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갑질’과 ‘삽질’

한국은 ‘갑을’사회다.

요즘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고 있지만, 한국은 원래 힘 있는 자와 없는 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명망 있는 자와 명망 없는 자의 거리와 격차가 심하기로 여느 나라 못지 않다. 특히 남녀차별과 학벌주의, 지역대결과 세대갈등, 이념대립과 노사분쟁 등 갖가지 사회 모순이 첨예하고 심각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이다.

근래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은 계약관계에 있어 양 당사자인 ‘갑’과 ‘을’ 사이의 세력관계가 대등하기는커녕 칼자루를 쥔 쪽에만 한없이 유리하고 칼날을 붙잡은 쪽은 어떤 불이익이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갑과 을은 늘 ‘강약부동’이었지만 최근 들어 을이 ‘삽질’을 하는 동안이라도 갑이 지나친 ‘갑질’을 자제한다는 배려와 예의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삽질은 삽으로 땅을 판다는 사전적 의미에서 노동을 상징적으로 일컫는 말로 진화했지만 근래에 와서는 ‘성과 없는 일’ 또는 ‘헛된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됐다.

갑질은 첫째, 갑이 스스로 갑의 위치를 과신한 나머지 유세(有勢) 떠는 것을 말하고 둘째, 을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갑 행세 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전자는 자랑삼아 세력을 부리는 것이고 후자는 주제넘게 손위 노릇 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명문세가나 재벌일가처럼 ‘세습형 갑’도 있고 언제까지나 사회적 약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물림 을’도 있지만 보통은 한 사람이 상황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다른 말로 동일한 사람이 삽질과 갑질을 번갈아 또는 동시에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갑질의 행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대통령이 뇌물을 받아 제 자식들의 집을 마련해주는 범죄행위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해놓고 탈세 절세에 이용하는 몰염치한 짓은 물론 재벌 등 특권층이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과시적 소비에 몰두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갑질은 공직사회와 기업조직에 만연한 부패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부당한 갑을관계에서 비롯된 불균등 ‘을을관계’의 한 사례로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잠깐 생각해 보자.

지난 십수년간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화 바람은 ‘평생고용’의 신화를 깨뜨리고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한편 비정규직의 양산을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과거 고속성장 개발시대에 노동시장에 나온 50대 아버지는 정규직이어도 오늘의 ‘저고용시대’에 취업해야 하는 20대 아들딸은 비정규직 일자리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모세대가 충분한 노후대비 없이 퇴직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자녀는 ‘백수’와 ‘백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사례다. 이처럼 청년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 아니라 반영구적인 고용조건이 돼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원래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같은 을이었지만 그들끼리 정규직은 갑이고 비정규직은 을이 돼버린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과 공기업은 물론 대기업에서도 정규직은 고수익과 안정성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고, 비정규직에게는 터무니없이 낮은 보수와 언제라도 잘릴 수 있다는 신분상의 불안을 강요하고 있다.

나아가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을 배제함으로써 처우개선의 기회를 봉쇄하고 민노총과 진보당 등의 조직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관철하고 있다. 또한 정규직이 문서작업과 ‘사내 정치’, 발주와 감수, 하청업체의 감독에 몰두하는 동안 비정규직은 현업에서 손과 발을 이용한 모든 실무를 감당하고 있다.

정치권은 앞다퉈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내용이 대동소이할 뿐 아니라 새로울 것이 거의 없다. 그 뼈대는 언제까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비정규직 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성이다. 지난 대선 때 한 후보가 청년실업과 관련해서 “대책을 확실히 마련하는 게 우리 대책”이라면서 대기업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 그만큼 고용을 늘리도록 하겠다고 발표해 현실성도 없고, 효과도 미미한 대책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한 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두 가지 방안을 검토해 볼 만 하다.

첫째, 모든 공무원을 비정규직으로 바꾼다. 여기서 비정규직이란 10년 기간의 계약직을 말하고, 일정한 평가 절차를 거쳐 재임용하는 것을 말한다. 헌법에 공무원의 신분 보장이 명시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판사나 교수의 재임용제도에서와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계약직 공무원은 전혀 위헌이 아니다. 공무원이 모두 비정규직이 되면 비정규직의 권익을 지키기에 앞장설 것은 불문가지다.

둘째, 동일한 직무를 수행할 경우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 보수의 120%를 지급하도록 입법화한다. 정규직은 고용의 안정성을 갖는 대신 비정규직에게는 상대적인 고임금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노동법에서 시간외 노동에는 일정한 가산급여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듯이 비정규적은 정규직보다 우대하도록 법제화하면 고용주는 최대한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릴 인센티브를 얻게 된다.

정규직의 특권을 축소하고 비정규직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갑의 갑질을 줄이고 을의 삽질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길이라면 이제 발상을 과감히 전환해 봄직도 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