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대응 핵개발’론의 함정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한국도 이에 대응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은 과거 이른바 ‘수구 꼴통’이라 불리는 극우 논객과 극소수 정치인들에 의해 제기됐지만 북한의 핵 위협이 대두하면서 정치권의 주류 보수진영으로 지지기반을 넓혀갈 기세다. 보수 언론 역시 뉴스보도에서는 핵개발 가능성을 현실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지만 기고 및 의견으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의 북한 핵개발에 대응한 핵무장론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헛소리일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 누군가를 겨냥해 일부러 떠들 만한 가치조차 없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핵무기를 갖는 순간 남북통일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만류와 중국의 반대, 일본과 러시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자 핵무장을 하는 순간 한국은 국제적으로 고립하고 북한이 붕괴하는 경우에도 주변 강대국에 의해 통일을 허용 받지 못할 것이 필연적이다.
미국의 세계전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둥 가운데 하나가 핵 비확산 정책이다. 미국은 2차대전을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을 개발한 이후 소련과 중국,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독자 핵개발을 했지만 핵전력에 있어 워낙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했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물론 냉전체제가 절정에 이르렀던 1950년대 말 스푸트니크 충격과 60년대 초 쿠바 미사일위기 때는 소련의 위협을 강조했지만 이것은 군사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제 러시아는 더 이상 군사적 위협이 아니고 중국도 실질적 위협이 되려면 적어도 10∼20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스라엘과 인도·파키스탄의 핵무장을 내키지 않지만 추인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은 현재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란의 경우 미국이 이란을 침공해 지상전을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지난 2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국력 소모도 컸을 뿐 아니라 중동전쟁에 대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 때문에 이란과의 전쟁에 말려들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전쟁을 불사한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국내 정치 때문에 이를 외면하기 어렵다.
북한의 경우 미국은 역시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저지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전쟁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북한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해 미 본토를 직접 위협하게 되면 군사적 공격을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이를 협조 또는 묵인하는 경우 북한에 대한 공격은 손쉬운 일이 될 것이다. 설사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미국이 중국의 심장부에 근접한 북한을 공격함으로써 힘의 과시를 할 이유가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중국은 한반도가 대한민국의 주도 하에 통일될 경우 통일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중국의 입장을 바꾸려면 한미동맹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당장 북한이 건재하는 한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자니 중국이 등을 돌리고, 중국에 접근하자니 미국이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위험’을 회피하는 유일한 방도는 미국과 중국의 협조관계에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상호 대립상태로 진입하고 있지만 동시에 협조관계를 유지해야할 강한 유인을 양쪽 다 갖고 있다.
중국은 강대국으로 굴기할 시간을 벌어야 하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포위망을 완성하는 동안 통상이익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는 중재자와 해결사 역할을 해야만 남북통일을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한다면 북한보다 더 한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북한은 어차피 고립돼 있고 가난하기 때문에 잃을 것도 별로 없지만 한국은 선진국이자 무역대국이고 온갖 것을 잃을 수 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홀로 간다면 미·중이 북한에 제한적 지원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유지하도록 합의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이것은 한국으로서 거의 ‘자살골’이다.
다음으로 한국이 핵무기를 어디다 쓰려고 개발한다는 말인가. 만의 하나 핵무기를 써야 한다면 북한 밖에 없는데 가령 북한이 핵 공격을 했다 하더라도 핵무기로 반격한다는 것은 꼭 현명한 생각이 아닐 수 있다.
남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핵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었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아니다. 지리적으로 붙어있고 재래식 군비가 있기 때문에 군사충돌 또는 전쟁이 벌어져도 재래식 무기에 의한 전쟁이 먼저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곧 동반 자살을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가 왜 북한이라는 ‘자해공갈단’의 수법과 흉기를 채용해야 한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핵주권’ 운운 한다. 그런데 핵주권이 도대체 무엇인가. 국제사회를 하나의 늑대 무리로 비유한다면 핵주권을 갖는 것은 1번 늑대 즉, 알파메일의 특권이다. 2번, 3번, 4번 늑대도 비슷한 무기를 가질 수 있지만 조건부 권리에 불과하다.
늑대 무리가 둘로 나뉘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무리의 우두머리만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국제사회는 1.5무리의 늑대떼와 비슷하다. 미국 무리는 다수인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리는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의 핵주권이란 것이 있다면, 통일 이후에나 생각해 볼 문제다.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의 핵무장은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백해무익한 일이다. 북한과의 양자관계에서도 핵무기가 저지 또는 대응수단이 된다는 것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예외적 상황이 있다. 일본이 먼저 핵무장을 하는 경우에는 한국도 핵개발을 적극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또 한 가지, 한국이 핵개발을 정말 할 것인가 여부를 떠나 국내에서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이 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긴장시키고 우리에게 귀 기울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 역시 더 이상 효과가 없다. 북한이 핵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단계에서는 혹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지 몰라도 지금 단계에서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1991년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필자는 체니 미 국방장관에게 “북한 핵무기에 대응해서 한국도 핵 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나”고 물었다. 체니는 그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동문서답으로 논점을 피해갔다. 너무 이른 시기이기도 했지만 미국으로서는 껄끄러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핵무장 여론이 나와도 미국은 실제 개발을 차단할 뿐 공리공담에는 크게 개의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가능성이 없으니 말이다.
이밖에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있는데, 이 역시 군사적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울러 이는 한반도 비핵화정책을 근본적으로 변경하는 사안인데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보수 우익이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사회 우경화를 위한 정치 공세를 벌이고자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대응 핵개발을 내세우는 것은 가능성도 없이 목청을 높이는 것이고, 지극히 어리석은 주장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 유감스럽다. 보수 우익도 머리를 더 써서 그럴싸한 방안을 내놓을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