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하시모토의 위안부 ‘삽질’

아침에 미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둘째딸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대학시절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다녀온 적이 있는 딸과는 평소 전화로 시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언한 것을 보고 발끈해서 내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번 써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아울러 내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소 유보적이고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차제에 아빠에게 너무 늦기 전에 올바른 길로 돌아오라는 경고를 보낼 요량인 것으로 여겨졌다. 20대 중반인 딸은 일본의 장래에 비관적 전망을 갖고 있고 한국의 지나친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일본군 성노예를 비롯한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첨예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오사카 시장이자 일본 중의원 제3당인 일본유신회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세계는 한국 등의 선전효과 탓에 일본이 강간국가라고, 국가가 나서서 위안부를 납치해 종사하게 했다고 비난하는데, 2007년 1차 아베내각 각의결정에 따르면 그런 증거가 없다고 보고 있으니 이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게도 전쟁 책임이 있으므로 뜻하지 않게 위안부가 된 분의 비극에 대해서는 그 심정을 깊이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위안부는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성욕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제도였고 다른 나라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위안부가 아니라도 윤락업은 필요하다”면서 “오키나와 미군 지휘관에게 일본 윤락시설을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으나 쓴 웃음만 돌아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미국·일본 젊은이들의 트위터 커뮤니티에서 격론이 벌어진 것은 오타쿠에 대한 책을 쓴 일본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가 “전쟁은 원래 나쁜 것이고, 남자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 돼있다”며 하시모토 발언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이어서 아티스트 무라카미 타케시가 “하시모토 발언에 한국에서 과잉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박대통령의 대변인이 성추행으로 파면당하고 일본과 호주, 미국, 카나다에서 한국인 매춘부가 격증하고 있다”는 한 정치인의 말을 리트윗하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하시모토는 전 도쿄시장 이시하라 신타로라는 극우 정치인과 손을 잡은 터이기에 그의 발언에 큰 무게가 실리기 어려운 점이 있다. 아베 총리처럼 보수 본류의 외투를 입고 극우 발언을 해야 그나마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지 이시하라와 같은 극단주의자와 어울리다 보면 신빙성을 잃고 진지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하시모토 발언의 문면만 보면 일리가 있다 여겨질지 모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딸은 트위터리언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증거인멸의 가능성은 없는가? 둘째, 자발적이라 해도 기만당해 들어간 경우는? 셋째, 부모친척에게 팔린 경우는 ‘자원’인가? 넷째, 설사 원해서 들어갔다 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공창시설’을 유지해서 종군시킨 것이 사실이 아닌가? 다섯째, 위안소가 도를 넘는 인권침해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정부가 조사해보니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것은 자국 조사를 절대시하는 것인데 과연 옳은 것일까.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스스로 제소해서 재판을 받으면 어떨까. 아니면 유엔 인권이사위원회에 전면적 조사를 의뢰하는 것은 어떤가.

둘째,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관련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국가와 군이 점령국 여성 등을 강제로 동원해 성 착취와 집단폭력을 조직적으로 자행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위안부나 공창이 필요한가의 문제는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강제성의 문제는 별개라 할 수 있다. 개인이 저질러도 범죄인데 국가와 군이 직간접적으로 이런 강제행위를 지시, 교사, 방조했다면 심각성이 더할 수밖에 없다.

셋째, 더욱 근본으로 돌아가, 일본의 죄행을 전체적인 맥락으로 살펴야 할 것은 아닌가. 일본은 조선 침략과정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능욕하는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더욱이 일본제국 정부의 명령과 사주에 의한 범죄였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이 밝혀진 이상 일본 국왕과 정부가 이 사건을 적시해 한국에 공식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시모토는 전쟁과 위안부에 국한해서 역사를 논변할 것이 아니라 먼저 일본이 지난 시대 저지른 파렴치한 범죄를 통렬히 성찰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내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여태껏 유보적인 태도를 가졌던 이유를 밝혀야 할 것 같다.

