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돈에 목숨 건’ 장자제 가마꾼

장자제(張家界) 정상에서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암벽에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은 채 공중에서 ‘괴성’을 지르며 곡예를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바위와 허공을 벗 삼아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수직의 바위를 뛰어오르기도 한다. 참으로 아찔한 광경이다. 이 사람을 현지인들은 ‘즈주런(蜘蛛人, 거미 인간)’이라 부른다. 소수민족의 일파인 이들 ‘산족(山族)’ 사람들을 고용하여 눈길을 끄는 중국인의 상술이 놀랍다.

손님을 기다리는 가마 <사진 DB=사진동호회 photopocus>

장자제를 오르내리는 계단은 폭도 좁고 매우 가파르다. 여행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약 7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 계단을 내려가는 데만 보통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들었다. 하룡(賀龍, 중국 10대 원수의 한 사람) 공원을 거쳐 이른바 ‘7000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반 시간 남짓 걸어가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마침 비가 내려 젖은 돌계단이 제법 미끄러웠다. 한참 동안 가다 쉬다 반복하던 중 기이한 장면들을 목격하였다.

곳곳에서 가마꾼들과 계단을 내려가던 사람들 간에 흥정이 벌어진 것이다. 100kg 남짓한 남성과 두 명의 가마꾼이 집요하게 흥정을 하였다. 30대로 보이는 비대한 체구의 이 남자는 더는 계단을 내려가기가 어려워 보였다.

흥정이 될 듯 말 듯하다가 깨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 남자는 비쩍 마른 가마꾼들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바짝 다가가서 들어보니 “내가 무거워서 당신들은 날 메고 내려가지 못해” 하면서 가마에 오르려다 아쉬운 듯 이내 포기하였다.

좀 더 내려가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인과 가마꾼 사이에 소위 ‘거마비(車馬費)’를 가지고 또 흥정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여인은 30위안(한화 5400원 정도)에 다음 간이휴게소까지 내려가기로 하고 가마에 올라탔다. 그러다 채 1분도 안 돼서 이 여인의 고함이 들렸다. 갑자기 “내려줘!”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가마를 타기 전에는 30위안에 합의해 놓고 가마에 오르자마자 10위안을 더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여인은 단돈 10위안을 아끼려고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가마를 내려왔다.

책을 읽으며 휴식하는 가마꾼 <사진 DB=photopocus>

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10위안(약 1800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등 대도시 택시 기본요금은 11~12위안 정도이다. 후난성 창사, 허난성 정저우 등도 성(省) 제 일의 도시이다. 두 도시의 기본요금은 5~7위안 정도이다.

이보다 더 작은 현(縣)급 행정 단위는 5위안 미만인 곳도 부지기수이다. 가까운 거리는 3위안짜리 인력거를 타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라오바이싱(老百姓, 서민의 지칭)’들은 그야말로 1위안에 목숨을 건다.

한참을 더 내려가니 작달만한 키에 비대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헐떡거리며 계단에 주저앉은 중년의 뚱보 여인과 가마꾼 사이에 흥정이 벌어졌다. 이들과 뚱보 여인이 주고받은 얘기를 대충 들어보니 다음 간이휴게소까지 40위안(약 7200원)에 흥정이 이루어진 것 같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有錢能使鬼推磨)’는 중국 사람들의 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체력이 거의 바닥난 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뚱뚱한 아주머니는 힘들게 가마에 올랐다. 깡마른 소년처럼 왜소한 두 명의 가마꾼에게 자신의 생명을 의탁한 것이다. 그야말로 헛디디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황천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가마를 이름 하여 ‘화깐(滑竿)’이라 하였다.

드디어 뼈만 앙상한 두 명의 가마꾼이 앞뒤에서 양어깨로 가마를 메고 일어섰다. 가마에 올라탄 여인도 태연히 땀을 닦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치 과거에도 몇 번 타본 듯 익숙한 표정이었다. 심신이 지친 필자는 갑자기 힘이 불끈 솟으며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이들을 따라가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설마 이들보다 뒤처지지는 않겠지.” 그러나 160cm 남짓한 키에 50세 전후로 보이는 가마꾼들은 다람쥐처럼 사뿐사뿐 가파른 계단을 잘도 내려갔다. 기를 쓰고 쫓아갔으나 어느새 이들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나 만날까 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 내려가니 이들이 간이휴게소에서 헐떡거리며 담배를 문 채 쉬고 있었던 것이다.

가마꾼들은 아주머니를 내려놓고?다시 바삐 계단을 오른다. 내려가는 사람들과 흥정을 시작하는 가마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 돌계단에 고단한 삶을 의지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른바 ?‘돈에 목숨 건 가마꾼’들이 수십 명은 족히 돼 보였다.

중턱에서부터 하단까지 가마를 타고 내려가는 데는 우리 돈으로 4만~5만 원 정도를 요구했다. 온몸으로 ‘정직한 돈’을 버는 장자제의 가마꾼들에게 진한 애정이 솟아오른다. 예나 제나 돈 벌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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