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박근혜식 영어와 윤창중씨의 추행의혹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4월1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첫 미국방문은 무엇보다 윤창중 씨의 성추행 사건으로 기억되게 생겼다. 그러나 윤 대변인이 성추행 의혹 때문에 미국 현지에서 전격 경질되기 전까지는 박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보여준 영어 실력이 화제였다.

운창중 씨의 성추행 의혹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공직자가 외국에 나가 나라 망신시킨 일이 그동안 적잖았지만 이보다 더 심한 건은 없었다. 한국 언론이야 이 사건으로 벌써 떠들썩하지만 미국 언론은 아직 조용한 상태다. 하지만 미국 언론도 일단 사태의 전말을 알게 되면 한국을 비아냥거리는 의도로 기사를 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이와 비슷한 경우로 과거에 이스라엘 현직 대통령이 강간혐의로 사임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기는 하다.

모셰 카차프 전 이스라엘 대통령은 2011년 3월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98년 관광상으로 재직하면서 부하 여직원을 두 차례 성폭행했고,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대통령에 재임하면서 대통령실의 여직원 1명을 성추행 및 성희롱하고 다른 1명을 성희롱했다는 죄목이었다. 이스라엘은 현직 대통령이 강간범으로 단죄된 최초의 나라가 됐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 앞의 평등’이 입증된 것이라고 애써 어깨를 폈다.

윤창중 씨의 소행은 미국 200년 넘는 외교사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희대의 사건이고 우리로서도 조선시대 500년이 넘게 중국에 사신을 수없이 파견했어도 이런 추문은 없었다. 선조 때 역관 홍순언이 북경에서 청루에 갔다가 남경분조 호부시랑의 딸이 아버지가 투옥되는 바람에 팔려온 사정을 듣고 은 3000량을 주어 풀려나게 했다가 훗날 그 여인이 예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되는 바람에 조선과 명나라 사이 수백 년간의 외교현안이었던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미담은 있었다. 석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병부시랑으로 재직해 명군 파병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윤창중 씨의 인격문제에 대해서는 아시아엔(The AsiaN)을 포함한 많은 매체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윤창중 씨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입으로 그럴싸한 말을 지껄이면서 밀실에서는 온갖 추잡한 짓을 일삼는 파렴치한 ‘꼰대’들은 너무 많아서 아저씨 세대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예외적일 지경이다. 특히 고위 직책에 있는 자가 특수권력관계의 위력을 동원해 어린 인턴을 성추행 한 것은 악질적 범죄로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윤창중 씨의 성추행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리고 이런 주장들은 경험상 대부분 사실이지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씨가 돌연 귀국한 것은 음주 운전하던 사람이 사고를 내자 현장에서 막무가내 도망친 것과 비슷하다. 미국에서의 처벌을 피해 도피했다면 송환해야 하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한국 법정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피해자가 합의 따위는 거부한 채 끝까지 처벌을 요구해야 하고 검찰도 권력의 눈치는 아랑곳하지 말고 기소를 해야 한다. 윤씨가 형사처벌을 받는 날 한국의 사법제도와 사회관행은 한 단계 더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하원 본회장에서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한 뒤 연설 내용보다 박 대통령의 영어가 화제가 됐다. 가장 먼저 일부 보수언론이 ‘미국대학 졸업생 수준(<조선일보>)’ ‘점수로 따지면 95점(<TV조선> 김창준 전 미 하원의원)’ 등 박 대통령의 영어를 칭찬하고 나서자 대다수 언론들이 아부와 찬양의 밴드왜건에 동승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가수 싸이의 영어가 박 대통령보다 낫지만 한국말로 노래한다고 영어 연설을 탓했다가 호된 타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영어를 잘 한다는 평가는 일부 언론과 TV 출연자들만의 말만이 아니다. 각종 인터넷매체와 소셜 미디어에 표출된 네티즌들의 의견은 절대 다수가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문제로 국정원 댓글알바가 동원될 리도 없으니 이건 자발적 평가라고 봐야 한다. 한데 이러한 평가가 꼭 절대적이 아니라고 볼 만한 근거가 없지 않다.

