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서남표와 김종훈: 글로벌 인재를 얻는 법

서남표 KAIST 총장이 23일 학위수여식을 끝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당선자가 지난 17일 3차 인선발표에서 미레창조과학부 장관으로 김종훈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최고전략책임자를 내정한 지 이틀 만에 김 장관후보자가 미국으로부터 들어왔다. 두 사람의 경우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을 역수입해서 주요 직위를 맡기는 일종의 ‘역두뇌유출(a reverse brain drain)’이란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서남표 총장은 지난 2006년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 국적을 유지한 채 고국에 돌아와 KAIST 총장에 취임했고 2010년 재임했다. 그러나 임기를 2년 앞둔 지난해 7월 기자회견을 자청해 올해 2월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서 총장은 그동안 ‘글로벌 Top 10 대학’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교수 정년보장심사(Tenure) 강화, 영어강의 전면실시, 무시험입학제, 성적부진학생에 대한 수업료 징구 등의 개혁조치를 도입했다.

서 총장은 2007년 재미사업가 박병준씨의 1000만 달러 기부를 시작으로 지난해 9월의 135억원 규모의 재산 기탁에 이르기까지 대학발전기금 모금에 능력을 발휘했다. 또 그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온라인자동차(OLEV)와 모바일 하버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좋은 평가를 받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KAIST는 2012년 세계 대학평가의 양대 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더 타임스 고등교육부록(THES)의 세계 대학순위에 각각 63위와 68위에 랭크됐다. 국내 대학 가운데 최고일 뿐 아니라 2006년 ‘QS-THE’순위에서 198위였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그러나 2011년 KAIST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한 것을 계기로 내연하고 있던 학내 불만이 터져 나왔다. 상당수 학생들은 ‘징벌적 수업료’에 반대했고 노장파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교수협의회 등은 테뉴어 강화에 대한 불평을 숨기고 영어강의를 문제 삼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영입된 서 총장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초기에는 보수언론과 더불어 ‘서남표식 개혁’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학내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정부와 오명 이사장은 입장을 바꾸어 서 총장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맥락 속에서 서남표 총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그가 능력과 의지를 모두 갖췄고 총장으로서 실적을 올렸다고 평가한다. 또 개인적인 비리나 하자도 거의 없다고 보았다. 언젠가 KAIST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자 KBS에서 서 총장을 반대하는 교수협의회장과 중립적 학외 인사를 불러 토론을 벌였던 적이 있다. 서 총장은 출연을 거부했기 때문에 반대파가 일방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리였다. 두 시간 가까이 들어본 결과 서 총장에게 심각하게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서 총장은 그러나 소통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한 조직의 장으로 6년간 재임하면서 논란에 휘말리고 수모를 당했는데 학내에서 그를 지지 성원하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지 않은 것은 한국식 표현으로 ‘부덕의 소치’가 될 수도 있다. 또 정부가 입장을 바꾼 탓이기는 하나 ‘서남표 개혁’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지지 기반으로 삼아 활발하게 반론을 펼치지도 못했다.

어찌 보면 서 총장이 모략이나 세력 싸움에 능하지 않고 학내외에 자기편을 만들어 조직 내의 분열과 사회적 논쟁에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한 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서 총장을 보면 조선시대 유생의 아집·독선과 미국적 개인주의가 기묘하게 결합돼 있다는 느낌도 지울 길 없다는 평이 있다. 자신의 선의와 도덕성을 확신하기 때문에 ‘고집불통’ 이미지에서 벗어나 남의 말에 선뜻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KAIST 교수협의회 등 학내 ‘터줏대감’들은 서 총장 이전에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총장을 부도덕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몰아 쫓아낸 전력이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자리를 내줄 생각이 전혀 없는 ‘소 기득권 세력’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행히 서 총장의 후임자로 강성모 전 UC Mercid대 총장은 학자로서의 업적보다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에 더 능한 사람으로 보인다. 총장 반대파도 3연속 투쟁은 명분이 없기 때문에 학내 소통과 화합의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김종훈 미래부 장관내정자는 어떨 것인가. 김 장관내정자에 대한 예단을 금물이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길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겪을 문제점에 대한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김 내정자는 과학자라기보다는 엔지니어고 기업가다. 그가 개발했다는 무선 장치를 위한 비동기 전송방식 스위치는 1998년 루슨트 테크놀로지사가 10억 달러를 투입해 회사를 사들인 것으로 보아 상당한 기술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그러나 지나친 과대평가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IT업계에서는 사업전망이 좋은 기술을 대상으로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창업회사를 인수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따라서 비싼 돈에 회사를 팔았다는 것은 기술과 마케팅 측면에서 종합적인 능력을 보인 것이고, 기술 자체가 탁월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 ‘안철수 백신이 대단하고, 안철수는 천재다“라고 말하기에 이런 반문을 한 적이 있다. “안철수 백신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왜 전 세계에서 그 제품을 쓰고 있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서남표 총장이 18살 고2 때 미국으로 갔다면 김종훈 내정자는 열네 살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 서 총장이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순탄하게 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김 내정자는 험난한 자수성가의 도정을 거쳤다. 그런 까닭인지 김 내정자는 사업 파트너 및 관계자들과의 원활한 관계에 중점을 뒀고 뛰어난 수완을 보여줬다.

