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슈퍼파워 각축이 세계인의 삶 좌우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인가
아시아 각국 앞에 놓일 3가지 미래선택 시나리오

‘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지고 중국이 뜰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아시아 시대는 이미 온 것일까. 아니라면 언제 올 것인가. 아시아의 경계는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되어야 아시아의 시대라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잠시 역사를 돌이켜 봐야 한다.

청나라 말 사상가 양계초(梁啓超)는 순환사관을 설파했다. 세계는 천하태평과 천하대란의 시대를 오가며, 그 사이에 소강(小康)의 시대가 끼어든다는 것이다. 천하태평시대는 제국이 지배하고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가 위세를 떨친다. 천하대란의 시대에는 분열과 무질서가 만연하고 개인주의와 가족주의가 대두한다. 또 소강의 시대에는 민족국가가 주류를 이루고 대륙단위 지역주의(regionalism)가 등장한다. 21세기를 소강에서 천하태평으로 넘어가는 시대로 본다면 아시아공동체(Common House of Asia)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기원전 1000년부터 5세기 서로마제국 멸망까지 약 1천500년 동안 서구가 동양을 약간 앞서거나 서로 대등했다면 6세기 후반 수나라(581∼618)의 남북통일부터 약 1000년간은 동양이 서양보다 경제·사회·군사적으로 우세한 시기였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대항해시대가 막을 연 15세기 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는, 이른바 ‘서세동점’ 현상이 간헐적으로 조짐을 보이긴 했지만, 유럽과 중국이 대략 비슷한 수준의 발전단계에 머물렀다. (이언 모리스, Why the West Rules― For Now, 2011)

2등이 1등 추월한 경우 없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시진핑과 중국의 꿈’이란 커버 스토리에서 1793년 영국의 사절 매카트니가 청나라 건륭제를 처음 알현했을 때 중국은 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고, 건륭제는 영국왕 조지3세에게 보낸 답서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만든 물건은 필요 없다”며 교역요청을 일축했다고 되짚었다.

이 때만 해도 중국이 서양에 대해 강한 우월감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구의 상승세와 동서양 간의 형세역전이 뚜렷해진 것은 1760∼1830년대 산업혁명이 가장 큰 계기였다. 산업혁명 결과로 유럽의 공업생산력은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군사력도 근대화됐다. 1840년 아편전쟁은 중국의 무력함과 후진성을 백일하에 폭로했다. 이후 100년 동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부분 나라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서구의 세계패권은 영미 지배체제(Anglo-American Dominance)와 역사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 이후 많은 나라가 유럽과 지중해, 중동지역 패권을 두고 경쟁했지만 글로벌 차원의 제국은 19세기 영국이 최초였고, 20세기 미국이 바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신성로마제국이나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강국은 물론 사라센제국, 오스만 투르크 등 중동의 강자들도 지역패권을 다퉜거나 한동안 그것을 차지한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는 말 그대로 ‘영국에 의한 평화’였고 1815년 나폴레옹전쟁 종언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꼭 100년 동안 지속됐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쟁 중간의 시기는 영미 공동지배체제 또는 일종의 과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월터 러셀 미드, God and Gold, 2008)

두 세기 동안 영국과 미국은 국지전에서 이기지 못한 일(한국전과 베트남전)은 있을망정 큰 전쟁에서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다. 냉전시대 미국과 맞섰던 소련은 해체됐고 1980년대 미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했던 일본은 20년 불황 끝에 미국의 고분고분한 의존국(client state)으로 돌아왔다.

