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중국이 시베리아를 차지하는 날

러시아 영토 시베리아가 중국 땅으로 넘어갈 날이 과연 올까. 어느 책에선가 샤를 드골이 “먼 훗날 중국이 시베리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지난 1950년대에 말했다고 읽은 것은 1970년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었다. 예측은 종종 틀리지만 예언은 때로 맞는다고 했던가. 제정 러시아가 우랄산맥을 넘어 수세기에 걸쳐 끝없는 동진을 한 끝에 정복한 광대한 시베리아 땅을 종내 중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언은 상상을 자극했다.

1950∼1960년대라면 중국이 아마 역사상 경제력으로는 거의 최저점에 다다른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또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마오쩌둥의 중국에 대해 큰 형님 노릇하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였던 때다. 따라서 소련과 중국의 국력 차이가 너무 커서 중국이 시베리아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기발했다.

드골의 거시적 역사관은 내 어린 마음에 하나의 충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상 깊었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한 연구’ 일부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계기를 주기도 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도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진 관심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코노미스트>의 지난 기사(2010. 4. 29.)를 읽다가 “시베리아는 어쨌건 중국에게 조만간 넘어갈 것”이란 구절을 우연히 발견했다. ‘유럽지도 다시 그리기(Redrawing the map)’라는 제목으로 유럽 각국의 현재 국경선만이 아니라 지리적 위치를 아예 바꾸는, 일종의 판타지 기사였다. 폴란드와 벨로루시가 서쪽으로 옮겨간 자리에 우크라이나가 들어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차지하면 중국이 시베리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는 반농담성 코멘트가 따라붙었다.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 영국의 엘리트 가운데 귀족 출신자들은 군 장교 복무를 거쳐 연고지의 하원의원선거에 나섬으로써 정치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윈스턴 처칠이 하나의 예다. 중류계급의 지식인들 가운데 우수한 분자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내의 칼리지를 나와 각기 외교관, 저널리스트, 대학교수의 길을 걷거나 이들 경력을 차례로 거치는 경우가 흔했다.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 졸업 후 외무성과 <더 타임스>를 거쳐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역사를 가르친 E. H. 카의 이력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영국의 엘리트들은 정치와 관료, 금융과 언론, 대학과 연구소, 국제기구와 시민단체 등에 포진해 있다. 특히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같은 고급 언론매체는 영국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이자 ‘국제정세의 풍향계’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그들의 지나치는 논평 한 마디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먼저, 중국의 인구와 러시아의 인구는 비교가 안 된다. 러시아 극동 및 동부 시베리아에는 약 600만 명이 살고 있는 데 비해 중국의 동북3성(만주)은 약 9000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와 중국의 경제개발은 날개를 달고 있는데 러시아 경제는 1990년대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지만 제조업의 부진으로 가스·석유 등 부존자원에 대한 의존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극동지방과 동부 시베리아는 러시아 여타 지방과의 교통통신망의 부족 때문에 경제적 고립을 면치 못하고, 중국의 교역투자 영향권으로 편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으로, 아제르바이잔 카자흐대학의 리처드 루소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까지 중국인과의 국제결혼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러시아 여자들은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술을 덜 먹는 중국 남자들을 남편으로 맞는 데 대해 덜 꺼려하게 됐다고 한다.

중국의 시베리아 진입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중국인의 시베리아 이주는 1998∼2001년 3만 5000명이었고 2002년 한해에만 2만 7200명이 영주권을 얻었다는 통계에서 드러나듯 크게 늘어나고 있다. 앞서 인용한 루소는 최근의 인구 유입추세가 계속될 경우 이르면 2025년부터 ‘중국의 시베리아’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은 한 극동지방 개발회의에서 “영토 상실의 위협이 심각하기 때문에 산업생산수준을 제고하고 노동자 유입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충돌은 현재로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중국은 일본과 센카쿠/댜오위다오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고 남중국해에서도 ‘3샤’ 분쟁을 겪고 있다. 이런 표면적 대립의 배경에는 물론 점차 높아지는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 후 첫 번째 해외방문국으로 러시아를 택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군사무기기술에 관한 한 아직 중국보다 한 수 위고, 핵탄두 보유만 약 1만기에 이르러 중국의 약 240기를 크게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진부한 말처럼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1960년대의 중·소분쟁을 앞으로 또 한 번 되풀이하지 말란 법은 없다. 지난 2010년 6월말과 7월초의 10일간 러시아군은 중국의 침공을 가상한 합동군사연습 ‘보스톡 2010’을 벌였다. 중국군 관계자들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된 워게임에는 극동군구와 시베리아군구, 우랄-볼가군구의 2만 병력과 전투기 70대, 태평양함대 군함 30척과 육전대 병력 등이 참가했다. 러시아가 중국의 잠재적 군사위협을 강하게 의식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고신호를 보내려 한다는 의미다.

러시아 입장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략은 여러 가지가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 등 서방진영과 손을 잡는 것이 가장 극단적 대안이고 일본과 경제안보관계를 심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다. 현재 사할린의 천연가스를 일본에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고 시베리아 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일본과 한국에 공급하는 방안은 오랫동안 논의돼 왔다.

그러나 일본과의 북방 4개도서 문제라는 영토분쟁 때문에 과연 우호관계를 넘어선 준동맹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반면 한국은 러시아에게 자연스러운 파트너이고, 특히 통일한국과 러시아는 호혜적인 윈-윈관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중·러관계에서 시간은 중국 편이고, 결국은 중국의 영향력이 러시아의 관할권을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는 두 나라의 경제산업이나 군사력의 격차라는 측면보다 러시아의 인구구조상 취약점이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끝없는 팽창주의의 과거를 갖고 있다면 중국은 북방 유목민족이 지배하던 시기를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고립주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은 한나라와 당나라 수준의 공세적 대외 정책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결국은 중국이 기존의 남방 팽창정책을 택하느냐, 아니면 북방으로 창끝을 돌리느냐에 따라 러시아와의 관계와 시베리아정책이 좌우될 전망이다.

20세기 양차 세계대전까지의 제국주의시대와는 달리 21세기 이후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외국을 침공해서 영토를 편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형식적 관할권을 유지하도록 허용하면서 실질적으로 경제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비용대비 효용이 높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중국이 시베리아를 사실상 지배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굳이 영토를 할양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러시아의 극동 및 시베리아 지방의 인구가 최소한의 지속가능한 수준을 밑돌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과거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한 것도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뤄진 일이지 당시 러시아가 자신의 장기적 국익을 모를 정도로 멍청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 생전에 시베리아의 주인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한국은 한국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나름 대비책도 세워야 한다. 고등학생으로서 나는 중국이 시베리아를 차지하면 우리는 최소한 연해주를 얻어야 하고 일본도 사할린과 지시마 열도, 캄차카반도를 얻도록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제관계는 개인관계나 마찬가지로 독식과 독점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그때보다 민족주의나 팽창주의적 사고에 대해 훨씬 덜 집착하게 됐지만 비록 가상적 상황이라도 문제의식을 똑바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시베리아를 차지하는 날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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