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 칼럼] ‘비혼모’ 안도 미키

일본의 세계적 피겨스케이트 선수 안도 미키(26)가 엄마가 됐다고 한다. 요새처럼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자식이 귀한 세상에 귀엽고 예쁜 딸을 낳았다니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일이 한국에서까지?화제가 된 것은 안도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도 미키는 7월1일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임신 사실을 알았고 올 4월 몸무게 3.35㎏의 딸을 순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일부 후속 보도에 따르면 아이 아버지는 ‘명태 왕자’라는 별명의 전직 피겨스케이트선수 난리 야스하루(27)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안도의 출산 소식에 진짜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모르겠다.?후속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사회적 관심이 더러 있는 것 같지만 단순히 유명인에 대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미혼모 출산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적 평가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한국에서 상당수 네티즌들이 “아기를 낳는다는 힘든 결정을 내린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안도 미키를 응원했다. 파워 트위터리안 한 사람은 “홀로 아기를 낳아 기르기로 마음먹은 여성이 그 이야기를 밝히며 울지 않고 웃을 수 있어야 정상사회”라면서 “안도의 사례가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바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른 트위터리안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밝히든 말든, 아이를 낳은 것 자체가 숭고하고 신성한 일로 대접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반응은 신선하고 바람직한 의견일 뿐 아니라 트위터를 포함한 SNS의 사회적 순기능을 보여준 측면이 있어 반갑다. 우리 사회에서 혼전 임신이나 혼외 출산을 금기시하고 낙태나 입양을 강요하는가 하면 미혼모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은 이제 그만 둬야 할 때가 됐다.

현실에서 결혼제도가 무너지기 직전이고 성문화가 개방적으로 바뀌어온 가운데 유독 싱글맘에게 온갖 도덕주의적 심판을 가하고 냉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더구나 출산율 저하로 차후 인구감소가 걱정되는 나라에서 혼외출산을 무작정 타매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일본이나 한국은 이른바 ‘미혼모’ 또는 ‘독신모’가 세계 각국에 비해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좀 오래된 통계지만 2006년 현재 한국의 혼인외자 출생비율은 1.5%에 불과하고 일본도 2.0%에 그친다.

반면 아이슬랜드는 전체 출산의 60%가 혼외출산이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50%, 프랑스 50%, 영국 40%대 초반, 미국 35%선이다. 유럽에서는 경제사회문화의 복합적 이유로 동거가 널리 확산돼 있다. 프랑스의 경우 심지어 현직 대통령도 전 애인과 결혼이 아닌 자유결합(Union libre)라는 형태로 4명의 자녀를 둔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한 북미선와 중남미 국가 등지에서도 미혼모가 꽤 흔하다. 미국에서 주류 백인들은 일생동안 수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되 일정 시점에는 한 사람의 파트너만 갖는 ‘연속 단혼(serial monogamy)’이 늘어가고 있다. 줄잡아 8∼10년마다 배우자를 갈아치우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를 낳아도 대부분 결혼제도 안에서 이뤄지지만 이혼 때문에 양육권 다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한 집안 안에 부부의 전 배우자 소생 자녀들이 뒤섞여 자라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들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특히 흑인 미성년 여성들이 하위문화와 복지제도 등의 영향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 양육을 하는 등 ‘애가 애를 갖는 현상’이 적잖다. 천주교도가 다수인 중남미의 경우 양상이 또 다른 점이 있다.

지난해 중미 온두라스에서 니카라과로 가는 국제 버스에서 한국인 선교사 한 분을 만났다. 대화 중에 중미국가의 미혼모 말이 나왔는데, 사회·인구구조적 이유가 가장 크다는 것이었다. 시골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어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이주하는데 도시에는 젊은 여성들이 일할 곳은 있어도 남성들 일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골에는 남초, 도시에는 여초 현상이 있고, 도시에서 인기 있는 소수 남성들이 여러 여자들과 사귀고 동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종교의 영향으로 낙태보다는 출산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미혼모가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지난 2005∼2007년 세계 가치관조사에 따르면 미혼모 인정률은 한국은 3.5%로 36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가 2.8%로 유일했다. 반면 칠레 74.5%, 프랑스 62.3%, 미국은 52.2%였고, 일본도 21.6%를 나타냈다.

결혼과 가족제도를 온전히 지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결혼의 허울을 유지하면서 배우자가 각각 부정을 저지르거나 나이가 들면서 부부가 별거하는 경우, 그리고 한 집에 살면서도 사실상 남남처럼 지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여성이 이혼하고 싶어도 독립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참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결정적 장애가 되지 않는다.

아이는 두 부모의 품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때로 한 부모 아래서 자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보듬어 주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혼모라는 말부터 ‘비혼모’로 바꾸면 어떨까. 결혼은 앞으로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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