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개성공단 기업에 보상해줄 일 없다
정부가 개성공단 체류인원 철수를 결정함에 따라 잔류했던 우리쪽 관리자 175명 전원이 귀환하게 됐다. 지금 시점에서 철수 결정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당부당을 평가하는 것은 이르다고 본다. 개성공단 철수 결정은 남북한이 벌이고 있는 일종의 체스게임에서 이쪽이 한 수를 둔 것에 불과한 데다 철수 자체가 곧 완전 폐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심을 끄는 것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피해보상 요구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 123개사 가운데 96개사가 남북경협보험에 가입했는데, 업체당 70억 원 한도 내에서 투자설비의 잔존가액 95%까지 받을 수 있어 전체 보험금 규모는 3,515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입주기업들은 현지 투자에 대한 보상은 물론 거래중단 피해액과 납품계약 지연손해액에 대한 ‘배상’으로 1조2,000억 원을 요구할 것이라 한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현재 입주기업들의 피해액을 조사하고 있는데 몇 조 단위가 될 것 같다”면서 “특별법을 만들어 입주기업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 언론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피해자이고, 엄청난 손해를 입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내 생각에 그들은 사실 남북한 양쪽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기업들이다. 개성공단의 기반시설은 대한민국 정부가 한전·토지공사 등 공기업을 통해 제공한 것이다. 북한은 토지를 제공한 것은 물론 이들 기업이 북한 노동력 5만3,000명을 월 평균 70달러의 저임금으로 부릴 수 있도록 해줬다.
현재 입주중인 123개 업체는 모두 노동집약적인 업종으로 주로 ‘임금차익 따먹기’에 의존해왔다. 개성공단이 출범 당시부터 북한 정책변화의 가능성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로부터의 접근 용이성과 북한 노동력의 우수성, 우리 정부의 각종 지원 등이 큰 이점으로 작용한 것 또한 명백하다.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에 입주할 때 이들 기업이 리스크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잠재적 리스크가 현실화했을 때의 책임은 우선 해당기업이 지는 것이 옳다. 개성공단이 순조롭게 운영돼서 그들이 이익을 누릴 때는 한 마디 말이 없다가 북한이 4월3일 개성공단에 통행제한을 시작한지 한 달도 안 돼서 “피해액이 몇 조 원에 이른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현 시점에서 공단이 폐쇄된 것이 아니고 북한이 설비를 몰수한 것도 아니다. 운영자금에 대한 긴급융자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공공 지원은 국민 세금을 잘못 쓰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정부의 각종 지원금은 ‘눈먼 돈’이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예컨대, 정부는 태풍이 불 때마다 내륙지방의 과수원에서 낙과 피해를 입었다고 보상해주고, 남·서해 연안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물고기가 대량 폐사했다고 거액을 지급해 왔다. 그렇다 보니, 일부 과수원과 양식장 주인들은 태풍 불기를 기다린다는 웃지 못 할 얘기도 들렸다. 농어업 경영자들은 피해를 부풀린 경우가 많았고, 피해조사를 담당한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은 “어차피 중앙정부 재원이니 후하게 쳐주자”는 식이 많았다고 한다.
천재지변이 있을 때 긴급구난과 재해지원은 정부뿐만 아니라 ‘환난상조’의 차원에서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나 일정액 이상의 재산 피해는 국민 세금으로 보상해 줄 것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가 재해보험에 가입함으로써 보장 받아야 한다. 정부는 지난 2001년 농작물재해보험을 도입해 보험료 50% 이상을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 많은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보험료 25%를 추가 지원해 농어민들은 사실상 25%만 부담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태풍만 불면 지역 출신 정치인들과 지역 언론이 앞장서고 중앙언론과 관료들이 맞장구를 쳐서 추경예산이 편성되고 거액의 피해보상이 지급되곤 한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개성공단에는 총 9,000억 원 정도가 투자됐다고 한다. 초기 투자액 5,568억 원 가운데 토지공사가 기반시설 조성에 2,676억 원을 투입한 것과 현대아산의 직간접 투자액을 제외하고 공장건물과 설비의 감가상각액을 감안하면 입주기업들의 피해액은 기껏 수천억 원을 넘는 규모가 될 수 없다. 더욱이 지난 10년 동안 입주기업 경영주들이 이득 본 것은 제쳐놓고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계약위반금과 지체상금을 물어달라고 하는 것은 물론 기회비용 손실까지 보전해 달라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분단비용이 통일비용을 능가해 왔다. 적정 규모 이상의 군사비와 군수산업, 정보기관과 대공경찰 등 직접 분단비용은 낭비가 심했다. 예컨대 국정원만의 기밀비가 수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통일비용의 효용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탈북자 2만5,000명에 대해 1인당 1억 원 이상의 국가예산이 소요되는데 이들 가운데 약 10%가 지원금을 받아 챙긴 뒤 다시 영국, 미국 등 제3국으로 ‘탈남’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탈북자 정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개성공단의 경우도 입주기업에 대해 대통령부터 각 부처는 물론 언론들이 한결 같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자의에 따라 위험요인을 계산한 끝에 투자를 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경협보험과 운영자금 융자 외의 특별한 지원은 줄 이유가 있다. 지원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세금에 의존하지 말고 그들끼리 자발적 성금을 모아 충당하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현재 국군포로 귀환자에 대해 일반 사병 출신이더라도 부사관 기준으로 지난 60년 동안 밀린 봉급을 지급하는 바람에 1인당 7억 원 이상을 준다고 한다. 국군포로 가운데 일부가 인민군에 편입돼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전력을 따지지 않으려면 ‘조창호 소위 탈북’을 앞장서 보도해 영웅화한 보수언론들이 성금 모금을 해서 지급하는 것이 어떨까.
또 법적으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나 손실에 대해 보전해 주는 배상은 일반적 의미의 보상과는 개념이 다르다. 개성공단에 관한 한 불법 또는 계약위반 행위는 북한이 저질렀지 우리 정부가 한 것은 없다. 따라서 배상을 요구하려면 북한을 상대로 할 일이지 정부에 대고 할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보스턴마라톤 폭탄테러 사건 때 테러범이 잠입한 워터타운 지역을 포위하고 출입을 통제한 FBI와 보스턴 경찰에 주민이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쓸데없는 온정을 베풀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