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우리민족끼리’ 가입을 용허하라

북한은 지난 9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서울을 비롯해 남조선에 있는 모든 외국기관들과 기업들, 관광객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신변안전을 위해 사전에 대피 및 소개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린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그동안 대남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민족애와 동포의식을 강조한 것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위선적이었는가를 속속들이 드러낸 말이다. 물론 외국인들과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해외로 피난가거나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동족은 죽어도 좋고 외국인들은 살아야 한다는 발상은 어이없기만 하다. 아무리 긴장 고조를 위한 심리전 차원의 ‘언어 공세’라고는 하지만 북한은 또 한 번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을 넘은 것이다.

북한의 선전공세는 북한을 심각한 외포(畏怖)의 대상이 아니라 한낱 웃음거리로 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평양에서 동명성왕의 유적인 기린굴을 발견했다’는 보도를 영문으로 타전하면서 ‘유니콘의 소굴(unicorn lair)’이라고 자체 번역했는데 영미 신문들이 이를 받아 보도하면서 헛소리를 한다며 비웃은 것이 한 예다. 이번에는 외국인들의 신변 안전을 걱정한다고 악어의 눈물을 흘림으로써 한국 국민들로부터 실인심을 하게 생겼다.

속담에 ‘사람이 죽으려면 정을 뗀다’더니 북한이 꼭 그 꼴이다. 사실 북한은 지금이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다. 북한으로서는 장거리 미사일과 3차 핵실험에 연거푸 성공함으로써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실체적 위협’의 존재로 올라선 것은 자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대륙간탄도탄(ICBM)을 완성해서 실전 배치할 때까지가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시기이기 때문이다.?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중국이 개입하지 않고 눈감아주기로 한다면 무력사용의 적기는 앞으로의 몇 년이다. 따라서 북한은 선제공격을 당한 후에도 보복 가능할 만큼 충분한 ICBM을 확보하기 전에는 자세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하는 것이 그들로선 지혜로운 선택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은 왜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것일까. 아마 군부 지지와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이유가 가장 클 수 있지만 미 오바마행정부 2기와 한국 박근혜정부 출범에 맞춰 길들이기를 해보려는 뜻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한·미 양국의 멱살을 잡고, 흔들 수 있을 만큼 흔들다 보면 한·미 내부에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온건론이 나오게 마련이고 일단 평화협정을 맺게 되면 향후 수 십 년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타산이다. 이런 북한의 협박전략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어떤 방향이 돼야 할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북한의 폐쇄체제에 대한 공세적 반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최근 불거진 ‘우리민족끼리’ 가입자에 대한 실명 공개와 경찰 조사에 대해서도 법을 지키면서도 대범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상 권리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다. 폭력에 의한 정부전복 등을 제외하고 북한의 주장에 일부 동조했다 하더라도 원론적으로 사상과 표현 자유의 범주 안에 있는 한 사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민주사회에서는 적성국가나 불법단체라 하더라도 그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글을 읽거나 접근을 위한 회원 가입은 허용돼야 한다. 참고로, 나는 ‘우리민족끼리’에 회원가입은커녕 들어간 본 일도 없고 일말의 호기심조차 없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고 하겠지만 지난 1960년대 북한방송을 듣는 것은 큰 죄에 속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려고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북한방송이 잡힐 때가 있는데 호기심에서 듣다보면 누구한테 적발당하지 않을까 싶어 덜컥 겁을 내고는 했던 경험은 많은 이들이 한 번 쯤 겪어본 일이다. 이미 한국은 경제개발이라는 실물시장에서 북한을 제쳤고 이념과 아이디어의 시장에서도 북한의 ‘철지난 상품’은 상대가 안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북한의 주장을 백 번 들어본들 여기에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요즘 흔히 ‘종북세력’ 운운 하지만 어느 사회나 10∼15%의 소수가 기존 체제에 대해 근본적 불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과거에 북한 방송을 잠깐 들었다고 처벌하는 것이 지나친 일이었다면 지금에 와서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했다고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것은 망발에 가깝다.

고로, 불법화돼있는 ‘우리민족끼리’ 인터넷 사이트에 누가 굳이 찾아 들어가 글을 읽겠다면 이를 용허하는 것이 옳다. 또 글을 읽는 것― 이른바 ‘눈팅’을 하기 위해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면 이 또한 허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저 포르노 사이트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상황 하에서도 ‘우리 민족끼리’ 에 들어갔다거나 글을 읽었다고 해서 ‘찬양 고무’ 등 행위로 처벌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울 것은 당연하다. 옛날에도 북한 방송을 청취한 것만으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었고 북한방송에서 들은 선전내용을 남에게 옮길 때나 비로소 제재대상이었는데 지금이야 말할 것이 없다.

<한국일보>는 9일 ‘우리민족끼리’를 해킹, 회원명단을 빼낸 ‘어나니머스 코리아(Anonymous Korea)’의 정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행태가 기존의 국제 ‘어나니머스’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남조선정보원을 비롯한 괴뢰패당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좀 더 많은 자료와 증거가 있어야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정보공작의 의심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정황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접속이나 회원가입이 처벌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어나니머스 코리아의 해킹 자체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란 사실이다. 또 보수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가 회원 명단을 공개하고 마녀사냥 식의 비난을 퍼붓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가 아닐 수 없고 수사를 받아야 할 일이다. 나아가 해킹 등 불법행위에 의해 취득한 자료는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이용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차원의 문제라 하겠다. 지금은 국민 모두가 북한의 협박과 도발에 대해 냉정과 침착을 유지하면서 감연히 맞서야 할 때다. 일부 극우 보수세력과 언론이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 개발을 할 수 있었다는 근거 박약한 비난을 되풀이하거나 ‘우리민족끼리’ 가입자를 모두 ‘종북세력’으로 몰아 탄압하려 하는 것은 북한의 책동에 맞서는 우리 국민의 결의를 흐트러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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