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북침’은 ‘북한의 침략’?
박 대통령의 이해와 오해
박근혜 대통령이 고교생 다수의 ‘북침’ 응답에 대해 발끈한 것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첫째, 상식에 어긋나는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의심을 품기는커녕 그 내용을 그대로 믿고 개탄하는 발언을 했다면 대통령의 지적 이해력과 판단력에 대해 약간의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이 하는 발언은 곧바로 국민에게 전달되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발언을 공개하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확인하고 여과하는 절차와 과정이 없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수행체제 및 의사결정과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고, 청와대 보좌진의 역할과 기능에 심각한 한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셋째, 언론기사를 요약, 보고하는 비서관실에서 이처럼 부실한 조사에 바탕을 둔 엉터리 기사에 대해 액면대로 받아들인 것은 스스로 수준 이하임을 입증한 것이고, 아무리 실수라 해도 기본 실력이 부족한 담당 비서관 및 실무진은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며 해당 수석비서관도 행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발언은 다음과 같다.
“얼마 전 언론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한탄스럽게도 학생들의 약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한다는 것은 교육현장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이번 한번이 아니라 매년 여론조사에서 6ㆍ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잘 모르겠다는 학생들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역사는 민족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정말 문제가 심각하고,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가져야 할 기본 가치와 애국심을 흔들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의 희생을 왜곡시키는 것으로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고교생들이 사실관계를 잘못 아는 게 아니라 남침과 북침의 의미가 헷갈려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북침을 남한이 북한을 선제공격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북한의 침략’의 줄임말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고교생 70%가?6ㆍ25를 북침으로 알아… 박근혜 대통령의 한탄”이라는 언론보도를 언급한 후 “근데 각하, 이건 역사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국어교육의 문제일 겁니다. ‘북침’을 애들은 ‘북한의 침략’이라는 뜻으로 아는 거죠”라고 풀이했다는 보도다.
문제의 조사는 <서울신문>과 진학사가 공동으로 전국의 고등학생 506명을 대상으로 6월4∼6일 실시한 ‘2013년 청소년 역사인식’으로 지난 11일 <서울신문>에 보도됐다. 그러나 <서울신문>과 진학사는 모두 여론조사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는 언론사와 입시전문 잡지사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506명이라는 조사대상자의 수는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보기에는 표본 크기가 작고, 표본추출의 무작위성도 미심쩍다. 흔히 잡지사에서 독자를 대상으로 편의적으로 시행하는 비과학적 조사의 하나라는 인상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설문의 표현이 분명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질문은 “한국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였다. 이 질문은 우선 6·25전쟁을 한국전쟁이라고 불렀다는 점에서부터 잘못됐다. 1980년대 이전에는 보통 ‘6·25동란’ 또는 ‘6·25사변’이란 말을 썼다. 1974년 ‘각종 기념일에 대한 규정’에서 ‘6·25사변일’이란 이름이 나왔고, 2004년 교육부가 ‘6·25전쟁’을 교과서 편수용어로 확정한 이후 6·25전쟁이 공식 명칭이 됐다.
고교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서 공식 명칭을 쓰지 않고 외국의 시각에서 부르는 속칭 ‘한국전쟁’을 썼다는 것을 보면 질문지가 얼마나 허술하게 작성됐는가를 알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이라고 하면 곧 6·25전쟁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한국 땅에서 한국인들이 벌인 전쟁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예컨대 구한말 ‘의병전쟁’도 한국전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또 한국을 광의로 해석하면 역사상의 여러 전쟁이 한국전쟁이라 불릴 소지가 있다.
북침 또는 남침의 표현도 주체가 생략되면 정 반대의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이번의 경우 ‘남한에 의한 북침’인지 ‘북한의 침략’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무작정 물으니 당연히 의미의 혼동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응답자가 무엇을 모른다기보다 질문자가 부주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은 보도에서 “북침과 남침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헷갈리거나 전쟁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지만 이것은 질문을 잘못한 변명과 학생들이 잘 모를 것이라는 추측성 강변에 불과하다. 기사는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은 모두 한국전쟁의 발발 형태를 ‘남침’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전제했지만 교과서 저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북한의 남침’이라고 명확히 표현했을 것이 당연하다.
일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역성을 들면서 “박 대통령은 일단 이런 부분을 혼동한다는 것 자체가 교육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멋대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이런 변명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서울신문>과 진학사, 박 대통령이 오해한 것을 왜 무고한 조사 대상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일까 한심스럽다.
박 대통령이 이런 편견과 고집을 갖고 외교를 펼친다면 혹시 미국의 1급 두뇌출신 오바마 대통령이나 중국의 태자당 가운데 인재로 꼽힌 시진핑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럴싸한 답을 할 것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만의 하나라도 박 대통령이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믿는다. 이번 일은 오해이자 착각이라는 점에서 단순 실수라고 보고 싶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차제에 제발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자신의 머리가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서 모든 사안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좀 더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잘 아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고, 주변에도 대통령의 말에 눌려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로 말할 사람들을 두어야 한다.
고교생의 69%는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전교조 등의 영향을 받아 대한민국의 북침을 믿는 것 아니냐고 물을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고교생은 놔두고 전교조 가입 교사들에게 물어보라. 6·25전쟁이 북침이냐고. 내 추측에는 그렇게 답할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15%를 넘을 수 없다. 그나마 그 중 다수가 북침이 아니라 ‘남침 유도’라고 답할 것이다. 어떤 조사에서도 엉뚱한 답변이 15%는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교생 69%가 6·25전쟁이 남한의 북침이라고 대답했다는 조사결과를 액면대로 믿는다면 자신의 현실인식에 대해 재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개탄할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은 우리 사회를 걱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