역사적으로 2등 하던 경쟁국가가 1등하던 패권국가를 추격해 따라잡고 패권을 빼앗은 일은 거의 없다. 대개 패권국가 언저리에서 뜻하지 않은 제3세력이 다크호스로 나타나 ‘개와 고양이 싸움’을 지켜보다 ‘뼈다귀’를 냉큼 가로채는 사례가 더 많았다. 이 경우 2등 국가는 1등 국가의 견제 때문에 주저앉고 1등 국가는 그 비용과 과잉확장 때문에 몰락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재정위기와 지난 10년간 중동개입 실패는 미국이 ‘세계 경찰관’ 역할을 끝내도록 재촉하는 신호가 됐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무역과 재정 ‘쌍둥이 적자,’ 소비위주 경제와 낮은 저축률, 사회 인프라 노후와 국방비 부담, 미국 내 유대세력과 이익집단의 과도한 영향력, 빈부격차 확대와 히스패닉 인구의 급증에 따른 ‘2중사회’ 위험성, 폭력·범죄 만연, 총기규제 실패로 상징되는 사회통제 붕괴 등 미국의 약점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 가쁘다.

중국의 슈퍼파워 등극 과연 이뤄질까

그렇다면 다음 세계패권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러시아와 일본은 경쟁대열에서 탈락했고, 유럽연합(EU)은 그럴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러시아는 에너지부문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너무 큰 데다 지도층 부패와 ‘조폭정권’의 폐해가 심각하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부작용 속에 디지털시대에 대한 적응이 부족하고 역사문제와 국제사회 안에서의 위상에 대한 국민적 각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날이 곧 올 것이란 예측은 이제 진부할 정도가 됐다. 중국이 2012년 일본 국내총생산(GDP)에서 앞선 데 이어 몇 년 안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귀에 익은 내용이다. 미국 <애틀랜틱>지는 ‘2050년의 세계’라는 기사에서 골드만삭스 추계를 인용해 2050년 세계 주요국가의 경제규모(GDP)가 중국-미국-인도 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각국 GDP를 서기 1년부터 2030년까지 추계한 앵거스 매디슨은 계량경제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연 영국 경제학자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00년의 대부분 기간 중 중국과 인도가 세계 최대의 경제였다. 그는 또 산업혁명 이전 전통 농업경제에서는 인구규모가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고 지적했다. 서기 1년부터 1500년경까지는 인도가 중국보다 인구가 더 많았고 GDP 점유율도 높았다. 매디슨 추계에 따르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중국 GDP의 점유율은 서기 1년 25%, 1000년 22%, 1500년 24%, 1600년 29%, 1700년 21%, 1820년 32%, 1870년 18%, 1900년 11%, 1913년 9%, 1940년 6%, 1970년이 최저치로 5%였다. 이후 중국은 1978년 5%, 2003년 15%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2030년에는 23%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매디슨만이 아니라 월드뱅크, IMF, OECD 등 국제기구와 거의 모든 민간경제연구소가 2017~2030년 사이 중국의 GDP가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IMF는 2018년 한국의 1인당 GDP(PPP기준)가 일본을 처음으로 앞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 중국은 과연 순조롭게 수퍼파워가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어찌 보면 그 답이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삶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운명은 21세기 전 세계 절대 다수 사람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낙관론자들은 중국이 성장속도가 점차 둔화되긴 하겠지만 조만간 미국을 경제규모에서 앞서는 것은 물론 정치·군사·문화적으로도 위상을 높여 결국 미국의 패권을 빼앗아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첫째, 중국의 발전이 임계물량을 형성했고 성장에 탄력이 붙었다는 점 둘째, 중국 공산당이 개발 후유증과 사회불안을 최소화하면서 조정역할을 비교적 잘 하고 있다는 점 셋째, 수출과 건설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내수시장 확대와 노동력 질 향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잡은 중국은 앞으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면서 IT를 포함한 제조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가 경제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중국은 현재 연안 공업지역뿐 아니라 내륙에서도 인력 품귀현상이 시작되고 임금인상과 함께 고용 부대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아시아의 동남아와 남아시아, 유럽의 동유럽과 러시아,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의 대체생산기지로 성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너무 빨리 속내 드러낸 중국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첫째, 수확체감법칙에 따른 성장세의 둔화는 누구나 실감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른바 ‘빠바오(八保)’라는 연 성장률 8%선을 지키지 못하게 된 현실이 바로 중국 개발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증좌로 꼽힌다. 둘째,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윈난성 쿤밍 석유제품공장 건설 반대시위에서 보듯 환경·교육·복지 욕구가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봇물’이 터질 수 있다. 중국 인민은 급속성장 혜택을 미소하나마 누리면서 애국주의를 견지하고 있지만 빈부격차와 성장과실의 독점에 대해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셋째, 중국 정부가 성급하게 외교적 고자세를 취하고 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20년이 갓 지났을 뿐이다. 한 국가의 산업화는 전인미답의 길을 간 영국을 제외하고 보통 한 세대 30년에 걸쳐 일어난다고 한다. 덩샤오핑 집권부터 따지면 이제 한 세대가 흘렀고 산업화 제2세대가 막 시작한 시점이다. 그런데 중국 지도부는 일본과의 대립은 물론 주변의 동남아 국가들과 영토분쟁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30년의 평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칼을 너무 빨리 뽑았고 속내를 섣불리 드러내고 말았다.

