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미국은 가라앉고 중국은 떠오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에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됐다. 구체적 의제보다 양국간 위상 재정립이란 상징성이 더 돋보이는 회담이었다. ‘G2’로 표현되는 두 나라 관계와 그에 따른 국제질서, 한국의 대처방안을 생각해보자.

흔히 미국은 가라앉고 중국이 떠오른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미디어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는 메시지다. 어떻게 보면 그런 방향의 말을 하도 듣다 보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이고 당연한 흐름이라고 받아들일 지경이 되었다.

실제로 일부 논자들은 중국이 단기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에 주목하면서 오는 2022년까지 시진핑 등 제5세대 지도부 재임기간 중 세계최대 경제로 등극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에 앞서 지난 2007년 골드먼 삭스 투자은행은 미국과 중국의 성장률이 현재의 추세를 유지한다는 가정 아래 중국의 GDP가 2027년 미국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곱절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영국의 언론인 마틴 자크스가 2009년 발간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라는 책은 지난 1979년 일본의 버블이 터지기 10년 전 일본이 미국을 능가한다는 내용의 미 하버드대 에즈라 포글 교수의 <세계 제1으로서의 일본>이란 책을 연상시킨다. 예전에 한국을 자주 드나들었던 허먼 칸이라는 미국의 미래학자도 일본이 미국을 제칠 것이라는 예측을 거듭 내놓았었다.

중국 인구가 미국 인구의 4배를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공식 환율이 아닌 구매력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단 중국이 GDP로 미국을 넘어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1980년대 전반 미국에 있을 때 나는 중국이 30년 이내에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이때의 논거는 다음 세 가지였다.

첫째, 중국은 최근세사를 제외한 모든 시대에 걸쳐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었으며, 역사는 일정 부분 되풀이 된다. 둘째, 산업혁명은 영국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에서 한 세대 30년 이내에 1차 단계를 끝냈다. 셋째, 자본주의는 자전거처럼 계속 굴러가지 않으면 넘어지는 구조인데 미국은 경제이익을 위해 북미시장을 중국에게 어느 정도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이 세계무역의 최대 흑자국가가 된 지금, 앞으로도 미증유의 발전을 계속해서 미국을 제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경제지표상 실현 가능성이 일부 있다. 그러나 의문은 중국이 과연 현재의 성장률을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경제력 외 군사력과 소프트파워 등을 종합해 살펴보면 앞으로 30~50년 안에 중국이 글로벌 강국이 되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지만 미·중 사이의 패권교체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단순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첫째 중국 내부 문제의 심각성, 둘째 고속 성장 유지 가능성의 문제점, 셋째 미국의 대응 때문이다.

중국의 양극화와 부패, 민주요구 탄압, 소수민족 억압 등 내부 모순은 급속한 경제발전 덕분에 덮어지고 있을 뿐 날로 심각성을 더하고 있고, 조만간 폭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지금까지의 고속성장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없으리라는 예측은 경제 전문가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고 있다. 역사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는 모두 일종의 성장 감속과정을 겪었고 수확 체감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중국 이미 성장목표를 하향 조정했고, 앞으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투자자들은 중국이 노동비용 및 노동력 동원의 용이성 측면에서 더 이상 비교우위를 내세우기 어렵고, 다만 부품 공급 협력사와 동종 제조업체 등이 몰려있다는 수직적, 수평적 계열화가 주된 이점이라고 한다. 이마저 앞으로 제3의 산업혁명 즉 디지털 혁명이 본격화하면 다국적 기업들이 선진국으로 사업장을 옮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응도 종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용인 내지 고취한 것은 일차적으로 자국이기주의적 세계전략과 함께 2001년 9·11 테러 이후 10년 동안의 ‘테러와의 전쟁’에 한눈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대중국 정책을 이미 바꿨다. 미국은 남중국해 분쟁에 개입하고 미군을 호주에 주둔시키는 등 군사적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같이 덩치가 큰 존재라 하루아침에 정책을 뒤집지 않지만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중국에 대해 협력보다는 견제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이 세계에서 제1인 것은 많지만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첫째 군사력, 둘째 대학교육, 셋째 농업 생산성을 손꼽을 수 있다. 미군의 군사비는 세계 1위인데 세계 군사비 총지출의 41%를 차지했고 2위 중국의 8.2%의 5배 규모다.

