묻은 나침반과 지도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안젤라의 당부가 떠올랐다.

“라오스의 우기는 뭐든지 너무 지나쳐요. 해가 있을 때는 사막처럼 덥고, 비가 오면 십중팔구는 물난리 수준이죠. 그럼 인터넷도, 전화도, 심지어는 길도 뚝뚝 끊어지곤 해요. 빗길에 섣불리 운전할 생각 말아요. 길 잃기 십상이니까.”

“안젤라, 당신이 어디에 있건 나는 찾아갈 수 있어. 이 나침반과 지도 한 장만 있으면.”

그는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휴대전화의 단축키를 눌렀다. 출국 전부터 수차례 안젤라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먹통이었다.

기준에게 라오스는 새로운 근무지인 동시에 안젤라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바로 그 점이 라오스행의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소재는커녕 자신의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다.

2년 전, 처음 만났을 때 타이의 난민촌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나누던 그녀는 지금 라오스의 산간 오지를 돌며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머무는 곳마다 하나같이 원시에 가까운 곳이라 늘 위험이 뒤따랐다.

기준은 온몸으로 퍼져가는 불안감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액셀을 밟았다. 차가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쏟아지는 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안젤라를 생각하자 길을 달리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준의 마음은 위로를 받았다. 머리로는 확신할 수 없지만 동남아 지역을 누비며 지형에 익숙해진 자신의 몸을 믿어보기로 했다.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정표, 길인지 계곡인지 구별이안되는 도로를 달리는 기준은 물에 젖은 지도를 필사적으로 확인하며 길을 뚫고 나갔다.

다른 수가 없어.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어.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악전고투하는 사이 다행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래,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라오스는 도로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곳이라 엉뚱한 샛길로 접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정해진 도로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쉽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도와 제대로 일치되는 표지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한참을 달리던 기준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카프카성의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듯한 불길함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빗물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이퍼 너머로 시야를 고정한 기준은 자신이 어디 어디에서 방향을 꺾었는지 분주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방향을 돌린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한 방향 길로만 줄곧 달려왔을 뿐이다. 그럴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갈림길도 아니고 막다른 길도 아닌데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공포감에 휩쌓였다. 게다가 빗줄기는 온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강해졌다. 기준은 결국 차를 다시 세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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