소련의 ‘제2 깡깡이’로 종속적 입장을 감수했을 뿐 아니라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중국을 서방 중심의 국제 무역체제 편입을 허락하고 세계 최대의 시장을 열어준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물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지만, 중국이 세계의 생산기지가 되도록 투자와 기술지원을 한 것도 미국이었다. 앞서 말한 30년의 평화를 벌려면 굴욕을 참고, 순순한 자세로 미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과의 무한대결은 현명치 않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에 유화정책으로 시종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다. 중국이 수퍼파워로 발돋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는 미국이 중국이 마냥 크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추단이 당연히 보태져야 한다. 미국은 사실 소련 해체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만심과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9·11에 자극을 받은 미국은 부시 대통령과 유대계 뉴라이트의 공모로 전쟁을 벌임으로써 귀중한 10년을 허비했고 중국의 강대국화를 초기에 저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미국은 중국을 제2의 강대국으로 인정할 뿐 아니라 때로 대등한 지위와 처우를 용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외교정책의 기본은 원래 ‘말은 부드럽게 하고 몽둥이는 큰 걸 갖고 다닌다(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는 것이다. 이 말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00년 편지에 쓴 뒤 연설에 자주 언급함으로써 유명해졌는데, 외교에서 조심스런 태도와 불가침 정책을 견지하되 필요하면 폭력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벨벳 장갑을 낀 철권‘과 비슷한 표현이다.

미국은 중동에 개입하는 동안 중국에 대해 협력관계 유지 정책을 우선시해왔다. 최근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정책’으로 선회하는 것은 중국을 봉쇄하는 올가미를 조여가겠다는 화전양면책 선언이다. 이 정책의 대상은 일본·호주·한국 등 전통 우방은 물론 중국의 라이벌 인도와 필리핀·베트남·태국·버마·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를 망라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미국과의 대화는 물론 관계정상화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북-중 관계가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이쯤 되면 중국이 뜬다는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아시아의 시대가 맞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내 생각에는 적어도 2050년까지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권력이동(power shift)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국은 앞서 열거한 약점이 있을뿐더러 미국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중국이 세계패권을 쥘 수 없는 최대 장애물은 그들이 세계인의 마음을 살 만한 사상·이념·종교 체계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소프트파워가 부족한 것이다.

로마제국이 법치주의와 기독교를 내놓았다면 영국과 미국은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에 내놓을 것이 마땅치 않다. 공산주의는 아예 내밀 것이 못되고 공자의 인의사상도 유교문화권을 벗어난 나라에서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 밖의 제자백가의 사상을 서둘러 가공한다 해도 세계인들에게 문화적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지난해 말 펴낸 ‘글로벌 트렌드 2030’는 미-중관계가 세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양자관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세계는 미국이나 중국, 또는 어떤 나라도 패권을 차지하지 못하는 ‘G-0’의 다극화 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수퍼파워 지위는 계속 약화되지만 이를 대체할 나라가 떠오르지는 않는 상태를 말한다. 한편 1750년 이래 지속된 서양(구미)의 우세는 역전되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가 전면으로 부상한다.