세계 연구대학협의체인 유니베르시타스21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고등교육 평가에 따르면 미국 대학 전체를 100.0점(1위)으로 산정했을 때 한국은 60.2점(22위), 중국은 48.3점(39위)이었다. 농업생산액은 중국(세계 생산액의 17.3%로 1위)이 미국(4.3%로 3위)을 훨씬 앞서지만 농업인구가 훨씬 적은 미국의 잉여생산 및 수출여력이 중국보다 훨씬 높다. 이밖에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고 유엔과 나토,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의 영향력도 최대한 동원해 중국을 누르려고 기도할 것이다.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 영국의 외교원칙은 유럽대륙에서 패권국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균형 정책이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프랑스에 맞서 싸우고, 보불전쟁 이후에는 독일에 대항하는 등 신흥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그 정책의 핵심이다. 미국이 영국의 세계 패권을 넘겨 받은 것도 영국이 과잉 확장을 거듭한 끝에 2차례 걸친 세계대전에서 국력을 소진한 다음에서야 이뤄진 일이다.

바꿔서 말하면 미국이 불요불급한 전쟁에 휘말려 자원과 정력을 낭비하고 피폐해지지 않는 한 패권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은 자본논리에 따라 제조업을 중국 등지로 이전하고 국제금융 및 법률서비스의 일정 부분을 영국 등지로 옮긴 것이 아킬레스의 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군사, 교육, 의료, 복지에 능력 이상의 재원을 투입해 재정적자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 약점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일 뿐 아니라 점점 더 많은 나라에 대해 제1 교역국이 돼가고 있다. 또 외환보유고에 있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 인민폐(RMB)가 국제 결제수단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족이 국내체류 외국인 가운데 최대 집단일 뿐 아니라 한국 대학에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보내온 나라가 역시 중국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비교적 순조롭게 발전해 오던 양국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사건 직후 중국이 북한쪽을 지나치게 편들면서 오만한 모습을 보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친이스라엘 정책 때문에 중동에서 반미주의를 자극했듯이 중국 정부와 <환구시보> 등 관영언론의 오만과 독선, 고압적 자세가 국민적 감정을 자극했다. 사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이후 국가적 자신감의 상승이 지나친 바람에 중국 특유의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잊어버리고, 영토문제로 주변 국가와 분쟁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싸우지 말고 이겨야 할 대상이고 결국은 통일 조국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형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은 언제까지나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다만 일본은 당분간, 아마도 30년간은 우리나라에 군사적 위협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일본이 특히 착해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일본은 내부 문제가 심각한데다 중국의 부상에 온 신경이 가 있고, 또 패권국가가 아닌 상태에서 민주체제를 유지하는 한 전쟁을 도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와 달리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통일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되는 것은 물론 통일상황이 올 때 잠재적으로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대이기도 하다.

어떤 측면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북한보다 더 신경 쓰이는 존재인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최대 관심대상이 아니다. 중국 정부 관계자와 일반 국민의 태도에는 일정한 온도 차가 있는데 어느 쪽도 한국을 치명적 위협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고, 단지 미국의 동맹국 즉 ‘앞잡이’이기 때문에 국경을 맞대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식이다. 다시 말해, 구 소련이 독일의 재통일에 대해 느끼던 공포보다는 그 정도가 훨씬 약하고, 북한의 체제생존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의 통일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한국은 중국의 핵심적 이해(대만, 동북3성 등)를 어떤 형태로든 위협하는 듯 보여서는 안 되지만 중국의 대 북한 개입 등 우리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미국과의 동맹도 이런 맥락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비굴한 자세나 투항주의적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히 중간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방안이고, 오히려 중국에게 얕보일 개연성이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국가 간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동맹관계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국가이익과 상호 필요의 소산일 뿐이다. 그러나 국익을 추구하면서 변화무쌍한 태도와 자의적인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외교와 동맹관계의 기반은 원칙과 신의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할 때 목전의 이익에 급급해서 대만을 패대기쳤던 바보짓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당시 ‘하나의 중국’이라는 수교원칙은 협상불가였지만 대만의 체면과 감정을 존중하면서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고,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으로부터도 내심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미국과 중국을 놓고 명·청 교체기의 광해군과 인조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주의할 점은 미국이 명나라고, 중국이 청나라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서둘러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 양쪽으로부터 불신을 자초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중국에 굴종적 태도를 보인다 해서 중국이 이를 덥석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오히려 중국에 떳떳한 태도로 대하고 우리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인조와 노론세력의 명분주의를 고집하자는 것이 아니고, 세상 물정 모르고 큰 소리만 치면 또 다른 ‘삼전도의 치욕’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광해군의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스스로 실력을 기르고 정정당당한 모습으로 이웃의 공감과 세계적 평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1980년대의 ‘일본 부풀리기’와 비슷한 ‘중국 띄우기’를 멈추고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