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찬 연재소설] 살아가는 방법-19회

③ 매트릭스

“변전실 직원 한 명이 퇴사한 것 같습니다. 벌써 일주일 째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기준이 강 전무에게 보고했다.
“이유가 뭔가?”
“일을 감당하기 힘들었나 봅니다.”
이어지는 야근과 타 부서와의 갈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던 직원이었다. 그는 작업장을 ‘일 지옥’이라고 말한 뒤 모습을 감추었다.
“변전실 업무에는 얼마나 차질이 생길 것 같은가?”
“일단 개관 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곧 충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리고 피트니스센터는 어떤가? 헬스기구들이 아직 밖에 나와 있던데.”
“인테리어 작업 중이라 이틀 뒤면 들여놓을 수 있을 겁니다.”
“이틀 뒤? 내일 중으로 모두 들여놓도록 하게.”
기준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전무님, 현장을 좀 둘러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불만들도 쌓여가고 있습니다.”
“개관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 강 전무의 인상이 신경질적으로 구겨졌다. 개관일이 다가오자 강 전무 역시 초조함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들 고생하고 있는 거 나도 알아. 게시판에 써놨다시피 개관 이후에 부서별로 충분한 보상이 있을 테니 힘들 내도록 독려하게.”
?
다음 날 오후, 기준은 피트니스센터 공사장 앞에서 걸음을 뚝 멈췄다. 총지배인이 루앙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헬스 기구들이 왜 아직 바깥에 나와 있냐고!”
루앙은 2층의 바닥재 마감이 덜 끝났으며 공사장 작업 인부들만으로는 힘들다는 이유를 댔다.
“다섯 명이면 충분하지 않나? 그리고 2층 바닥도 그 정도면 다 된 거 같은데. 좀 서두르란 말이야, 개관이 코앞인데 나 원.”
기준이 다가서자 총지배인은 더욱 크게 호통을 쳤다. 사람들은 모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총지배인의 시선은 루앙이나 인부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지배인은 호텔 쪽 일에 대한 자신의 심적 부담감을 털어내고 있는 것일지 몰랐다. 루앙은 다만 그 창구일 뿐이고.
“이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다만 절차에 맞게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선을 돌리고 있던 루앙이 정색을 하고 대꾸하자 총지배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혀들었다.?
“총지배인님, 지시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운을 느낀 기준이 루앙을 가로막고 나서며 대답했다.
“오늘 중으로 다 들여놓도록 하게.”
총지배인은 상기된 얼굴로 주변에 있던 인부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리고 길게 한 숨을 내뱉고는 굳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기준의 앞을 지나 사무실 쪽으로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이 위태롭게만 보였다.?

일은 일단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후 작업 중이던 인부 몇몇이 장비들을 내던지며 큰소리를 냈다. 그 행동에 자극을 받았는지 다른 인부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잘 알아듣기 힘든 라오스 말로 뭔가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급기야 호텔 안에 있던 직원들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총지배인과의 사소한 언쟁이 있었을 뿐인데 피트니스센터 앞 공사장은 어느새 농성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분위기가 격앙되었다. 마침내 루앙이 그들 가운데로 나섰다. 그는 차분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루앙의 말을 경청하기도 하고, 때로 격앙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기준은 간부 직원들을 만류하며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루앙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현지 직원들을 저토록 흥분하게 만든 원인이 뭘까, 기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들을 휩싸고 있는 감정은 일종의 배신감이었다. 리조트 개발 초기부터 함께 땀을 흘려온 그들에게는 최근 총지배인의 행동이 무책임하게 보였을 것이다. 강 전무의 부임과 총지배인의 이선 후퇴,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업무강도에 대한 불만도 모두 총지배인에 대한 배신감으로 전이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함께 고생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던 총지배인과의 유대감이 단절되면서 그들은 고립되고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총지배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히려 인부들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기준은 가슴이 답답했다. 게다가 총지배인이 처한 심리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에 큰 돌이 하나 더 얹히는 듯 더욱 무거워졌다. 그런 상황에서 총지배인은 또 왜 그토록 서두르고 윽박지르고 초조해하는지…….?

소동이 가라앉을 즈음 기준은 문득 호텔 건물 쪽을 쳐다보았다. 강 전무가 집무실 창가에 서서 현장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정확히 루앙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기준은 그 시선에서 뭔가 불길한 조짐을 보았다.?

다음 날 늦은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에 앉아있는데 변형섭이 기준에게 다가왔다.?
“얼마 전에 몰디브에서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잖아.”
“리조트하고 호텔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국내 언론에서는 현지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이유로 리조트 개발이 현지 주민을 위한 지역 개발이나 경제적 효과가 너무 미미하다는 점을 꼬집었지. 강 전무는 거기에 아주 민감해.”
“왜? 여기에서도 그런 문제가 생길까봐?” 밥알이 날리는 안남미를 입 안에 퍼 넣던 기준은 오늘따라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분위기로 보아서는 우리도 그런 불씨를 키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생선구이며 음식이 반 이상 남은 식판을 밀어내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실은 오전에 강 전무님이 날 불렀어.” 잠시 뜸을 들이던 변형섭이 힘들게 말을 이었다. “루앙을 요주의 인물로 꼽더군. 일단 호텔과 관련된 일에서 제외시키라는 명령이야.”
“루앙을? 요주의 인물? 어처구니가 없군.”
“김 형이 더 잘 알겠지만 루앙이 다른 직원들과 다르다는 것은 사실 아닌가.”
“다르면 문제인물이 되는 건가?” 기준은 변형섭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친구와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가 뭐야?”
변형섭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기준은 어제 창가에서 루앙을 바라보던 강 전무의 시선을 떠올렸다. 그는 루앙을 농성의 주동자로 여긴 것이다. 아니, 그 보다는 흐트러진 조직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식욕이 완전히 사라진 기준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루앙도 루앙이지만 그 문제 때문에 두 분이 정면충돌 하시지 않을까 그게 더 걱정이야.”
“두 분이라면 총지배인님하고?” 기준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 총지배인하고 강 전무 사이가 냉랭한 분위기야. 총지배인은 루앙을 내보낼 뜻이 전혀 없으시니.”?

기준은 총지배인의 방으로 향하던 발을 돌려 일단 루앙을 찾아 나섰다. 피트니스센터에서는 인부들이 헬스기구들을 2층으로 옮기느라 분주했다. 오전에 기준이 지시한 일이었다.
루앙은 쏭 강이 휘어지는 리조트 끝자락에서 방갈로의 외벽을 손질하고 있었다. 느릿느릿, 그러나 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준은 멀리서 루앙을 바라볼 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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