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노, 이 순간 이 음악] 말로는 못할 감정, 음악이 ‘표현’한다
*비올리스트 에드가 노(노현석)가 ‘이 순간 이 음악’을 추천합니다. 이런 순간 여러분은 어떤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클래식한 비올라를 연주하면서도 올드팝과 대중가요에도 심취해 있는 에드가 노가 예술적인 감성을 여러분께 털어 놓아 드립니다. -아시아엔(The AsiaN)
2012년 7월14일
아침 6시34분에 눈이 떠졌다. 어제 독일에 도착했으니…. ‘개운하게 다 자고 일어났다’가 아니고 정말 몸이 무겁고 무겁고 무거웠다.
그래서 난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몸을 움직여서 확인하기 전에 하는 일이 있더라.
‘눈’을 뜨는 일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열었다. 그런데 이게 요즘? 한국 ‘문’처럼 번호 띡띡 누르면? 열릴 수 있는 ‘눈’이 아니다. 예전 문고리에 열쇠꾸러미 중 하나를 겨우 골라서 꽂은 다음?돌리는데, 문고리도 오래되고 열쇠도 하도 많이 써서 휜 지라 어렵사리 고생해서 여는 ‘문’처럼? 열렸다.
겨우 겨우? 결국 어렵게 확인을 했고, 난 독일 집에 있었다. 그러고보니 자는 동안 잠깐 깼던 것 같기도 하다. 빗소리 때문에….
나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정도면 본능적으로 정신만 깨는거 같다. 육체는 자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더 피곤함을 느꼈을 수도?있었겠다라고 그날을 떠올리며 지금 생각한다.)
창문을 열고 밖을 확인해보니 확실히?그 친구가 신나게 놀다간 것 같다.
지금은? 바람이 와서 신나게 놀고 있다. 집 앞 동산 꼭대기에 풍력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무거운 녀석이 세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2년 반 만에 다시보니, 아주 신난 것만은 확실하다. 구름도 엄청 빨리 지나다니고….
언뜻 이 녀석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 같다. (당시는 런던 올림픽이 불과 몇 주 안 남았었다.)
이들은 400m 계주선수. 1번 주자는 ‘비’ 였고, 2번 주자로는 ‘바람’이 지금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고 있고, 유연하게 그 바통을 이어받기 위해 3번주자인 ‘구름’이 더 세차게 스타트를 끊은 거다. 그럼 마지막 4번 주자는?
‘나’다. 결과는? 꼴지.
난 겨우 눈을 떴고, 창문을 연 것밖에는….
창문을 여는 순간 그들은 벌써 내 앞에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런 준비도 안 돼있는 나인데, 이 친구들이 황당하긴 했나 보다. (4년을 준비한 올림픽이니 그럴 법도….)
조용해졌다. 얼마나 흘렀을까? 감독이 왔다.
해님이. 31분만이었다. 이제?아침 7시5분.
이 순간 이 음악~
김동률과 이상순(베란다 프로젝트)의 <Bike Riding>
“아침 일곱시 오분, 오늘도 자전거 끌고, 너를 만나러 간다, 힘차게 페달을 밟고…”
이 노래는 가사와 곡조만으로도 그 순간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31분 전의 어두운 하늘은 딱딱하고 장황한?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7시5분, 지금 이 순간의 밝은 분위기는 가사 속 몇 단어와 음률만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음악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녀석들은 항상 길고 복잡하게 부연설명해가며 살아가지만 쉽고 좋은 일이라는 친구들은 몇개의 음과 몇개의 가사들 만으로도 살아간다는 거다. 만약 어려운 일들이 생긴다면 그 순간이 길게 느껴질 거다.?그것이 비록 순간적으로 닥친 일이더라도, 저 위?비, 바람, 구름처럼 짧은 순간에 온 것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그럴 때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하루가 48시간인 것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길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도 남자는 담배를 꼬박 필 것이고, 여자는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칠 것이다. 다 합하면 각각?10분씩은 넘을 거다.?48시간 중 10분.
그렇게 한다고 해서 힘든 순간이 행복한 순간으로 바뀌진 않을텐데 말이다.?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10분 중 반도 안되는 4분(어차피 좋아지지 않는 시간을 쪼갠 거다). 365일 중 하루도 아닌 이 시간에, 담배를 입에다 꽂는 대신 이어폰을 귀에 꽂아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 4분이면, 행복이라는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옆에 꼬옥 붙어있을 거다.
“사랑이라고 외쳤으면 행복만 남은 거다.”