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의도된 중국의 ‘전략적 모호성’

지난 2월28일 중국공산당(중공)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 덩위원 부편집인이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중국은 말 안 듣는 북한을 버려야 (Beijing should abandon wayward North Korea)’라는 글을 기고한 뒤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중국은 언론의 자유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특히 공직자의 경우 상부의 지시 없이 이런 의견을 표출하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이번 기고문은 중국정부의 다목적 언론공작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우선 FT는 경제지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외교정책 및 국제문제에 특장을 갖는 종합지로 세계에서 <New York Times>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자랑하는 영국 매체이다. 또 중공중앙당교는 역대 교장명단에서 마오저둥, 류샤오치, 화구오펑, 후진타오, 시진핑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공산당의 핵심기관이다.

기고문이 중공중앙당교 기관지 부편집인이라는 비교적 하위직 실무관리의 명의로 이뤄졌다는 것은 추후 논란이 커지고 후유증이 심각할 경우 중공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도록 부인가능성(deniability)를 갖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렇다면 이 기고문은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 첫 번째 대상은 물론 북한이다. 중국정부는 이 기고문으로 평양에 고위급 특사를 보내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 동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한 공개적 경고를 보낸 것이다.

물론 이는 공식이 아니라 개인 이름의 비공식 경고이기 때문에 북한의 체면을 덜 깎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외교적으로 비공개 대화를 통해 핵개발을 만류한 데 비하면 더 심각한 성격을 띠고 있다. 아울러 발언의 수위를 보면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 주도의 통일을 용인하겠다는 내용이라 거의 최후통첩 직전이고, 북한과 중국 관계의 현주소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다음으로 중국은 미국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재자 노릇을 하면서 미국에 외교적 협력을 해왔다. 또 서방 진영의 대북한 유엔제재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비군사적 제재에 한해 동참함으로써 핵 비확산에 동의한다는 점을 공표했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예상되는 시점에 고위급 특사를 파견해 북한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성의를 표시했다.

이제 중국은 공산당 당료 명의로 북한 포기 가능성을 내비침으로써 북한에 대한 공개적 압력을 한 단계 높였고 압력수단의 메뉴를 한 가지 늘렸다. 이것은 중국이 가장 신경을 쓰는 미국에 대해 중국의 강력한 비핵화 및 북한 통제 의지를 과시하는 또 하나의 효과적 방법이다.

북한과 미국 못지않게 이번 일과 관련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양해 아래 중국에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당선자로서 일본 특사에 앞서 중국 특사를 접견한 것은 상당한 외교적 제스처라 할 수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미국방문에 앞서 중국방문을 하는 방안이 최근 청와대 내부에서 제기돼 검토 중이라 한다. 미국과 사전에 긴밀한 사전 협의를 거친다는 전제하에 이는 상당히 진취적인 조치고 긍정적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내정자가 한반도주변 국가들의 순위를 과거 ‘미-일-중-러’에서 ‘미-중-일-러’로 바꿨다고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실수라기보다는 의도적 신호를 중국에 보내는 미묘한 외교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중국은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북한을 적극적으로 편드는 모습을 보여 한국정부와 국민여론을 돌려세운 바 있다. 또 남중국해 영토분쟁에 대해서도 중국이 일방주의와 오만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관련 상대국은 물론 역내 국가에 각인시켰다.

중국정부는 2011년 이후 이런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려 이웃 국가들과 좀 더 안정적 관계를 갖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회견에서 중국 정상급 지도자들과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고, 중국은 약 1년 전부터 태도를 바꿨다고 말한 것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중국은 왜 태도를 바꿨을까. 중국은 한반도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관련 당사국에 보내는 신호를 강경 일변도에서 강온 양면 신호를 섞음으로써 ‘전략적 모호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라 본다.

이는 첫째, 북한의 ‘전략적 반전’ 가능성을 예방하는 한편 둘째,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한국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셋째, 한미일 삼각체제를 약화시켜 미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북한의 전략적 반전이란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은 뒤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중국을 봉쇄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가능성을 말한다. 지금 현재로는 가능성이 낮지만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꼭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전략적 모호성의 둘째와 셋째 이유는 새삼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지난달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중국의 고위급 차원에서 북한을 일방 지원하는 정책을 수정해 전략적 모호성을 확보하고 북한에게 한국카드를 활용하는 ‘양다리(double deal) 정책’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 급속히 가까워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할 개연성이 있다.