첫째, 왜 우리 쪽에 기록이 없는가. 과거 우리는 위안부를 ‘정신대’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고, 근로정신대와 종군위안부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발족한 이래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지만 일부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만 있을 뿐 신빙성이 더욱 강한 일제시대의 객관적 증거를 밝혀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정신대든 위안부든 강제로 끌고 간 것이라면 여기에 저항하다 죽거나 다친 아버지나 오라버니가 있을 법도 하다. 또는 항거를 하다 난동 혐의로 입건되거나 구금되거나 아니면 어떤 형태로라도 항의를 제기한 사례가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서증을 찾아낸 것을 못 들어봤다. 신빙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본인 증언이나 인우보증 외에 기록상의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정부문서 등 증거를 인멸했다 하더라도 한국에 일제 재판기록이나 신문기사, 개인 기록 등은 다 남아있다. 정대협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수요시위’나 일본 총리실 앞에 가서 정신대 할머니들을 드러눕게 하는 데 주력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숨어있을 기록을 발굴하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가 모두 기본적인 문헌자료 연구가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는 것은 우리 학계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둘째, 너무 오래 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은 1592년이고 정유재란이 마무리된 것은 1599년이었다. 그런데 조선은 1607년 침략국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다. 채 10년이 지니지 않은 불과 8년 만에 불구대천의 원수 일본과 복교한 것이다. 물론 이런 조기 수교에는 일본의 강청과 재침 협박 등 압력, 조선의 전쟁 폐해와 국력 소진 등과 함께 여진족 건주위의 흥기라는 만주 정세의 급변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또 조선이 전쟁 배상을 요구할 형편도 못 되었기에 왕릉도굴범 송환과 피로인 쇄환이라는 약소한 조건으로 국교회복을 허용한 것이다.

살인사건도 15년 시효가 있는데, 근 70년 전에 일어난 대학살사건도 아닌 위안부문제에 대해 언제까지 문제 제기를 할 것인가 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물론 위안부는 제도적 성노예라는 인권침해문제이기 때문에 시효가 있을 수 없다는 반론과 함께 한일협정의 테두리 안에서 개별적 사죄와 배상이 없었고 피해 당사자들의 고령 때문에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사정도 고려할 대상이다.

셋째, 일본만의 문제인가. 6·25 이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미군을 상대로 한 매매춘은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매춘산업은 성행하고 있고, 매춘 불법화 이후에도 집창촌에만 압력이 가해졌을 뿐 풍선효과 때문에 주택가와 오피스텔, 해외 등지로 퍼져가고 있다. 물론 국가가 나서서 여성들에게 매매춘을 강제하거나 매춘산업을 운영, 조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 매춘산업은 국가의 개입이라는 측면을 제외하고 군 위안소와 궁극적으로 성격이 다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위안부 문제는 일제의 수많은 죄악 중의 하나로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점에서 인권침해가 더욱 심중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과거사에 대해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한다는 것은 문화민족의 기본이기 때문에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중시하고 연구와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럼에도 끝없이 일본의 후세에게 감정적 비난을 되풀이하고 시위와 집회를 통해 문제 제기를 거듭하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반성하는 계기를 주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차라리 역사적 사실을 엄정하게 밝혀내고 잘 기록함으로써 우리 후대에 교훈을 남기는 한편 일본의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성찰하고 시정하도록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정신대 운동가들은 지금 바로 그런 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답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항의집회나 시위보다는 조금 더 온건하고 점잖은 방도를 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과 진상만이 아니다. 또 일본의 일부 정치인과 지식인 등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지 않고 있다는 점도 궁극적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지적 정직성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눈감지 않고 직시하는 용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 때로는 편견과 오해, 그릇된 견해를 일정한 한계 안에서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은 지식인의 표상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 입장이 통상적인 관점과 좀 다른 것이 사실이다. 딸이 “아빠 의견에 수긍할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성이고 나이든 세대라서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모자란다”고 하이킥을 날려도 속으로 “그런 것은 아닌데…”하면서 금세 수긍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위안부 문제의 인권론적 주장에 두 손을 들고 결국 딸에게 동조할 수밖에 없잖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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