첫째, 우리나라 언론의 평가는 다분히 정치적 고려가 개입한 점이 있다. 기자들과 전문가들이 후한 평점을 준 것은 과거 사례와 비교한 상대적 평가인 데다 장점만을 부각시킨 아첨이라는 것이다. 웬만한 전문가라면 굳이 대통령의 영어에 흠을 잡을 생각은 없었을 것이 당연하다. 또 박 대통령이 영어연설을 그렇게 잘했다면 왜 미국의 언론에서는 한 줄이라도 그런 말이 안 나왔을까? 과문이어선지 미국 언론 보도에서 그런 대목을 보지 못했는데, 그들은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둘째, 대부분 네티즌들은 나름대로 주관이 뚜렷하고 영어 공부를 꽤 해 본 사람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영어 연설을 평가할 만큼 영어를 많이 익힌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더 많은 다수는 자신의 영어 수준보다 높다고 생각하면 ‘영어 잘 한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영어에 관한 한 네티즌 여론이 최고의 판정관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셋째, 영어는 말을 잘하는 것(Articulation)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한데 이번 연설은 농담도 없고 지루했다. 특히 추상적인 논점이 많아 듣는 사람으로서는 좀 고역이라는 느낌이었다. 기립박수가 몇 차례고, 박수가 몇 십번이라는 카운트는 손님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어는 한국의 통상적인 대졸자의 영어 수준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미국사회나 국제정치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에 비기면 탁월하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박근혜식 영어의 특징은 단어 하나하나가 매우 정확하다는 것이다. 정확하다 못해 한두 군데 실수를 빼놓고는 거의 사전적 발음과 액센트를 선보였다. 문제는 문장 안에서 구와 절을 모아 적당히 끊는 요령과, 문장 중간에서 쉴 때마다 끝을 올리는 억양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느낌을 줬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영어는 한마디씩은 정확하지만 흐름을 타지 못한 딱딱한 교과서식 ‘토막 영어’가 되고 말았다. 전체적으로, 박 대통령의 영어는 ‘괜찮은 영어(Passable English)’ 수준을 지나 ‘내놓을 만한 영어(Presentable English)’ 수준 이상에 올랐다. 하지만 ’뛰어난 영어(Excellent English)’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좋은 영어(Good English)’ 수준에는 거의 이르렀다고 보인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미 의회연설을 격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유튜브를 통해 본 내 귀에 그렇게 대단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박사 출신다운 영어임에는 틀림없지만 엄청난 고품격 표현이나 감동의 명연설이라 하기에는 우리말 연설에서도 엿보였던 노인의 말투가 오히려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이 박사의 연설이 역대 한국 대통령의 영어연설 가운데 수준이 가장 높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총회 영어연설은 기대 수준이 낮아서였는지 합격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어는 뛰어난 내용을 말하면서도 발음이 안 좋아서 ‘형편없는 영어(Poor English)’를 벗어나지 못했다. 성인이 된 다음 거의 독학으로 익힌 것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1998년 미 ABC방송 시사프로 ’나이트라인‘에서 인터뷰했을 때는 김 대통령이 영어를 하고 있음에도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을 붙일 정도였다. 이런 영어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 세계로부터 광범위한 존경과 친애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영어보다 내용에 있어 아쉬운 점이 많았다. 맨 처음 미 의회의 한국전 참전용사 4명을 일으켜 세우고 3대가 한국에서 근무한 군인가족을 지명해 사의를 표한 것은 미 의회 연설에서 늘 있는 일이라 새로울 것은 없었으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괜찮았다. 다음에 한국의 번영에 미국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고 언급한 것도 미 의원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적절한 말이었다.

그러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나 ‘DMZ 평화지대 제안’은 미 의원들에게 추상적이고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한국 국민이 우리가 듣기에도 말만 화려하고 장엄할 뿐 내실이 없는 구상이고 제안이라는 감이 있는데 미국 정치인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북한의 위협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한국은 미국 덕분으로 여기까지 왔으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동맹국이 되겠다는 약속,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제1 동맹국’이 되겠다는 포부, 한국이 미국인의 일자리 창출에 공헌하겠다는 다짐‘ 등이다.

물론 한국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세상 만사는 주고받는 것이고,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오해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돕고 있다는 것인데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 한국이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고 있는 점을 조목조목 적시하면서 설득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나 전문직 비자 쿼터의 확대 등은 사실 상대적으로 소소한 이익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문제를 굳이 의회연설에서 거론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최근 인물로 고품격 영어를 구사한 인물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을 들 수 있다. 아난에 비하면 반기문 사무총장의 영어는 ‘삼위일체’ 구식 영어라 ‘떠듬떠듬 영어(Halting English)’는 물론 면했지만 영어를 저렇게 해도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구나 하는 희망을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주고 있다. 2차대전시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필가이지만 웅변가로도 유명했다. 그의 연설은 뛰어난 내용과 수사는 물론 낮은 톤으로 고래가 노래하듯 천연덕스러운 흐름이 특징이다. 고저장단과 말 사이의 휴지(Pause)의 활용, 자연스러운 어절의 구사, 클라이맥스에서 포효하는 듯 절제하는 기법으로 가히 한 편의 연극이라 할 만 했다.

민주당 논평 등 일각에서 미 의회 연설도 우리말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글로벌시대에 걸맞지 않은 편향된 시각이 아닌가 싶다. 의회 연설을 포함해 스피치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한국의 지도자로서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의 의견을 폭넓게 포용하며, 공동의 위협에 꿋꿋이 대처하고 미래의 번영을 활짝 열어갈 비전을 제시하면 족한 것이다. 영어를 쓰느냐 우리말을 쓰느냐는 소통의 문제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에 가서 중국어로 연설하고 일본에 가면 일본어로 연설하는 것은 외국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지 원칙적으로 부적절한 일이 전혀 아니다. 자신이 있는 사람은 남의 경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능숙하지 못해도 외국어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그들이 기꺼워 할 일이다.

One Response to [이병효 칼럼] 박근혜식 영어와 윤창중씨의 추행의혹

  1. walker August 8, 2013 at 4:18 pm

    yoon is bad guy.. foolish, sexy bat..
    at that time. park president read a board.
    박근혜는2013년 미국 방문 연설시 보드판에 나타나는 글을 보고 읽은
    것입니다.
    외웠을까? 오바마에게 잘 보이려고 3일간 외웠을까? 한번 박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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