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차별금지법 반대론의 시대착오
지난 주 김한길 의원 등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민주당 의원 50명이 공동 발의했던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8년 입법화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이어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남녀 성별과 장애, 병력, 나이, 종교, 인종과 피부색, 출신 국가 및 민족, 언어, 출신 지역은 물론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상황,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던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학교 체벌 전면 금지,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 외국인 노동자 차별에 대한 감시 강화 등의 조처로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사형제 폐지나 국가보안법 철폐로 확대될 가능성은 미리 차단돼 있다. 앞으로 입법화가 이뤄진다면 법안에 포함된 성적취향,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조항 등은 국회 여야간 논의 및 협상 과정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7년 법무부에 의해 입법추진된 것이 처음이다. 당시 경제단체들은 ‘학력(학벌)’과 ‘병력(진료기록)’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면 신규 채용자의 출신 대학도 물어볼 수 없고 신체검사도 할 수 없는 등 자유로운 기업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반대했다. 보수 기독교교단들은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동성애 조장을 의미한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 바람에 법제처는 학력과 성적지향, 출신국가와 병력 등 7개 항목을 제외하고 시행명령과 이행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 등도 빼놓았지만 법안은 결국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이번에 일부 보수성향의 종교·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삼은 것은 역시 종교, 성적지향, 사상 또는 정치의견, 범죄전력 및 보호처분 등에 따른 차별을 금한다는 대목이다. 종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면 ‘설교할 때 다른 종교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는 논리부터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때문에 초중고 성교육 시간에 “동성간 성행위를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억측까지 보수 교단들은 다양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법이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큰 사회 쟁점이 되고 있는 ‘동성결혼제도’의 도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에 대한 차별 금지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종북세력’이 자유롭게 국회와 각종 공직에 진출하도록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범국민연대 등이 반대하는 근거다. 범죄전력에 대한 차별을 못하도록 하면 성폭행 전과자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어린이들이 보호받을 권리와 올바른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그들의 지적이다.
일부 보수집단의 차별금지법 반대는 대부분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시대착오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넘겼던 로마교황청은 1992년 유죄판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사과했다. 가톨릭교회는 1822년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고대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자 노아의 대홍수 이전부터 이집트 문명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돼서 성경을 불신하게 만들고 교회를 훼손할 것이라 의심했다. 여성의 참정권과 교육 받을 권리에 대해서도 19세기 대부분 기독교 교단들은 부정적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어처구니없지만 당시로선 심각하고 진지한 입장이었다.
차별금지법은 보편적 인권규범에 속하고 전 세계적 법제의 큰 흐름이다. 19세기 노예해방처럼 20세기에는 차별금지법이 대세인데 한국이 21세기에 들어서도 입법화를 늦춘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척화파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차별금지법 반대 범국민연대의 주장은 이중부정의 아집이자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만 보인다. 보수층의 항의가 쏟아진다고 입법안을 철회하는 민주당의 올곧지 못한 행태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모름지기 차별금지법의 근본정신은 ‘너희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고 ‘역사사지(易地思之)’의 지혜다.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 항목을 포함한다면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언제 동성애금지법이 있었던가?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군형법92조 계간(鷄姦)죄 처벌조항이 유일한데 이는 동성애 자체보다는 성적 폭력행위 금지라는 의미가 강한 듯하다.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금지하고 핍박하기보다 ‘관용’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싶고 동성 결혼의 경우는 차후 사회적 논의에 붙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일부 언론에서 ‘국가’와 ‘민족’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고 거두절미해 보도하자 외국인 노동자를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국가나 민족은 헌법의 보호를 받는 우리 국민 내에서 국가·민족출신에 따라 귀화인이나 결혼이민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물론 합법적인 노동허가를 받고 국내 취업한 외국인에 대해 고용과 노동조건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이 역시 ‘비합리적’ 차별을 금하는 것이지 외국인에게 무조건 똑같은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는?존중해야 할 가치이자 시대정신이지만, 무분별한 과잉보호는 곤란하다. 그 한 예로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면 29조(성에서의 차별금지)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성을 향유(享有)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 법에도 근거가 없을 듯한 ‘섹스 향유권’의 세금 지원을 명시한 것이다. 이것이 ‘장애인 위안부’를 두라는 것인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장애인에게 비아그라를 사주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보통 사람과 차별을 하지 말라면서 오히려 특권을 달라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찬성론자든 반대론자든 극단적 편향과 과잉 주장은 삼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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