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와 민족감정
일본서 훔친 고려시대 문화재 어떻게 해야할까
일본정부 대변인을 겸하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국 절도단이 일본에서 훔쳐 반입한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일본 반환을 잠정 중단하라는 한국 법원의 결정과 관련해 “국제법에 따라 문화재 반환 요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교경로를 통해서 반환을 요청할 것”이라고 지난 27일 밝혔다.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문화재 불법 반출·입과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국제협약(유네스코협약)’을 근거로 일본에서 도난당한 불상 2점의 반환을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일부 일본 언론들은 한국 법원이 명확한 이유도 없이 불상 반환에 제동을 걸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26일 대전지방법원 민사21부는 충남 선산의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점유 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원고 청구를 들어줬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금동보살상을 보관하고 있던 일본 관음사가 이 불상을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것을 소송 등을 통해 확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번 결정은 소유권이 어디 있는지 결정이 날 때까지 불상을 일본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며 “반환 자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보도다.
김아무개(69)씨 등 국내 절도단 5명은 2012년10월 일본 쓰시마의 관음사와 카이진 신사에 침입, 금동관음보살상과 동조여래입상 등 불상 2점을 훔쳐 한국으로 반입한 뒤 팔아넘기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문화재 전문가에 따르면 “관음사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복장품과 발원문에서 1330년 서산 부석사에 봉안된 것이 밝혀졌다”며 “1350년부터 조선조 건국 이전까지 충청지역에 왜구가 자주 출몰한 기록이 있는데 이때 약탈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 일을 두고 일본 트위터리안 가운데 일부가 “한국은 역시 그렇다”면서 “법원마저 공정하지 않으니 누구를 믿을 수 있나”면서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고 한다. 주목할 것을 이들이 단순한 우익 네티즌이 아니고 한국말도 어느 정도 배우고 구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한파라는 점이다. 나름 한국에 대한 애정 또는 애착이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싫어진다”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일본에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과거와 같이 극심한 편견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미묘한 반감과 실망, 못마땅함이 깔려있다는 징표를 보고는 한다. 올림픽에서 한국과 일본 선수가 유도시합을 할 때 한국선수가 어떤 기술을 쓴 것을 보고 “뭔가 치사하고 비열하다”면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어도 한국선수는 깔끔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않다”는 평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요새는 중국인들이 악역을 도맡아 하는 바람에 한국인들이 전면에서 바람을 맞는 일은 줄었어도 역시 뿌리 깊은 편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먼 옛날 일이지만 외무부 출입기자 시절 일본 외무성의 초청으로 열흘 넘어 일본 각지를 돌아본 일이 있다. 하코네의 한 호텔에서 아침 집합시간이 지나도록 한국 기자들이 나타나지 않자 젊은 일본인 여성가이드 2명이 나에게 “한국사람들은 항상 시간을 안 지킨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한국에 관심을 가져 일찍이 80년대에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유학 와서 한국말을 배우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국통들이었다. 또 일본 외무성의 산하기관인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 소속으로 일본정부 초청으로 방일하는 한국방문객들을 맡아 안내했다. “늦게 오는 사람한테 말하지 왜 제 시간에 나온 나한테 그러느냐”고 퉁치기는 했지만 영 찝찝했다.
오사카성에 가서는 성의 건축과 구조에 대해 한참 설명하더니 “성 주위에 호수로 둘러 방어하는 시설을 일본말로 ‘…’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뭐라고 하지요”라며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말로는 ‘해자’ 또는 ‘호’라고 하는데 한국의 성은 영주의 거처인 평지성보다는 유사시 방어시설인 산성 중심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고, 수원성에는 지금도 해자가 잘 남아있다”고 설명했더니 한국 방문객이 많았는데 아무도 답하지 못하더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지도층이란 사람들을 속으로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불상에 대한 결정은 어디까지나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부석사(신도회)의 소유권 신청을 각하하거나 기각한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임시처분을 했다는 말이다. 가령 법원이 “일본에서 도둑질해온 것이니 당장 돌려줘야 하다”고 이 단계에서 결정했다면 여론의 비난은 고사하고 중요한 문제를 소홀히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또 정식으로 원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이뤄져 법원이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더라도 그것은 1심 판결일 뿐이다. 사법 쟁송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미국의 법원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면 일본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예 수긍하거나 아니면 “별난 판사도 다 있군”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일본인들은 미국과 유럽의 백인들에게 약하니 말이다. 그런데 일본의 젊은 세대마저 한국의 사법부를 얕잡아보고 섣불리 비판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가처분 결정 하루 만에 정식 논평을 하면서 반환 요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더 가소롭다. 우리 집에서 도둑을 맞았다가 범인이 잡혀 경찰서로부터 물건을 돌려받는 데는 일정한 절차가 있고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당장 내놓으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일본인의 단기(短氣)이고, 센가쿠/ 댜오위다오 분쟁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과민반응이 아닌가 싶다.