아시아 판도변화 3개 시나리오

내 생각에는 적어도 앞으로 30년 정도는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 상태로나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중국은 국제사회 2인자로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1세기 미-중관계는 기본적으로 협력과 견제, 상승과 길항이 동시에, 때로는 번갈아 나타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해 긴장이 있는 경쟁관계이지만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관계보다는 훨씬 부드러울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과 중국이 최대의 교역 파트너이고 글로벌 경제 테두리 안에서 인적·물적 교류가 이뤄지는 한 봉쇄정책이나 적대정책은 별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국가들에 3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중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대륙세력을 이루고 미국과 일본, 한국이 해양세력을 형성해 대륙을 견제하는 구도다. 이 경우 인도의 향방이 중요하게 되는데 인도경제가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인도 GDP가 중국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면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망에 가담할 공산이 큰 반면 인도가 중국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한다면 남아시아 국가들을 엮어 독자적 세력권을 구축하려고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앞서의 대륙-해양세력 구도가 온존하지만 한국이 중국 쪽에 가깝게 서는 그림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은 정도로 올라가고 중국의 군사력이 강화돼서 미국이 서태평양을 포기하고 괌 등지의 군사기지에서도 철수할 때에나 상정할 수 있다. 또 중국의 적극적 도움으로 통일한국이 탄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나 가정할 수 있는 구도다. 즉 중국의 강세와 미국의 퇴출, 한반도 통일이라는 큰 사건들이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야만 가능한 선택지이기 때문에 현실적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셋째, 한국 주도로 중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구도다. 이 경우 미국과 러시아, 인도 등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대를 덜기 위해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을 택할 수도 있고 더 느슨한 형태의 단일통화가 아니라 공동통화를 채택한 경제공동체나 국경을 개방하는 사회문화공동체로 시작할 수도 있다. 좀 더 긴밀한 연방국가는 가령 30년의 충분한 이행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실천해 가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이 경우 한국이 공동체 구성에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공동체 내부에서 균형자 노릇을 할 필요도 있다. 이런 구상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나 이승만 대통령의 ‘한반도 완충지대론’과도 일맥상통할 여지가 있다.

현재 아시아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60%이지만 소득은 30%(일본 제외)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거칠게 표현해, 세계의 절반 이상은 아시아고 아시아의 근 절반은 중국이라 해도 된다. 뒤집어 보면 아시아의 절반 이상은 중국이 아니고, 중국과 인도를 모두 빼버린다 해도 아시아인은 아직 많다. 아시아 지역도 동아시아와 동남아가 다가 아니고 서남아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와 중동아시아도 있다. 더 크게는 러시아와 호주·뉴질랜드 등 대양주 국가들과 태평양 도서국가들도 아시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 사람들이 21세기를 온전한 아시아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화려한 수사보다 조그만 실천이 중요하다. 가장 앞장세워야 할 실천은 ‘아시아인이 아시아인들을 돕는 것(Asians for Asians)’이 아닌가 싶다. 캄보디아, 네팔 등 동남아 곳곳에 유럽과 미국에서 온 NGO 활동가들이 득실댄다. 심성이 특히 고와서인지, 취직이 힘들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 봉사전문가들이 하나의 커리어 패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도 정치사회의식으로 충만한 NGO 활동가들이 늘어가고 있다. 21세기에는 구미 사람들이 아시아에 와서 봉사활동을 할 필요가 없도록 아시아 사람들이 나서서 아시아 사람들을 돕기로 하자. 그리고 몇 십 년이 지난 뒤 유럽과 북미 국가들이 어려워지면 우리가 가서 그들을 돌보도록 하자. 지난 200년 동안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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