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박대통령의 패션 센스와 참모 기용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 룸에서 한·미 정상 합동 기자회견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좀 자그마한 문제로 시작해보자. 일본의 <주간 아사히> 최신호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패션’을 혹평했다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오바마 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푸른색 코트에 검은 색 바지를 받쳐 입었다.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돈 코니시(본명 코니시 요시유키)는 <주간 아사히>에 실린 기사에서 “젊게, 화사하게 보이려는 의도였지만, 윗도리 하나로 물거품이 됐다”고 비평했다. 그는 “분명 블루 계열의 색은 화사하다. 그러나 잘 보면 큰 실수가 있는데, 바로 이 윗도리가 재킷이 아닌 코트라는 점이다”라면서 “중요한 회담에서는 꼭 재킷을 입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요새 일본과 사이가 좀 껄끄러운 것은 잠시 제쳐놓기로 하자. 어떤 말이든 그 내용을 먼저 봐야지 화자가 누구인가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돈 코니시의 평가에 공감한다. 사실 회담 직후에 사진을 보고 내 둘째 형님은 이런 평을 했다. “박 대통령은 아마 일부러 평소 스타일대로 옷깃 세우고 바지를 입은 것 같은데 파란 색이 좋아 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품위가 살아 보이지 않는군”이라면서 “저런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는 재킷을 입어야 하는 건데…”라고 덧붙였다.

나는 박 대통령이 입은 코트의 색깔 이름도 정확히 모른다. 가장 가까운 추측이 코발트 블루인데 보나마나 틀렸을 듯하다. 또 코트인지, 롱재킷인지 이름도 잘 모른다.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던 것인데 일본인 디자이너가 찝고 나선 것을 보고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하구나’하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자리에서는 아래위가 같은 색깔인 수트(suit), 특히 검정이나 회색 등 짙은 계열의 수트를 입는 편이 좋았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뭔가 심각한 일이 있거나 단호한 대처가 필요할 때 바지를 입는 바람에 기자들은 박 의원이 바지 차림으로 국회에 나오면 ‘전투복을 입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그런 규칙을 적용했을 리는 없지만 박 대통령 나름대로 중요한 자리에 어떤 옷을 입을지 꽤 고심했을 것 같다.

‘Dress for Success’라는 남성들의 옷차림에 대한 책을 보면 정치가의 옷은 남녀를 불문하고 좀 보수적인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백악관 여기자들은 기자회견 때 대통령의 지명을 받기 위해 일부러 빨간 옷을 즐겨 입지만 나라의 책임을 맡은 대통령이나 수상의 직위에 오른 여성은 옷차림을 갖고 자기주장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보수적이고 무난한 옷으로 패션이 화제가 되지 않는 편이 좋지만 동시에 보기에 좋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스포츠 코트나 블레이저라고 불리는 ‘콤비’를 입거나 김정일 식의 점퍼 차림으로 나타났다면 외빈에게 실례를 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또 영국이나 독일의 여성 수상이 드레스를 입고 회담장에 나오지는 않는다. 정치 지도자나 세계적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중요한 자리에서는 남녀 모두 비즈니스 수트를 입는다. 지난번 숭례문 복구 의식 당시 박 대통령이 치마저고리만이 아니라 여름 두루마기를 갖춰 입었어야 예법과 격식에 맞는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의 옷차림이 예법에서 어긋났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제대로 차려입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이었다. 문제는 ‘옷이 날개’라서 돋보이게 해주기커녕 가진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교회 집사가 전도하러 나선 것처럼 보였다. 조금 큰 흑색 가방만 들었으면 영락없이 그런 모습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박 대통령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일 뿐 아니라 얼굴빛이 밝고 품위가 있는 미인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양장 차림을 보면 패션 센스가 월등하게 뛰어난 것 같지는 않다. 한복 차림은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훨씬 더 잘 소화하지만 쓸데없이 자주 갈아입는 경향이 있다. 가수나 배우도 아닌데 식전과 자리에 따라 하루 한번 갈아입는 정도면 충분하다. 박 대통령은 양장에서는 지나치게 절제하고 한복에서는 약간 탐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은 ‘의상 코디’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일국의 지도자는 옷차림도 매우 중요하다. 패션 코디네이터는 원래의 미모를 살려주고 경우와 자리에 걸맞게 옷을 골라줘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썩 뛰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만의 하나 박 대통령이 코디를 두지 않고 있거나, 혹시 있더라도 직접 옷을 고르고 있다면 당장 시정해야 한다. 무슨 일이건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서 믿고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중요한 국사에 관련해 참모진을 발탁하고 활용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이치다.