문화재 반출 합법과 불법 있어…칠지도는 합법에 해당
일본인들이 저렇게 반응하는 것은 올해 1월 한국 고법이 야스쿠니 방화범이자 주한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졌다 체포된 중국인 류창을 일본으로 인도하지 않고 중국으로 돌려보낸 것과 다소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한국정부는 지난해 중국과 김영환씨 석방 및 한국해경 살해범을 교환하는 비밀 거래를 했고 야스쿠니 방화범에 대해서도 선처를 약속을 했다는 추측을 받고 있다. 일본 시각에서는 한국 사법부의 독립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구심을 가질 미소한 근거가 생긴 셈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우리에게 일본·중국과의 관계나 단기적 국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다. 사법부가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정부나 여론, 기업의 압력이나 청탁에 휘둘린다면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하겠으며 법치는 어떻게 유지되겠는가. 따라서 한국 사법부가 정부와 결탁해 독립성을 훼손, 굴절했다는 것은 전혀 믿지 않지만 혹시 그런 의심을 받을 구석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밝혀내 바로잡을? 일이다.
이제 일본이 한국에서 훔쳐간 불상을 다시 훔쳐오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 아니면 정당하지는 않지만 추인해야 하는 일인지, 정당하지도 않고 용인해서도 안 될 일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세상 일이 그렇듯이 기본 원칙과는 별도로, 일의 전후를 상세히 살펴보고 이치를 따져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규범과 판단기준이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가 있을 때 그 이유와 방법, 경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우선 합법과 불법으로 나눌 수 있다. 합법적인 것은 예를 들어 파리 콩코르드광장에 있는 룩소르 오벨리스크를 들 수 있다. 1829년 이집트의 지배자 무하마드 알리 파샤가 프랑스에 선물한 것이다. 그는 알바니아 출신 외국인이었지만 오토만제국의 이집트총독으로 합법적 권력자였기에 파리 오벨리스크 역시 합법적 이전이라고 봐야 한다.
이 밖에 로마와 이스탄불, 영국 등지로 옮겨진 19개 오벨리스크는 모두 약탈로 이뤄진 것이라 불법적인 것이다. 다만 점유의 역사가 오래 되면 일종의 연고권이 생기고 원상회복의 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을 할 여지가 생긴다.
일본의 나라현 텐리시 이소노카미 신궁에 있는 백제의 칠지도 역시 비슷한 경우다. 명문(銘文)을 보고서는 하사품인지 헌상품인지 확실히 판별할 길이 없지만 선의의 선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칠지도를 둘러싸고 상징성 논란은 있어도 소유권 분쟁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합법적 문화재 이전은 증여 외에도 매매와 양도, 대여, 보관 등 여러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대영박물관의 엘긴 마블스는 고대 그리스의 거장 피디아스의 작품으로 파르테논 신전 등 아크로폴리스의 건물에서 떼어낸 조각들이다. 제7대 엘긴백작이었던 토마스 브루스가 오토만제국주재 영국대사로 있던 18세기 초 석고 복제품을 만들겠다고 허가를 받고서는 대리석 조각들을 모두 뜯어내 런던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것은 전시 약탈이라기보다 일종의 사기 절도라 하겠다.
비슷하면서 다른 경우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훔쳐간 외규장각 도서들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정부는 강화도에 불법적인 제국주의 침공을 했고 그나마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조선군에게 잇달아 패해 도주하는 길에 의궤 등 340여 책을 절취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전시 약탈이나 전리품이라 간주할 수 없고 단순 장물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외규장각 도사의 반환은 약탈품 반환이 아니라 장물 회수가 맞다.
