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야스쿠니신사와 베트남전쟁
지난달 21일 일본의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을 비롯한 각료 3명이 봄철 제사에 맞춰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아베 수상은 직접 참배하지 않은 대신 공물을 바쳤고, 23일에는 국회의원 168명이 야스쿠니를 집단 참배했다. 한국 정부는 2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6∼27일 일본을 방문해 가지려던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주일대사를 소환하는 등 강한 항의 의사를 표명했다.
우리 정부의 이런 강력 대응은 지난 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일 규탄 결의안이 기권 1명을 제외한 전원 찬성으로 통과한 데서 드러났듯이 여야 정치권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 언론도 진보·보수를 가릴 것 없이 일본 현직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가 “군국주의 부활”의 시도이고 아베 수상의 국회 발언이 “몰역사적 극우 망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민 여론 역시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이웃나라를 도발하는 행위라는 데 거의 이견이 없는 듯하다.
여기서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은 지난해 12월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올해 2월의 3차 핵실험에 이은 지난 몇 달간의 북한의 파상적 선전 공세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반응해 왔는가 하는 맥락이다. 이 기간 중 북한의 도를 넘는 협박공갈과 호전적 수사는 남쪽 대화론자들의 논리와 입지를 상당히 위축시켰고 우리 국민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크게 증폭시켰다. 진보언론도 북한에 대해 애써 거리를 두면서 기껏 ‘개성공단을 살려야 한다’는 정도의 다분히 방어적 구호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보수언론은 반북 분위기에 편승해 이른바 ‘종북세력 척결’을 외치면서 정치·사상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북한문제는 한국의 정치세력들에게 서로 맞서도록 몰아넣는 분열적 쟁점인 데 비해 일본문제는 대일 비판과 반발이라는 공동전선을 펴도록 유도하는 통합적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상황은 보수세력이 ‘반북반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내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하는 반면 진보세력은 ‘비북(批北) 반일’로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양쪽 진영이 이 시점에서 동상이몽으로 일치하는 대목은 ‘반일카드’가 유효하다는 점이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떤 꼬투리를 제공한 것을 기화로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전통적인 수법이자 성공률이 보장되는 공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북한을 다루려면 중국과의 양자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긴요한데 ‘일본 때리기’로 중국에 접근하는 것은 최상의 방책이 아닐지라도 일리 있는 외교전술이라고 볼 지도 혹시 모르겠다.
일본은 나름대로 국내의 정치적 이유로 현직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한국의 선도로 중국이 반발하고 미국정부와 미·영 언론이 비판 대열에 가세하자 상당히 곤혹스런 처지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번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해 유권자 지지를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 보수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적 행위이기 때문에 한·중·미의 반발과 항의는 일면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인 부분도 있다. 단지 일본 입장에서 당혹스런 것은 한국이 그들 시각에서 약간 과잉 반응한다는 점과 미국이 외교경로로 우려를 전달하는 등 이례적으로 개입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일본은 당분간 외교적으로 납작 엎드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이처럼 발끈하고 나서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원론적으로 한 국가의 정치적 동향과 움직임은 이웃나라와 국제사회의 관심사이자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종족말살의 선동이나 테러 지원, 네오나치·파시즘의 발흥, 군국주의 부활이나 역사조작 시도 등 명백한 위험사안에 대해 우려를 갖고 시정을 권고하는 것이 국제 상궤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 우리가 문제 제기를 할 때 ‘원칙과 논거’ 그리고 ‘방식과 수위’라는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심사숙고할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의 역사 인식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문제다. 설사 그릇된 태도나 사실에 반한 주장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본 내부에서 알아서 논의하고 시정할 일이지 피해 당사자라고 해서 일일이 간섭하고 강요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일본이 좌경화하든 우경화하든 민주체제를 유지하는 한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일본사회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치자. ‘도둑도 제 자식에게는 거짓말하지 말고 훔치지 말라’고 가르치는 법인데 거짓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면 결국 일본의 손해지 우리나라의 손해랄 것은 없다. 일본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나서기보다 우리는 혹시 그런 점이 없는지 반면교사 삼아 되돌아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둘째, 반란군도 묘지가 있고 사형수도 무덤이 있는 법인데 일본은 아무리 침략전쟁이라 하지만 어쨌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자에게 제사조차 지낼 수 없고 정치인이 참배해서도 안 되는 것일까.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정치권 일각에서 조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결론은 국민 여론에 따라 조문사절을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에게 남침의 책임이 있으니 그들과 어떤 대화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사람이 소수에 그칠 것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곧 군국주의 도발로 보는 것은 확대해석이라는 일부 시각도 없지 않다.