중국에게 한국카드는 북한을 제어할 뿐 아니라 일본을 압박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1석3조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당장 북한을 버리거나 한국 주도의 통일을 용인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일 뿐 아니라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외교의 최대 목표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중국이 경제·군사적으로 성장해 강대국이 될 때까지 미국의 봉쇄와 견제를 극복하고 미국과 호혜적 무역관계를 유지하는 양면책이 관건이다. 또 아시아 특히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반도의 현상 유지가 곧 국가 이익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적략적 모호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위의 정책목표를 포기한 것이 아니고,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용인하는 현상타파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민이 현혹되기 좋을 만큼 귀에 솔깃한 수사를 늘어놓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일본과 전략적 대립을 계속하는 한 한국을 중립화하고, 가능하면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이밖에 일본과 아시아 각국에 대해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전략적 유연성을 보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은 앞서 지적했듯이 그동안 일본은 물론 베트남과 필리핀 등 분쟁국가들에 대해 호전적 발언을 일삼음으로써 국제적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감수했다. 그러면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만류를 공공연히 무시하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중국의 체면이 얼마간 깎인 것 또한 사실이다.

이상과 같이 중국이 제한적으로나마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대응은 무엇이어야 할까. 한국도 중국에 대해 똑같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하되 그 강도는 더 높은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경우 배치제한선을 거론할 것이 아니라 아예 통일후 주한미군 철수가능성도 강력히 시사해야 한다. 미군 주둔은 기본적으로 한미간 양자문제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결정이기 때문에 차후의 문제를 미리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중국에 지나치게 영합하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한다. 예컨대 대만과의 관계 등은 중국의 압력을 과감히 무시하고 개선 회복해도 좋다. 그러나 티베트 문제 등은 예민하므로 달라이라마 초청 등 실익이 없는 일을 벌일 필요는 없다. 북한의 무력도발이나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조업문제 등은 매우 엄격하고 당당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또 북한에 대해서도 핵 포기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국가연합 형태의 통일과 전쟁포기를 조건으로 제한적 핵 보유 허용을 논의할 유연성을 보이는 것도 전략의 일부다. 북한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탄(ICBM)을 개발하고 실전배치하기 전에 한반도의 현상을 타파하고 통일을 지향하면서 식량뿐 아니라 사회간접자원 등 경제적 지원을 통해 북한체제의 생존을 허용하는 대타협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한 방안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돌파구를 찾는 노력이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이념에 얽매일 것이 아니다.

이처럼 중국과 북한에 대해 적극적 외교공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아직 널리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공세를 취하지 않으면 북한의 공세에 밀릴 뿐 아니라 강대국들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또 외교공세는 상대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적극적이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평화적이어야 한다. 의지와 실력도 없으면서 칼자루를 덜컥대는 것은 하지하책이다. 일부 보수파들이 강경책만 늘어놓는 데에 대해선 그동안 뭐했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북한을 그렇게 공격하고 싶으면 몇몇이 무리를 져서 특공작전을 직접 펼치면 어떻냐고 제안하고 싶다.

향후 북한이 실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배치할 경우 미국의 정책 옵션은 어떤 것이 있을까. 미국은 첫째, 북한과 수교와 평화협정을 맺고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의 쐐기(wedge)로 활용하는 적극 포용정책과 둘째. 중국과의 상호 양해로 한반도 분단체제를 유지하면서 북한에 제한적 지원을 통한 유지·연명정책 셋째, 한국의 동의하에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해 핵무기를 제거하는 체제변경정책 가운데 하나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5∼10년 뒤 일이라 미리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미국으로서는 국내정치의 동향이 가장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셋째 군사적 옵션의 현실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 예측이다.

중국이 어떤 손짓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쉽사리 믿거나 거기에 넘어갈 것은 전혀 없다. 반면 마이동풍의 자세로 완고한 입장을 고집하는 것은 병자호란 전 척화명분파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길이다. 한국은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그리고 꿋꿋하면서 부드럽게 국익을 추구하면 된다. 그러는 동안 이념에 사로잡힌 채 친미파와 친중파로 갈려 엉뚱한 주장을 하는 우리 내부의 사람들을 경계하고 2선으로 물러앉게 해야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