1988년 외무부 출입기자 때 프랑스 주재 한우석 대사가 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했다가 기자들과 만났다. 당시 한-프랑스 간 특별한 현안이 없던 시기라 질문이 별로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훔쳐간 진귀 도서를 반환하라고 요구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뒤에서 젊은 기자들이 “저 양반 또 이상한 소리 한다”고 수근덕대는 소리가 들렸다.
한 대사는 머리 회전이 빨라서 “반환요구 전에 뭐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먼저 조사를 해보겠다”고 임기응변을 하는 것이었다. 훨씬 전인 1975년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던 고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내서 한국에서 일부 보도도 됐다는데 1988년 당시는 기자나 대사나 외규장각이란 이름을 몰랐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의궤들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잘못을 다른 잘못으로 바로잡으려는 잘못
몇 년 뒤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가 다시 떠올랐을 때 정치부 차장이었던 터라 외무부 출입기자에게 상세히 보도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하루는 출입기자가 와서 “담당 구주국장이 사정하기를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테니 <한겨레>가 당분간 조용히 해주면 좋겠다고 사정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받는 것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지. 의궤들이 유일본도 아니고 학술적 가치가 특별한 것도 아니라지? 무식한 불란서군이 서고에 불을 지르고, 어람용이라서 좋은 종이에 구리 못을 박아 장정이 훌륭하고 울긋불긋하게 채색된 의궤들만 들고 갔다는 거 아닌가. 그거 돌려받으면 좋고, 돌려주지 않으면 불란서 세금으로 보관하니까 그것도 괜찮아. 단지 문화국민은 기억이 길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날 때마다 불란서에 과거 훔쳐간 책 돌려달라고 하면 걔네들 콧대를 누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문화재 자체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화재는 문화가 담긴 물건에 불과하고 문화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요새 ‘내 코가 석자’인 일본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을 너무 내세울 것도 없다. 근거가 있건 없건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한테 야코죽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불상의 경우 왜구들이 약탈해갔을 가능성이 99.9%이지만 우리에게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저쪽에 불상들을 합법적으로 취득했다는 증거가 남아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그렇다면 문화재 약탈이라는 과거의 잘못을 오늘날 다시 절도행위라는 잘못으로 바로잡으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가 문제의 핵심이다. 기껏해야 이것은 앙갚음이고 또 하나의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이미 두 번의 잘못에다 범죄를 용인함으로써 세 번째의 잘못을 새로 보태서는 안 될 일이다.
해마다 삼일절과 광복절이 되면 민족정신을 내세우면서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일도 좀 줄였으면 한다. 과거의 ’일본 때리기‘는 연유와 효용이 꽤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문제와 위협이 되는 것은 북한과, 북한을 받쳐주는 중국 정권이다. 중국도 무조건 싫어하거나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과 최대한 가깝게 지내고 경제문화교류를 열심히 하되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말을 하고 꾸짖을 것은 꾸짖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반일감정의 역사적 유래는 자명하다. 그러나 진보 지식인들이 냉전과 분단구도의 주범으로서 한미일 삼각체제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일본에 대해 다분히 감정적 혐오를 품는 데는 1970년대 리영희 교수의 저작도 한 몫을 했다고 본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주로 중국 혁명의 재평가와 베트남전의 새로운 인식을 주제로 한 것이지만 ‘일본 자위대가 다시 부산에 상륙하는 악몽의 시나리오’를 거듭 언급하고 있다고 기억한다.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고 재무장할 것이라고 말이 많은 현 시점에서도 일본이 한국에게 군사적 위협이 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중국의 굴기와 함께 일본은 미국에 더욱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등을 돌려세우는 일은 결정적 자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일본의 20년 침체가 더 길어질 전망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의 국운과 기세는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통일한국은 고사하고 대한민국만으로도 감당이 쉽지 않은 상황도 상정해 봐야 할 시점이다.
과거 우리가 일본에 대해 까닭 있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렸다면 앞으로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불안과 초조에 쫓길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본은 민주체제를 유지하는 한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거나 침공할 의지도, 능력도 없고, 이것은 극우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바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가 일본과 일본사람들을 거둬주고 품어주는 대인의 금도(襟度)를 갖는 것이 어떨까. 절대 농담이 아니다. 그럴 날이 아마도 곧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