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퇴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성적표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회견이 5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예로부터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선하다’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의 말에는 진솔한 느낌이 별로 없었다. 이 대통령은 역시 자신에게 집착하고, 끝까지 ‘자존자대’의 태도를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목표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의지의 한국인’으로서의 풍모가 약여했다.
‘떠날 때는 말없이’라지만 오히려 가는 길에 그가 몇 마디 말을 남기는 편이 낫다. 누구든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정당성을 주장하고, 변명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옳기에 그렇다. 옛날 사람들은 ‘스스로 쓴 묘지명(自撰 墓誌銘)’을 남기기도 했고 근래에는 자서전으로 삶을 결산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 대통령도 자신을 위해, 그리고 후세를 위해 더 솔직하고 자세한 회고록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까. 물론 이 대통령이 백 가지를 다 잘못할 수는 없고, 더러 잘한 일도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100점 만점에 25점 정도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으로서 한 일을 열 가지 정도로 축약한다면 잘한 일이 두세 가지는 된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악의 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얼추 비슷한 수준이고 그 밑의 바닥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지 않은 채 막말을 했고 설익은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인사의 폭이 좁은 데다 측근비리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해 결국 ‘진보’가 무능 부도덕한 세력으로 불신 받도록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역대 청와대에서 가장 수준 낮은 비서실과 내각을 거느렸고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숙청 등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IMF 외환위기를 초래함으로써 나라를 백척간두로 내몰았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체육관 대통령’과 직선제 대통령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군부독재정권의 우두머리였고 내란죄로 처벌 받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으로서 그들은 앞서의 대통령들보다는 나은 성적표를 받지 않겠나 싶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보는 사람에 따라 진폭이 크겠지만 긍정적 평가가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윤보선·장면·최규하 등은 애초부터 같은 반열에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 중 잘한 일은 무엇일까. 우선 경제위기 대응을 들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조선일보> 회견에서 “두 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국내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두 번의 위기’라는 것은 한 번인지 두 번인지 견해의 차이가 있고 ‘극복’이라는 표현에도 의문이 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국제재정위기를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유럽국채위기 등과 함께 ‘세계 대불황(The Great Recession)’의 일부라고 보는 유력한 견해가 있다. 또 한국이 이명박 대통령의 지도력과 정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2009년도에 불황을 면한 것이 사실인데 이것은 위기극복이라기보다 대응을 잘한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2012년에 2%대의 저성장을 기록한 것은 임기 5년 전체의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또 잘한 것으로는 대미관계의 개선을 들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미·대일 외교를 국내 정치와 대북관계에 연결했던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반해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을 잘 쌓았고, 결과적으로 한미관계는 한미동맹 60년 가운데 가장 순조롭고 긴밀한 시기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부 언론에 흘러나온 바로는, 오바마가 2009년 미국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11월 아시아 순방에 나섰을 때 상당히 긴장상태였다고 한다. 싱가포르를 거쳐 중국에 간 오바마는 눈에 두드러지게 푸대접을 받았다. 칭화대 학생들에 대한 강의는 TV 중계가 되지 않았고 흑인 대통령에 대해 아래위로 훑어보고 재보려는 태도가 역력했다는 것이다.
중국 방문을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 오바마는 정중한 의전과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좋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미군들이 나눠주는 물품을 받으려고 줄을 오래 섰다가 끝내 못 받은 일화를 꺼내며 “한국의 발전은 전적으로 미국 덕분”이라고 공치사를 거듭해서 오바마에게 감명을 줬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대통령은 오바마로부터 가장 친밀한 외국 정상 세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두 사람은 4년 내내 좋은 실무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한미 FTA협정 비준과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이 대표적 사례다. 오바마 대통령의 적극 지원으로 제2차 G20 정상회담과 핵안보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에 대한 밀착은 상대적으로 중국의 반발을 가져와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중국이 피해자 한국의 편을 들기는커녕 북한의 역성을 드는 듯 만드는 데 크게 작용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에 대해 일부 비판과 지적이 있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이 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자신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 지도자들과 “사석에서 통일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된 건 상상할 수 없는 변화”라면서 이런 진지한 대화가 이뤄진 건 1년 정도 된다“고 말했다. 중국 정상급 지도자와 나눈 대화를 상대와 시점을 사실상 특정해서 밝힌 것이다.
또 북한의 도발에 대한 무력 보복 방침을 중국 쪽에 ”북한에 통보해 달라“고 했다며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다이빙궈를 직접 거명했다. 공무원 직무상 지득한 기밀을 누설할 수 없다는 법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외교상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밝히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는 의문이 있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취임 전 출생지가 일본 오사카라는 이유로 온갖 구설과 풍문에 시달렸고 취임 후에도 ‘친일파’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았음에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8월 독도를 방문했다. 특별한 이유나 명분이 없는 가운데 8·15를 앞둔 시점이라 떨어지는 국민 지지도를 만회하려는 정치적 제스처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뤘다. 게다가 느닷없이 “일본 천황이 한국 방문을 원한다면 독립운동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는 말을 해서 한일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중국에 대한 말이나 일본에 대한 발언 모두 ‘나의 조그만 이득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의 체면이나 입장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가 뚜렷하다. 동네 처녀와 입맞춤 한 번 하고서 동네방네 다니면서 소문을 퍼뜨리는(Kiss and Tell) 못된 총각처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것이 이들 ‘의지의 한국인’이 넘어서야 할 과제다. 이것은 후임 대통령들의 입지를 좁게 할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한국인의 됨됨이에 관한 문제이기에 심각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떳떳하지 못한 모습은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술회에서 드러났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연평도 도발 당시 ‘공군을 뒀다 뭘 하느냐’며 공습을 지시했으나, 군 고위 관계자가 ‘교전규칙에 따르면 공군이 나서면 절대 안 된다. 미국과도 상의해야 한다’며 막았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 즉 최고사령관이고 군사충돌 또는 개전 상황에서는 반드시 찬반 의견과 강온 양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건의를 듣되 최종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군사적 판단은 군 지휘부에 위임할 수 있지만 종합 판단은 대통령의 몫이고 그것을 할 수 없다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사건 직후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대한 것이지만 북한군에 대해 군사적 응징을 가하는 것은 사건 24시간, 48시간, 72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과의 눈싸움에 지고는 “옆에서 눈을 감으라고 해서 감았다”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밖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는 많다. 예컨대 한반도대운하 구상은 1990년대 경부운하 구상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터무니없는 오발탄이었다. 대운하 사업이 4대강 사업으로 바뀌어 졸속 추진된 후에도 숱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경부운하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인 내가 왜 경인운하에 대해서는 찬성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론하겠다.
미국쇠고기 수입허용과 광우병 소동, ‘고·소·영’ 인사 등 인사 독점, 측근 비리 및 부패사건, 부자감세와 재벌특혜,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원 정치개입, 내곡동 사저 의혹, 임기 말 측근 특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등 이명박 정권의 비리와 실책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질 만하다. 그러나 ‘공정한 사회’와 같은 정치 비전은 잠재력이 큰 화두였는데 그것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한낱 공허한 구호에 그치게 한 것은 유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특질이 곧 반성이라면 이명박 개인은 반성이 결여된 반(反)지식인의 전형이다.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되짚어볼 시간이 많을 것이다. 부디 이제라도 자신과 자신의 삶, 그리고 탐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성찰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 바란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배운다.
* 이 칼럼은 논평전문매체 ‘오늘의 코멘터리 (www.commentary.co.kr)’ 제휴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