루슨트가 유리시스템스를 10억 달러에 사들였지만 그 기술로 얼마를 벌었는지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기에 회사를 판 김 내정자가 루슨트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또 벨연구소 사장 자리를 꿰찼고 상당 기간 후에도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최고전략책임자라는 모호한 직책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미국에 관한 한 ‘사내 정치’의 달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김 내정자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서 적임자라는 느낌이 있다. 미래부 장관은 어차피 자신이 연구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여러 집단을 연결 소통하고 대통령과 국민에게 홍보 설득하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래창조과학부가 발전전략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세우고 실적을 올릴 수 있을까 걱정도 한구석 없지 않다.

지금 야권에서는 김 내정자가 장관 내정 직전에야 한국 국적을 회복한 것과 미 CIA와 연관된 전력을 문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국적문제는 우리나라가 글로벌경제에 편입되면서 넘어야 할 제도적, 심리적 장벽이다. 주로 농촌의 상황이지만 며느리를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나라에서 IT담당 장관을 바로 직전까지 외국인이었던 사람을 기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대미 종속외교’나 주한미군처럼 외교·국방 등 국가안보를 외국에 ‘아웃소싱’하는 것보다는 낫다.

CIA 연관문제도 형식논리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우리 정부의 고위 관리가 미국 등 외국정부에 정보를 빼돌리고 공군 참모총장 출신이 외국무기 중개상을 위해 정보 수집을 하는 등 비애국적 행위가 항다반사인데 김종훈씨의 커넥션은 이미 공개돼 있기에 오히려 문제가 적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그리고 미국 시민이 미국 정보부에 협조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닌데 그런 사람을 우리가 영입할 것인가 여부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제대로 판단하면 될 일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서남표 총장이나 김종훈 장관내정자처럼 외국인으로서 또는 국적회복자로서 고국에 기여하려고 할 때 그들 당사자가 명심할 사안이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났고 그동안 한국에 드나들었더라도 국외자의 자격과 신분이었기 때문에 직접적 이해의 충돌은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출신 미국이민자들이 흔히 한국을 떠날 때 갖고 있는 생각과 태도를 몇 십 년 뒤에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경우가 많듯이 한국 귀국자들도 자신들이 떠나온 한국에 대해 과거의 모습에 인식수준이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경험이 글로벌 규범이고 한국의 관행과 문화는 모두 버려야 할 것으로 간주하는 일이 많은 듯하다.

물론 한국은 아직도 성숙한 사회로 가는 도상에 있고 개혁·개선해야 할 사항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귀국자가 독선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면 한국사회 구성원들과 융합할 가능성이 낮고, 그 이전에 그들의 생각이나 방안이 꼭 옳은 것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를 과거 농촌봉사 가는 대학생 같은 태도를 버리고 자신이 고국에 가르쳐줄 것만큼 배울 것도 많다는 겸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우리가 해외 인재를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에 사는 우리들의 사회와 문화다. 우리가 국가로서 살아남고 발전하려면 외국 국적의 한국동포만이 아니라 우리와 인종적, 문화적으로 거리가 있는 외국인들까지 두루 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손님이 들끓는 집안을 잘 되게 마련이고, 힘 있는 부잣집에는 식객이 많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에서 춘추시대에는 봉건제후국들은 자국의 엘리트에 의존했지만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앞 다투어 외국 출신의 객경(客卿)을 영입해 중용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 세계의 주요 국가로 비상하려며 글로벌 인재라는 날개가 긴요하다. 뛰어난 객경이 많을수록 나라는 번창하고, 문호가 개방돼 있을수록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고 싶을 것이다. 한국은 모든 사람들이 오고 싶은 나라, 살고 싶은 나라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우선 지나친 민족주의를 자제하고 최소한 그것을 외국인에게 내세우지는 말아야 한다. 자신이 있는 사람은 태도가 겸손하고 마음이 열려있듯이 좋은 나라는 남에게 부질없는 시비를 걸지 않고 모든 일을 점잖게 처리한다. 우리에게 열등감이 없는데 예컨대 일본인들에게 낯을 붉힐 일이 과연 있을까. 일본인 일부가 ‘타케시마의 날’을 지정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닌다고 독도가 그들의 땅이 되는가? 그것은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는 어린애 짓일 뿐이다. 우리도 쓸데없이 흥분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 사는 친형과 자주 대화를 하는 편이고 많이 배우고 있다. 그 형님이 서남표 총장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한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서 총장이 이번에 미국으로 돌아오면 다시는 한국에 안 간다고 했다는데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다시 한국을 방문하도록 모셔야 해. 첫째, KAIST 발전에 기여한 공을 한국에서 인정하는 것이 예의고, 둘째, 돌아선 마음을 풀어줘야 그 사람한테 더 얻어낼 것이 있고, 셋째, 옛날에 명마를 구하려고 명마 말가죽에 천금을 치렀다는 고사처럼 한국이 인재를 대접한다는 소문이 나야 천하의 인재가 몰려들 것 아닌가 말이야.”

서남표 총장이 돌아가 KAIST에 대한 책을 쓰도록 잠시 놔뒀다가 오명 KAIST이사회 의장의 후임으로 초빙하면 어떨까 싶다. 그것이 아니면 미래창조과학부의 자문위원장도 좋다. 만약 그것도 힘들다면 KAIST와 한국이 진정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또한 한국을 사랑하는 글로벌 인재를 획득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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