이제 조금 더 중요한 문제로 넘어가 보자. 윤창중 성추행 사건은 박 대통령 참모 기용의 최대 실패라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물론 윤창중이라는 개인의 일탈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실제 지금까지 저질러진 범죄 의혹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라고 봐야 한다. 첫째는 윤창중 씨의 성추행이고, 둘째는 윤씨의 도주와 이남기 홍보수석 등의 방조 및 사법방해, 셋째는 청와대 비서실 등의 사건 은폐 및 축소다.

윤씨의 성추행은 윤씨에게 법적 책임이 있고 직속상관인 이남기 홍보수석에게 지휘책임이 있다. 윤씨 도피의 방조 및 사법방해는 이홍기 수석의 법적·정치적 책임이고 허태열 비서실장의 지휘책임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비서실의 은폐 및 축소는 누구의 책임인가. 당연히 허태열 수석의 법적 책임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휘책임이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절감하고 있다는 기색이 아직까지 전혀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며 윤씨의 인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윤씨의 인격에 대해서는 많은 언론이 문제 제기를 했고, 그의 평판에 대해 조금만 알아봤으면 언젠가 이런 종류의 사고를 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었다. 숱한 부정적 기사와 의견을 무시하고 대변인 임명을 강행한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이었다.

박 대통령은 “전문성을 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한번 맡으면 어떻겠느냐 해서 그런대로 절차를 밟았는데도 엉뚱한 결과가 나와서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윤 전 대변인이) 그런 인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배신감도 표출했다. ‘어떻겠냐고 해서’라는 표현으로 윤창중씨를 자신이 직접 발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책임을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잘못된 추천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일부 젊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심한 야유를 보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여느 정치인과 달리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제까지 이미지를 쌓아왔다. 또 무언가 잘못됐을 때 책임 전가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런 태도를 취할까. 박 대통령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숨어있던 모습이 드러난 것인가? 내 생각에는 박 대통령이 수 십 년 동안 오매불망하던 자리에 드디어 오르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종의 권력 호르몬이 머릿속에서 분비되는 바람에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 아닌가 추측해 본다.

사람의 신체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라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검은 머리가 사형집행 전날 하룻밤 사이에 하얗게 셌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처럼 갑자기 크나큰 정신적 자극이 주어지면 급격한 신체 및 심리 변화가 오는 경우가 흔하다. 박 대통령도 이런 심적 변화를 겪고 있는데 문제는 주변에 믿고 상의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국회에 계실 때는 말씀 수도 적었는데 대통령이 되신 이후에는 말씀도 많아지신 것 같고…”라고 한 것은 질문의 형식을 빌린 통렬한 비판이다. 윤씨 성추행 사건이 터지고 박 대통령이 인사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라고 지시하고 공직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처방이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 유감이다.

윤창중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윤씨 자신이나 그의 부모 또는 성장환경이 아니라 박 대통령에게 지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면 박 대통령의 앞날은 밝지 못하다. 자신의 사람 보는 눈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고 인사 검증시스템이나 공직기강, 감찰을 탓하는 것은 어쭙잖은 핑계에 불과하다.

