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북한 강제수용소, 그대로 둘 수 없다
‘3D’ 전략 구사…인권문제만큼은 한국이 주도해야
북한을 극좌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북한은 실제로 국수주의적 극우세력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폭력적 극우정권과 남한의 무법적 극우세력은 겉으로는 상극인 듯 보이지만 ‘일맥상통’을 넘어 본질적 공통성을 갖고 있다.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좌파는 보통 급진적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평등주의, 계획경제 등을 주요 구성부분으로 한다. 그런데 북한은 노동당을 자칭하고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계획경제라는 옛 소련식 경제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것 외에 이념적 좌파와 공통점이 별로 없다. 북한은 2009년 9차 헌법개정에서 ‘공산주의’란 용어를 아예 삭제하고 ‘김일성 사상(서문)’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1조)’ ‘주체사상과 선군사상(3조)’ ‘계획경제(34조)’ 등의 표현만을 유지했다.
우파는 일반적으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공화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한다. 그런데 현실 속 정치적 스펙트럼에서는 좌파와 우파 사이에 온갖 개념의 조합과 결합, 이념의 혼효와 착종이 일어난다. 때문에 북한처럼 좌파의 허울을 쓴 극우 민족주의적 왕정(王政)파라는 변종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북한을 극우세력이라 보는 것은 그들이 국수주의와 봉건적 지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배타적 민족주의(주체사상)와 특정 집단의 지배(혁명적 수령론)는 물론 폭력수단의 정당화(선군사상)와 내부적 사회변동의 거부(인민민주주의 독재)라는 특징 때문이다. 북한은 스스로 태평천국과 비슷한 유사종교집단을 만들었고 체제유지와 지배적 소수의 특권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구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은 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소련군의 전구(前驅)세력으로 들어온 빨치산 집단이 권력을 장악한 뒤 60여 년 동안 통상적 공산주의 사회에서 독특한 병영국가로 진화해 왔다. 해방 직후 한반도에는 소련의 후원을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한민국(ROK)이 성립했다. 이때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북한정권과 일제 때의 기득권세력이 온존한 남한정권 가운데 북한이 오히려 상대적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스탈린의 세계전략을 등에 업고 1950년 남침을 자행했다. 그들은 전쟁의 참화와 손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정권 초기 얼마간 획득했던 정통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남한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앞지른 것은 1970년대 전반이었지만 확실한 우위를 점한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고 봐야 한다. 이런 위상 변화의 요체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국민의 기본권 회복이었다. 국민이 독재의 사슬에서 벗어나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민주화 도정에 오른 것이 정통성을 높여준 것이다.
북한정권은 국수주의 극우세력
북한은 1960년대 중소분쟁 틈바구니에서 주체사상을 내세워 소련과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함으로써 1990년대 소련 해체로부터의 면역력을 얻었고,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남동유럽의 소국 알바니아도 비슷한 노선을 택했지만 소련의 해체와 함께 참담한 실패를 겪은 데 비해 북한은 상대적으로 강인한 체제유지 저력을 보여 왔다.
지금 진정 중요한 것은 북한의 반인간적, 반도덕적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일관되게 문제를 제기하고, 불의와 잔혹을 바로잡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이다. 그동안 남쪽이 북쪽의 행위를 시정할 실효적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도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남북화해론자 등 일부의 그릇된 시각이었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 제기는 일부 극우세력의 전유물일 수 없다. 그들은 북한 인권문제를 핑계 삼아 지역 패권주의를 부추기고 비판세력을 ‘종북세력’으로 싸잡아 공격하는가 하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타매하고 있다. 남한의 극우세력은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일상적으로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는 면에서 북한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북한 인권문제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남북대화와 인권문제 제기는 분리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일각의 지적대로 북핵 위기와 관련해 국방태세(Defense)를 든든히 하고 미·중 국제공조(Diplomacy)를 다지는 한편 남북대화(Dialogue)도 추구하는 이른바 ‘3D’를 동시에 구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인권문제만은 타협불가 사항이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북한이 저지르고 있는 심각한 반인류적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심지어 무력충돌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구체적 행동을 해야 한다. 북한이 저지른 악행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급선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을 참혹하게 짓밟고 있는 강제수용소를 철폐하고 비인간적 고문을 없애는 일이다.
지난 2006년 하벨 전 체크공화국 대통령 등 3인 명망가의기고문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약 40만 명이 정치범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현재도 20만 명이 수감돼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19일 유엔총회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설립하는 내용의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 없이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8년째 연속 통과된 것이지만 조사위원회 설립은 처음이기 때문에 1년 뒤 구체적인 조사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관계 고려, 인권결의안 기권 없어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남북한의 양자관계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강제수용소 철폐와 고문 금지를 요구한다. 북한에 대해 꼭 거친 말로 항의할 것은 없다. 부드러운 말씨와 단호한 의지로 확실하게 항의하고 요구하면 충분하다.
둘째, 유엔 총회와 안보리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와 다자관계 틀 안에서 북한에 대한 설득 노력을 계속한다. 과거와 같이 남북관계를 감안해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 인권문제만큼은 대한민국이 국제적 압박을 주도하는 것이 옳다. 중국·러시아 등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와 유럽 국가들에게 북한 인권개선을 촉구하도록 협조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앞으로 2~3년 안에 북한이 인권 개선의 구체적 조처를 시작하지 않는 경우 유엔의 제재 결의안 추진과 더불어 독자적 제재에 나선다. 한국은 그동안 남북관계 이니셔티브를 북한에 맡기고 수동적으로 대응한 것은 물론 그 대응마저 주로 미국에 의존해왔다. 인권문제만큼은 우리가 개선 노력을 주도하는 것이 옳다.
북한 인권개선 노력은 강경·온건 양면책을 구사해야 한다. 인권 개선을 하지 않으면 남북 교류 및 경제협력을 축소 중단하고 강제수용소를 일반 ‘교화소’로 전환하면 북한의 전력·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지원하는 것이 한 방안이다.
2차 대전 중 미국·영국 국민들이 나치의 아우슈비츠나 부헨발트 등 강제수용소 실상을 정확히 알았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소련의 악명 높은 굴라그 군도도 북한 강제수용소와 같은 정도는 아니었다. 북한의 강제수용소와 같은 생지옥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없애야 마땅하다. 없애지 못한다면 경고라도 해야 한다. 장차 어느 날 남북통일이 이뤄진 다음 북한 강제수용소 생존자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고통 받고 있을 때 당신들은 뭘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뭐라 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