셋째, 야스쿠니신사를 문제 삼는 것은 1978년 도조 히데키 등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다음부터다. 야스쿠니에는 메이지유신 내전을 비롯한 각 전쟁의 전몰자 246만6,000명이 합사돼 있는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와 직접 관련된 전사자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죽은 일본군 및 순사 등 13명과 1920년 청산리대첩에서 사살된 1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A급 전범들은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과 1941년 진주만공격으로 촉발된 태평양전쟁에서 침략전쟁의 주요 책임자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말한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우리나라는 ‘대일본제국’의 일부였고, 강제였을망정 전쟁노력에 동원됐다. 따라서 이 시기에 관한 한 우리는 타의에 의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양면성을 가질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과 강점에 대해 사죄와 원인무효,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과 전쟁을 한 것에 관해서는 당사자가 아닐뿐더러 매를 들고 앞장서서 군국주의를 비난하기에는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지 않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북한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미국과의 동맹을 탄탄히 다지는 것이 대전제고 일본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견제와 균형을 위해 유리하다. 일본과의 상호관계는 무엇보다 감정을 앞세워서는 안 되고 명분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실용적이고 호혜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면 근본적으로 일본의 각성이 필요하지만 우리쪽에서도 간헐적 반일감정의 표출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명분이 아니라 국익의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은 독일과 프랑스처럼 대국적 견지에서 과거사에서 비롯된 응어리를 치유해 가야 한다.
다섯째,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전격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이 일본 대중에게 자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번 한일외교장관회담의 일방적 취소도 어느 정도 적정 수위를 넘어선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온갖 심한 짓을 하는 북한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자면서 일본과 만날 필요도 없다며 내치는 것은 제3자에게 우리 쪽 행동이 균형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미국이 중국의 대북한 압박을 기대하면서 일본의 행동에 제동을 걸기는 했지만 한국은 얄팍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국제무대에서 신중하고 품격 있게 처신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장관회담을 취소하기보다 일본 외상을 직접 만나서 점잖으면서 단호하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1992년 한국이 베트남과 수교하기 전해인 1991년 베트남 국회의원 몇 명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 데스크보조였던 나는 국회 출입기자에게 그들을 인터뷰하라고 지시하면서 한 가지를 덧붙여 요구했다. 월남전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캐물어 보라는 주문이었다. 이튿날 내게 들어온 인터뷰 기사에는 인상적인 내용의 말들이 들어있었다.
베트남 국회의원이 말하기를 “베트남전쟁 중에 양민학살사건이 있었다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베트남의 문제라기보다 한국의 문제”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학살사건이 있었으면 범죄를 저지른 쪽에서 법적 처벌이든 도의적 반성이든 경제적 배상이든 고심해야 할 일이지 피해를 당한 쪽에서 뭐라 말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물론 이것을 반어적 수사이자 전략적 태도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상대에게 우리가 더 무어라 할 것인가. 1960년대 미국 원조처 관리들이 베트남에서는 쩔쩔매다가 한국에 온지 한 달만 지나면 허리가 뒤로 젖혀진다는 말이 있었다. 한국정부의 카운터파트들이 구 베트남공화국 관리들만큼도 당당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어찌 보면 백 마디의 말보다 효과적인 존재일는지 모른다. 연로한 할머니들을 동원해 시끄러운 항의집회를 하는 것보다 묵묵히 앉아있는 소녀상이 더 많은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의 인어상보다 오히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나왔지만 위안부 소녀는 우리들의 할머니이자 이웃이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일본인들 자신이 후손의 장래를 위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할 문제다. 우리는 과거를 잊어서도 안 되고 무작정 용서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그들에게 반성하라고 들이대거나 핍박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왜 일본에게 그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친절까지 베풀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