조금 곁가지 문제이지만, 대통령 순방에 수행하는 청와대 비서관·대변인에게 왜 여성인턴 보조인력을 붙여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여러 사람이 지적한 바 있다. 청와대 사람들은 미국에 가서는 자기 길도 못 찾는 얼간이들이란 말인가. 또 주미 한국문화원 관계자들이 사건 보고를 받고 피해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사건 무마와 축소에 급급했던 것도 공직자 이전에 사회인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폐습과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성이 없는 청와대 비서실장 이하 참모진과 주미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공무수행에 자격미달이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 걱정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언론인 출신 대변인이 사고를 친 것에 놀라서 그나마 몇 되지 않는 비관료 출신 비서관들을 내치거나 불신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각에 말 잘 듣고 골치 썩이지 않는 관료출신들을 중용했는데 이런 경향이 더 심해져서 편향에 이르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일단 관료조직의 장이 되고 나면 그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충성을 다하는가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국회 공무원과 행정부 공무원을 짧게나마 직접 경험해 봤다. 훨씬 더 긴 시간을 기자로서 지냈지만 밖에서는 알기 힘들었던 공직사회, 즉 관료조직의 내부를 잠깐이라도 살펴볼 기회였다. 내가 느낀 것은 ‘개인은 우수해도 조직은 멍청하다’는 것이었고 ‘대다수 관료들은 승진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행할 준비가 돼있다’는 것, ‘대한민국이 잘 되려면 행정개혁과 관료 감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관료체제를 깨뜨리겠다고 공언하고 단단히 각오한 정당과 정치인들일수록 집권 후 단기간 내에 관료들의 포로가 되고 그들의 조종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흔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결국 비슷한 길을 걸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관료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큰데, 관료 의존의 경향이 윤창중 사태 때문에 더 가속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1970년 박근혜 대통령은 성심여고 3학년이었다. 내가 다닌 중앙고는 성심여고와 문예반끼리의 교류가 있었다. 문학의 밤 행사에 찬조 출연하러 온 성심여고생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들리기에 성심여고에서 박정희 대통령 딸 근혜가 1등이고, 정일권 총리 딸 성혜가 2등이라던데 맞나요?” 맞다는 대답이었다. 또 물었다. “선생들이 점수를 잘 주는 거예요, 정말 잘하는 거예요?” 진짜 공부를 잘한다는 답이었다.

박 대통령은 비교적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고 15년 이상 국회의원을 지내며 상당한 의정경험을 쌓아 어느 정도 국정운영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부모가 차례로 총탄에 희생되는 불행을 겪는 바람에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평탄하게만 살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인간의 깊은 나락까지 체험했고, 따라서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는 대통령보다 똑똑하고 우수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인사를 하면서 전문성을 강조했는데 사실은 전인적인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기획재정부 산하의 한국개발원 원장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으로 발탁하면 과거 경력관리가 어느 정도 돼있기 때문에 무난한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만 인사를 해서는 개혁이나 쇄신은커녕 새로운 생각이 들어서기 어렵다.

요점은 대통령이 내각과 참모진에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을 기용해 포진시키고 그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한 고조 유방이 한신에게 병권을 맡겨 항우와 싸우도록 하고 자신은 주로 한신을 통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청와대 비서진은 당연히 참모지만 내각이 각 부 장관들도 광의의 참모진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제 헌법에서 대통령과 의회만 선출직이고 장관은 임명직이라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해당 부처를 통할하는 지휘관 노릇을 하는 2중 기능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내각에 많이 발탁하지 않은 것은 행정부와 국회를 분리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 있지만 15년 의정경험에서 정치인들의 실력과 한계를 잘 파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에 나가봐야 인간이 된다’는 말처럼 정치인들은 그리 만만한 사람들도 아니고 각부 장관이 될 만한 경륜과 능력을 갖춘 사람도 많다. 학계에서도 정치교수 말고 유능한 인재가 많고, 언론에도 윤창중 씨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거재두량이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많은 인재가 길러졌다. 재벌기업에 끈을 대는 경영자들은 곤란하지만 비교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잘 가려 뽑으면 된다. 창업한 회사를 10억 달러에 팔아넘긴 것 외에는 큰 실적이 없는 김종훈 씨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한국 안에 왜 없겠는가. 법조계나 시민단체, 군도 잠재적 인재 공급원이다.

오바마를 보라. 1기에는 당내 경쟁후보를 실세 국무장관에 발탁했고, 2기에는 국무·국방부를 전현직 상원의원에게 맡겼다. 이밖에 주 지사와 하원의원, 시장, 기업인 중에서도 장관과 참모를 기용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의 B급 내각, B급 참모진을 다 갈아치울 각오로 새로 출발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 출발은 이남기 수석과 허태열 비서실장의 사표 수리이고, 이는 대통령비서실의 전면 물갈이로 이어져야 한다.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search committee’를 만들어서 진 효공이 천하에서 인재를 구하듯 해야 한다. 상앙과 같은 인재가 지금 이 나라에 없다고 누가 단언할 것인가.

박 대통령의 장점은 크게 사고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인만 괜찮고 밑에서 문제를 거듭 일으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또 모범생들만 껴안고 안전운행 위주로 간다면 5년 동안 자리를 괜히 차지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대통령이 자신보다 우수한 인재를 찾아서 제 자리에 앉히는 것이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박 대통령은 대오각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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