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남은 기회는 한번뿐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이라는 ‘예고된 기습’ 이후 한반도의 긴장은 천장을 모른 채 고조돼 왔다. 북한이 거의 ‘1일 1건’ 주의로 협박의 성명과 사진을 내놓고, 시위행동을 거듭해 왔지만 서울사람들은 전쟁의 현실적 공포보다는 잘못 만든 판타지 사극을 보면서 느끼는 못마땅함을 먼저 떠올리는 듯하다.
과거의 예로 보자면 외신이 전쟁의 위기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정작 태평스럽게 살고 있다고 보도할 때가 바로 ‘끝장의 시작’인데 올해는 적어도 ‘태양절’ 곧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이 지나야 할 것 같다. 북한이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또는 ’4차 핵실험을 할 것이다’라는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특히 어떤 형태로든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지 도발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어느 날 갑자기 휴전선 북방에 포진한 북한의 장사정포가 일제히 포문을 열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것은 일단 발발 가능성이 대단히 낮을 뿐 아니라 만의 하나 일어난다 해도 딱 떨어지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우선 북한 인민군은 1만7,900문의 대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대포가 모두 휴전선 근방에 배치된 것은 아니다. 또 이 가운데 170㎜ 자주곡사포와 240㎜ 로켓포 등 50㎞ 이상의 사정거리로 서울을 직접 포격할 수 있는 장사정포는 일부에 불과하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350문이 서울을 겨냥하고 있고 1,500문이 휴전선 인근에 배치돼 있다고 한다.
휴전선 북방 포 배치의 공간적 제약과 함께 공격 가능한 포 종류의 제한이 있다. 사격위치 노출에 따른 반격 가능성을 생각하면 자주포와 이동가능 로켓포, 갱도 등 방어강화진지에 의해 보호된 장사정포 외의 다른 야포로는 개전 초기에 서울을 직접 공격하기 어렵다.
또 선제공격을 하면서 군사목표가 아니라 민간목표 등을 무차별 포격한다는 것은 기본적 전술교리에 어긋난다. 2010년 연평도 포격의 민간인 사망자도 군사목표 타격에 따른 민간인의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봐야 할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1945년 3월 B-29 334대의 도쿄 공습으로 하룻밤에 10만 명의 사망자가 났지만 이는 제공권을 완전 장악한 미 공군이 소이탄을 동원해 목조건물들을 전소시킨 ‘전략폭격’의 결과였다. 서울의 경우 목조건물이 사실상 없을 뿐 아니라 군사목표는 얼마 안 되고 군수시설 등 산업목표도 별로 없다.
북한이 심리전 효과를 위해 민간목표를 무차별 타격한다 해도 살상효과는 크지 않은 채 한국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분노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미사일 공격도 파괴효과가 일반적 생각보다는 낮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데다 저밀도 목표를 타격하기에는 경제성의 문제가 있다. 따라서 ‘서울 불바다’는 협박으로서 약간의 효용이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현실성이 거의 없다.
일부에서는 북한과 한국-미국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물론 북한마저도 전면전을 벌이거나 체제의 명운을 내걸 생각은 없다. 또?일부에서 김정은의 오판이나 혈기를 걱정한다지만 현대전이 우연이나 객기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말과 몸짓으로 한번 치고 한번 받는 ‘tit-for-tat’게임에 가깝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세계 여론을 환기시키고 미국의 주의를 끌 수 있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다.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이나 마찬가지로 한-미 연합군이 군사기동을 하면 북한군은 어차피 대응기동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번에는 부대이동 등 전술기동에 더해 심리선전전 등 전략기동을 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은 북한이 과거 미국에는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대신 한국에 군사적 도발을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미군기지 공격과 ‘워싱턴 불바다’ 등 미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미군에 대한 협박을 실천에 옮길 지는 좀 두고 봐야겠지만 이 역시 정치적 수사이자 구두선으로 끝날 개연성이 높다. 미군에 대한 도발이 상징적 수준을 넘어 상당한 피해가 난다면 미국이 강력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동북아 안정을 깨뜨리는 행동에 대해 적극 반대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직접 대결은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북한의 핵전력에 관해서도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다. 원자핵공학 전문가인 서균렬 서울대 교수는 이달 3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북한 전력사정을 볼 때 고농축우라늄(HEU)을 확보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북한은 HEU보다는 플루토늄 추출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북한이 갖고 있다는 원심분리기 2,000대를 완전 가동하려면 북한 전체 전력의 3분의 2가 투입돼야 한다. 미국이 1940년대 오크리지연구소에서 우라늄을 농축할 때 미국 전체 전력의 50%를 투입해야 가능했다는 것이다. 히로시마급 우라늄탄 1기에 필요한 HEU 25㎏을 확보하려면 원심분리기 2,000대를 1년동안 돌려야 하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원심분리기 5,000∼8,000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북한의 핵폭탄은 현재로선 투발수단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미국·일본은커녕 한국을 치기도 어렵고, 오직 북한 내에서만 폭발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전력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혹독한 평가다.
재래식 군비에 대해서도 북한의 해공군력은 기습전에서 일부 효용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 한미연합군과의 정규전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다만 북한 육군의 포병, 기갑, 특수전 역량은 우세한 병력과 집중적 훈련 덕분에 일정한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탄약과 연료 등 병참의 열세를 감안하고 계산해야 한다.
이처럼 한반도의 전면전 가능성은 사실상 없지만 국지전 또는 제한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안보는 도박이 아니고 천 가지 중 한 가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소홀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은 대남 핵공격을 공언함으로써 이미 금지선을 넘어섰다.
앞으로 북한이 평화적 합의통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아마 한번 밖에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일괄타결을 선택하지 않는 한 우리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군사·정치·경제적 압박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특사 파견제안 등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시도는 장기적으로 큰 의미가 없고 선제타격의 가능성 등 모든 방안을 열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